지난달 16일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122호인 ‘연등회’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무형유산보호 정부 간 위원회 협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부처님 태어나신 음력 사월초파일이 되면 전국 사찰과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걸린다. 연등의 작은 소박함과 불빛의 수려함 그리고 등을 올리는 한분 한분의 사랑과 소망, 정성을 담은 기도가 연등과 함께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으로 올려진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러한 연등회는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자, 그러면 우리의 소중하고 궁금한 연등회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연등회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서술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이 정월대보름을 맞이해 황룡사로 행차해 등불을 구경하고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삼국사기> 중 삼국사기>
연등회의 유래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삼국시대 연등회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렸고 불교적인 행사라기보다는 고대로부터 전해온 기원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등회를 통해 국가의 덕목과 의례로 도를 다하려 노력하였으며 삭막한 사회의 정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연등회는 한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245년 무인 집권기의 최고 권력가였던 최우는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주체가 되는 정월 연등회와는 별개로 사월초파일에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성의 환심을 사기도 했으며 공민왕 때의 막강한 권력자 신돈은 자신의 집에서 연등회를 열어 백만을 헤아릴 만큼 많은 등을 걸고 왕을 맞이했다고 한다.
유교가 정치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사찰 정월 연등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풍속으로 자리 잡은 사월초파일 연등회는 지속해서 민가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사월초파일 밤이 되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달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거북등과 학등을, 입신과 출세를 위해서 잉어등을 달아 소원과 희망을 담고 기원했다.
이제 국가 종교행사로 시작된 우리의 연등회는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전승하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연등회는 혼돈의 시기에 단합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적과 인종, 종교, 장애를 넘어 포용성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펜데믹pandemic 시기에 진정 필요한 한국의 전통문화유산 이념이며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할 극복과 포용적 회복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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