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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고개를 숙이면

맹사성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조선 초의 정승을 역임한 위인이다. 소박한 성격과 청렴한 생활로 황희 정승과 함께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으로 통했으며, 뛰어난 업무 능력과 인품을 바탕으로 조선에서 가장 오랜 기간 좌의정의 자리를 지킨 위인이기도 하다. 또한, 맹사성은 우리 고유 음악인 향악에 지식과 관심이 많아 조선 초기 전통 음악과 중국 음악의 조화를 모색하여 우리 음악을 새롭게 정비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 전통 관악기인 대금을 잘 불었는데 대금을 불 때는 손님도 맞지 않을 정도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여름이면 소나무 그늘 밑에서, 겨울에는 방 안에서 대금을 불었으며 맹사성을 찾아오는 사람은 마을 입구에서 대금 소리가 들리면 그가 집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은 그러한 청렴하고 음악을 즐겼던 맹사성의 한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그의 젊은 시절 짧은 이야기이지만, 작은 감동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교훈을 주는지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고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멀리 있는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짧은 일화이지만 현실의 삶을 사는 우리에겐 많은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시대가 최고만을 원하고 자만과 교만으로 둘러싸여 바른 삶의 정점頂點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 우리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고의 권력? 최고의 재력? 최고의 학벌? 그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은 선함과 배려 그리고 올바름.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 상대를 인지하고 생각하는 공동체적 협심協心. 어지러운 난국 속에 필요한 우리의 덕목은 성현 맹사성의 말씀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란 글이며 오늘따라 유난히도 글쓴이 마음에 남는 일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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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8 17:19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

고종원년 서기 1864년 국가적인 행사로 막을 올렸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임오군란(1882년 고종 19년), 동학혁명(1894년 고종 31년), 민비시해사건(1936년 고종 33년) 등 국가적인 대변란으로 인하여 열리지 못했던 다섯 차례를 제외하곤 35회에 걸쳐 대성황을 이루었던 민족의 대축제였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현실에는 그 어떤 것도 명맥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지라 전주대사습놀이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본 초대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의 명령에 의해 강제폐쇄를 당했던 원각사와 때를 같이하여 전주대사습놀이도 서글픈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때가 1905년이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의 제물이 되어버린 전주대사습놀이는 이후 일제 36년 동안 사무친 한을 안고 기약 없는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고하고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지만, 안팎으로 형편은 어려웠고 그러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자 나라에서는 정치, 문화, 사회의 개편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전통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재창조 운동도 활발히 추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계기는 때마침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1975년 5월 전라북도 국악협회 총회에서는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의 결성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고 박영선, 임종술, 송광섭 등 3인을 부활추진 대표로 선임한다. 선출된 추진대표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유기정에게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협력을 당부하였고 당시 문화공보부 이규헌 차관에게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적 의의와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던바 이차관의 호의적인 협력을 약속받기에 이른다. 또한, 국회 이철승 부회장에게도 찾아가 그 뜻을 전했는데 이의장 역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받음으로써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관계기관의 협조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부터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확실한 고증을 얻기 위해 홍현식 등 학계 전문가와 관심 있는 학자들을 수차례 만나며 수개월 간의 동분서주하는 노력 끝에 문화공보부에 제출할 서류를 완성하기에 이르고 제출과 함께 역사적인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이 이루어진다. 1905년 마지막 행사 이후 1975년 9월 22일은 부활 첫 대회이자 현대적인 모습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제1회 대회가 열리게 되는 감격스러운 날로 기록되었다. 70년 만의 부활이라 생소한 대회인 데다가 몇 안 되는 동호인들의 출연기금으로 마련한 순수 민간주도 대회였기 때문에 그 규모란 극히 작아 보였지만 판소리 명창부에만은 전국에서 17명의 대전자가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중단의 한을 곱씹으며 부활의 1975년과 더불어 48년 세월을 지켜낸 오늘. 다시금 코로나19 전염병의 어려운 펜데믹 시대도 이겨내고 꿋꿋하게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민족의 혼 전주대사습놀이. 2022년 8월 역사의 현장 전주에서 한민족 예술혼과 역사성을 담은 멋진 축제로 다시금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곧 개최될 전주대사습놀이의 감흥과 지난 부활의 감격을 함께 독자들과 만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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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11 16:29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대학놀이

오늘 주제의 ‘대학놀이’는 일반 대학가에서 유행을 따르며 행락을 즐긴다는 뜻의 단어가 아니라 “진도씻김굿”이라는 전통 굿에 나오는 장단 이름의 애칭 명사이다. 왜 장단 이름을 대학놀이라 했을까? 대학놀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굿을 잠시 살펴보자. 진도씻김굿은 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전해오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천도굿으로 ‘씻김’은 이승에서 살 때 맺힌 원한을 지우고 씻어준다는 의미로 쓰였다. 해원解冤이란 단어가 함축된 굿으로 그 의미와 축원은 살아있는 자들의 간절한 염원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필자도 남해안별신굿을 배우고 연주하며 전승에 힘쓰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인 관계로 진도씻김굿에서 나오는 굿의 절차와 무가, 무구 등 많은 관심이 많았다. 지역마다 의식의 주목적과 굿의 연행이 다르다 보니 전통 굿에 내재한 예술의 그 새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영험하고 신비롭다. 우리나라에서 지정된 굿을 살펴보면 다양한 지역의 굿이 지정되어 있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 제82호에는 제82-1호부터 제82-4호까지 신묘한 굿의 색채가 다양하다. 1호에는 동해안별신굿, 2호에는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3호는 위도띠뱃놀이(전라북도 부안), 4호는 남해안별신굿이 있다. 또한, 독자적으로 굿이 지정된 것도 있는데 국가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도당굿,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경상북도 안동) 등이 있다. 자주 등장하는 별신굿이란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서낭), 바다, 배 등 마을의 평화와 농사의 풍년, 어업을 위한 뱃사람의 안녕과 기원 굿을 말한다. 특별하게 씻김굿은 죽은 자를 위한 굿으로 단 하나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으로 지정되어 있다. 굿의 장단에는 평범하지 않은 장단이 많다. 일반적인 농악 연희에서 나오는 장단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본 가락을 기본으로 잔가락을 이입하여 더욱 어렵고, 장단 안에 활용하는 멜로디의 선율이 절묘하며 사설과의 합을 이룸이 세밀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즉 “내면의 속성을 절실히 드러내는 표현이 많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굿의 장단은 신이 내린 장단이라 하여 신기하고 영험하다고 생각한다. 별신굿의 음악은 주로 타악기로 많이 운영된다. 동해안 무속 장단을 살펴보면 ‘드렁갱이’, ‘청보’, ‘수부’ 장단 등으로 꽹과리와 장구의 절묘한 결합이 극치를 이룬다. 남해안 지역의 별신굿을 보면 ‘조너리’, ‘허배’, ‘유십갑자’ 등 무가 선율과 어우러지는 장단의 묘미가 많다. 특히 남해안 굿엔 전라도의 육자배기 토리와 경상도의 메나리 토리가 합쳐진 선율과 장단이 맛깔스럽게 어우러진다. 우리나라 모든 굿에 연행되는 장단의 묘미는 마치 굿에 차려진 상차림과 같은 느낌이다. 굿 장단의 멋과 맛은 하늘과 땅이 감동할 정도이니 그러한 예술혼이 깃든 굿을 행하는 이들의 연주는 가히 어렵고 험난하며 고행이 따른다. 진도씻김굿 의례 속 장단인 대학놀이는 넋올리기 중 ‘넋풀이’, 씻김 속 ‘넋풀이’ 등의 장단으로 활용되는 신박한 장단이다. 전통의 엇모리로 된 장단인데 대학놀이란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처럼 어렵고 수준이 높아 치기 어려운 장단>이란 뜻으로 씻김굿의 명인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장단의 애칭이다. 이렇듯 연행자들의 숙련을 위한 고행과 수행 속에 우리의 해원을 담았으며 의식대로 삶의 소원은 풀어져 갔다. 오늘도 그러한 전승을 위한 많은 전통예술가의 현란한 손에는 피멍과 물집이 마르지 않고 그 내면 속 우리의 염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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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4 16:39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대취타와 제호탕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굵게 내리던 장맛비도 이제 고개를 숙이고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고 각양 색색의 부채가 쥐어진 손을 자주 보니 이제 정말 여름의 중턱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나고 있다. 뽑힌 우리의 지도자들은 어지러운 현 시국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씨름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난 선대 왕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선왕들은 “악지천하지대본<樂之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악樂을 근본으로 삼고 즐겨 만들고 함께 향유했다. 그러한 음악으로는 여민락, 수제천, 가곡 태평가 등과 같은 백성을 향한 선왕의 어진 마음이 잘 표현된 작품이 있다. 또한, 선왕들은 유독 어려운 형국을 맞을 때면 궁 밖의 행차를 시도하였는데 그 이유는 궁궐 밖 백성의 모습을 보며 정국政局의 바른길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선왕의 행차에 쓰인 음악은 바로 대취타大吹打란 음악이다. 대취타는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등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던 음악으로 ‘무령지곡’이라는 아명도 있다. 대취타는 부는 악기 즉 관악기인 태평소, 나발, 나각(소라)과 치는 악기인 타악기 징, 자바라, 용고, 장구로 구성된 궁중음악이다. 유일한 선율악기인 태평소가 주 멜로디를 연주하고 타악기가 리듬을 연주하는데 곡의 느낌은 매우 장엄하고 힘을 돋는 자양제 같은 느낌을 준다. 무더운 여름의 행차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행차에 불고 치는 대취타는 자연환경을 묵묵히 순응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렇게 선왕은 백성과 만남을 즐겼으며 의연한 우리 궁중음악 대취타를 통해 군주와 백성, 하나의 일심을 만드는 주체가 되었다. 궁중음악 대취타와 함께 선왕 곁을 지킨 예禮의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통 음료인 제호탕醍醐湯이다. 제호탕은 음력 5월 초닷새 단옷날에 궁중에서 마시던 절식節食으로, 제호탕을 마시면 더위를 먹지 않게 하고 갈증을 가시게 하면서 전신이 상쾌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제호관정醍醐灌頂이라고 불렸으며, ‘맛있고 정신이 상쾌해진다’ 하여 제호탕이라고도 불렸다. 이 음식은 단옷날 외에도 여름을 맞아 더위를 이기고 보신하기 위함에도 많이 애용되었다. 제호탕은 한약재를 꿀에 섞어 달여 더위가 심한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궁중음식이었다. 만드는 법은 오매육烏梅肉과 사인砂仁, 백단향白檀香, 초과草果 등을 곱게 빻아 넣고 꿀에 버무려 중탕하여 조렸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일종의 청량음료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더위를 피하게 하고 갈증을 그치게 하며, 위를 튼튼하게 하고 장의 기능을 조절함과 동시에 설사를 그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전한다. 지금도 그 시절의 제호탕을 생각하면 대취타란 음악과 함께 위기극복의 금상첨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층 더 의義와 예禮를 다지는 일화가 있으니 조선 궁중에서는 단옷날 내의원에서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께 올리면 임금이 이것을 부채와 함께 여름을 시원히 보내라고 기로소<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에 보내고 가까이 있는 신하들에게도 하사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옛 선왕은 백성뿐만 아니라 국가를 함께 운영하는 조정의 관료들에게도 정성과 애정을 다해 성심을 보냈고 나라를 위한 기본基本에 충실했다. 무더운 여름의 중심과 어려운 현시대의 환경에서도 묵묵히 조국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우리 궁중음악 대취타와 궁중음식인 제호탕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대취타를 듣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하는 관료들과 허심탄회 제호탕을 마시는 우리의 대한민국을 소원하며 그 시절 그때를 풍미風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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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8 18:0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시이성인是以聖人

將慾取天下而爲之, 吾見其下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歔或吹, 或强或羸, 或載或隳. 是以聖人, 去甚, 去奢, 去泰.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하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고물혹행혹수, 혹허혹취, 혹강혹리, 혹재혹휴. 시이성인, 거심, 거사, 거태.> 앞글은 노자 도덕경 중 29장의 문장으로 한글로 풀어 말하면 "만일 천하를 취하고자 억지로 도모한다면 나는 그것은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볼 뿐이다. 천하는 神이 만들어 놓은 신묘한 그릇이기에 억지로 도모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도모하고자 억지로 행하는 자는 실패하게 될 것이요 붙잡고자 억지로 행하는 자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만사는 앞서 가기도하고 뒤에 쳐져서 따르기도 하며, 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 내뿜는 것이 있고, 강한 것이 있으면 약한 것도 있다. 북돋아 오르는 것이 있으면 무너지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지나침을 버리고, 사치함도 버리며, 과분함을 버리는 것이다."란 글이다. 글과 함께 전통에서 그러한 뜻과 의지를 다지는 음악이 있으니 그것은 궁중정악 "수제천"과 민속음악 "시나위"이다. 수제천이 내포하는 주제 의미는 국가의 태평과 민족의 번영으로 노자의 도덕경처럼 절제와 포용, 협치의 상생을 이루고자 하는 뜻이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임으로 수제천은 그러한 의지를 다지고 다양한 음악적 표현 방식을 통해 탄생하였다. 수제천의 아명은 정읍사이기도 하다. 백제가요로 전라북도 정읍이 곡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극진한 마음이 표현된 가사가 특별하다. 만인이 바라는 사랑의 진실이 내제되어 있으니 그 안에 공경과 애정의 마음은 도덕경과 같으리다. 민속음악 "시나위"를 살펴보자. 시나위는 기본적인 틀은 있지만 고정된 선율이 없고 유동적이며 즉흥적인 선율이다. 하지만 절대로 흩어지지 않는 규율을 갖고 있으며, 음악의 흐름 속엔 화합의 원칙이 존재한다. 서로를 범하지 않으며 포용하는 온전함으로 지나침과 과분함을 조화롭게 이룬다. 마치 도덕경의 한 구절처럼 음악의 한음 한음은 선인의 고언과도 같다. 시대를 움직이던 옛 명인들의 가르침은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 삶을 지탱하게 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특별한 유산이 되었다. 또한, 우리 선조의 음악도 마음을 움직이며 의지를 다지는 선율이 되었으니 고결한 선인의 명언처럼 잊지 못할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과하지도 지나침도 없는 세상. 조화로움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잠시 선조의 어록과 음악을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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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21 16:53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리더쉽 leadership

일본에는 3명의 영웅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세 명을 두고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두견새"라는 에도시대의 시가이다. 내용인즉슨 <울지 않는다면 죽여버리겠다-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버리겠다-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늘은 옆 나라이지만 일본의 영웅 3인을 생각하며 리더쉽의 이야기로 먼저 풀어보자. 지난 2013년 9월 일본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에 성공했다. 그해 8월 말 도쿄 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고농도의 오염수 누출 우려가 있었어도 개최지 투표 이전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 아베 총리가 참석, 구체적인 자료와 국가의 전반적인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불안을 해결하고 개최지 선정에 열의를 다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은 2020년 7월에서 코로나19의 펜데믹으로 2021년 7월로 1년 연기 개최된 올림픽이 되었다. 하계올림픽이 감염병으로 연기된 것은 1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전한다. 여러 난제와 우여곡절로 치러진 올림픽은 많은 교훈을 남겼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유치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올림픽 후 18년 동안에 327조 원이라는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예측하고 일본경제의 활성화를 기대했지만,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 기간동안 일본이 보여준 추진력의 리더쉽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펜데믹의 공황 속 무리한 운영에는 긍정의 측면도 있었지만, 부정의 이미지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황을 이끄는 그들의 리더쉽, 자국의 이익을 위한 총리의 추진력, 그것은 과거 토요도미 히데요시의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버리겠다" 에도시대의 시가와 같았다. 지난 정부와 전북 및 한국스카우트연맹은 1991년 강원도 고성 세계 잼버리대회 이후 32년 만에 2023년 새만금에서 개최하는 세계잼버리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예비 대회 격인 '프레잼버리'가 오는 8월 2일부터 7일까지 전북 부안군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기반 시설 부족과 참가 저조로 정상 개최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사회적 현 상황은 녹록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개최 가·부의 여부,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끄는 우리의 진심이 더 소중하다. 준비하는 한분 한분의 열정과 모습이 언론에 나오며 고민과 고민을 더한 결과물로 희망의 그릇을 더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을 내자. 우리 모두 관심과 애정을 갖자. 우리에겐 일본 3명의 영웅보다 더 훌륭한 리더쉽을 가진 이성계와 이순신이 있지 않았는가? 우리의 리더는 옛 선조들을 이끌었던 지도자의 모습으로 대회의 성공을 이끌 것이다. 펜데믹의 환경에도 한국과 일본은 잼버리와 올림픽이라는 범 세계적인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고 많은 이목을 집중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전통예술가로서 제안한다. 우리만이 가진 민족 정서를 잼버리에 모인 세계인에게 보여주자. 세계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 힘들고 괴로웠던 펜데믹의 시간들. 세계 역사를 배경으로 전염병의 종식과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한민족 전통의 “승전무”와 “진혼제”을 보여주자. 세계 청소년에게 불굴의 한민족 정신을 알리자. 물질적인 형식보다 그들이 품고 가지고 갈 대한민국의 민족혼에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만들며 소중히 안겨 주자. 다음 달 세계 프레잼버리를 위한 서막은 올랐다. 멋진 전라북도의 리더쉽은 이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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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4 17:2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

오래전 필자는 우연히 친구가 번역한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저자: 이냐시오 라모네. 前 파리 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前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를 선물 받고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미국이 생산해 온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 영상 이미지 속에 녹아 있는 ‘미국 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고 문화잠식을 통한 미국의 세계화를 비판한 책이다. 문화잠식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문물과 사고가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범람하고 주체의 영역을 넘어 본질에 대한 방식과 본질이 바꾸어간다는 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과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파간다식 문화의 변辯은 때론 희망적이지만 의문이 될 수도 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환경도 많이 변했다. 문화 환경도 시대에 변화하다 보니 부르는 소리 즉 노래의 개념도 변해갔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는 빠른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고 익숙해져만 갔다. 음악의 실 예로 이제 우리가 아는 가곡은 이미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가 부른 슈베르트의 '보리수'와 같은 서양 가곡으로 인지되고 있으며, '그리운 금강산'과 같은 새로운 서양식 창작가곡을 만들어 한국의 가곡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서양음악 형식의 가곡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태평성대를 꿈꾸며 부르던 가곡 '태평가'는 서양음악의 가곡 형식이 들어오면서 점점 잊혀만 갔고, 이제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가곡>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잠식을 통해 다른 의미의 서양음악 명사로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우리는 국악을 옛 고전으로만 생각하고 느리고 어려운 음악으로 치부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국악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존재감에 비해 지극히 약한 대중성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대중성을 입히려 서양음악과 많은 융합의 시도를 하고 있다. 다양한 가치부여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 축제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 화엄음악제 등 한국 전통의 소리를 기반으로 한 축제가 있다. 각고의 노력은 한민족의 관념과 공간 속에 새로운 파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다양성에 대한 제작 과정을 보편성이라는 말과 함께 동시대성이라는 관계로 접목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각 나라와 문화, 역사를 불문하고 더불어 성급히 공유하고 접목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조급한 방향의 합리화가 될까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옛것을 계승하고 대중화에 있어 낡은 껍데기만을 이어받고 허울 좋게 포장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 있는 깊은 정신과 방식을 이해하며 올바른 계승과 창작 그리고 올곧은 전통 수용이 병행되어야 하고 자아의 존재감을 안고 동시대성을 묘사할 줄 아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예술경영』 453호 전주세계소리축제 박재천 위원장 변辯인 “전통예술이 짓는 현대의 소리” 글에는 프로파간다 피력의 글과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글에는 변화와 도전을 위한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선동가적인 파격과 인내를 견지한 기획자로, 정무적 감각을 갖춘 행정가로서의 다짐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향후 9월에 찾아올 2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서두에도 피력했듯이 변화와 도전의 프로파간다가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의 본질을 바꾸는 문화잠식처럼 오해되지 않게 한국 전통소리의 정체성, 현장성, 지역성, 동시대성을 견고히 지키며 추진해야 할 것이며 함께 견지하여 전통예술의 꽃인 소리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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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7 16:1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방탄소년단(BTS)의 노력과 용기

지난 16일 그룹 방탄소년단은 각 언론매체를 통해 '프루프' 음반의 기점으로 팀으로서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분간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솔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면서 개인의 성장에 보다 집중한 뒤 돌아온다는 계획도 알렸다. 내놓은 곡마다 최정상을 만들고 1억 명이 넘는 ‘아미 A.R.M.Y’라는 팬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가수로 데뷔해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에 걸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동안의 활동 심정을 토로했다. 2013년에 데뷔한 그들은 10년이 안 되는 시간 속에 많은 관심과 이슈를 만들어 냈다. 과연 방탄소년단은 타고난 진정 천재이자 특별한 문화의 산물이었을까?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를 이야기 해보자. 클래식의 천재로서 가장 많은 음악 애호가들을 클래식으로 입문하게 만든 모차르트는 처음부터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작곡한 천재는 아니었다. 어릴 적 그에게는 뛰어난 교육자이자 매니저인 아버지가 있었고 신동에게 호의적이었던 귀족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음악 공부와 연습에 매진한 노력파였다. 성인이 돼 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기울여 온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손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밤낮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최소 10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작곡 실력을 향상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갔다. 모차르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상상하는 천재는 없다.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 배우지 않고도 알고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꾸는 그런 천재는 없다. IQ도 천재를 식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은 모두 환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도 한 곡을 위해 지난날 수백, 수천, 수만 번의 음악을 고치고 만들었을 것이며 방탄소년단 구성원 하나하나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노래와 안무의 연습을 수천, 수만 번 거쳤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몇 년 전 유럽의 일간지 르몽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중국에 끼인 것으로만 알려졌던 나라,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로만 알려졌던 나라가 이제 자국의 문화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라고 K-pop 진출을 알린 적이 있었다. 이후 우리 한국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태권도, 한복, 한식, 국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세계 중심을 파고들었고 그러한 노력과 인내는 다시금 오늘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행착오, 체험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노력, 인내가 있었기에 그들은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K-pop 또한 그렇지만 이제 문화적 동기부여를 ‘made in’<제조국>보다는 ‘made by<제조자>로 더 생각할 때가 됐다. 수많은 문화와 기호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러한 제조자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며 천재적 진화 과정은 그렇게 후배들에게 전해지며 다양한 문화의 국가경쟁력으로 표출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력과 용기는 그러한 과정 위에 있으며 세계 문화 중심에 다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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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30 16:43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격몽요결擊蒙要訣 중에서

격몽요결은 조선 왕조 때의 학자이자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가 지은 초보 후학의 학문으로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을 논한 글이다. 학문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을 스스로 버리게 하고 학문의 중요함을 새기며 배우도록 하고자 하는 율곡의 뜻과 의지가 담겨있다. 오늘은 그중 필자가 항상 애독하며 간직하는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제3장 "지신(持身) 올바른 몸을 가지는 법"으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세워주는 원론적 사회 강령이라 하겠다. 먼저 첫째. 두용직(頭容直)이다. 머리를 곧게 세워라. 아무리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엔 고개 떨어뜨린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인 듯 보이는 거기가 새 출발이다. 우리는 끝이 아닌 시작점에 서 있다. 둘째. 목용단(目容端)이다. 눈은 바르게 가져야 한다. 눈매나 눈빛은 중요한 만큼 눈매는 안정시켜 흘겨보거나 곁눈질하지 말며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야비한 맘을 갖지 말고 품지도 말며 내색하지 말라 그리고 세속과 거래하지 말고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말라. 가식적인 당신의 눈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셋째. 기용숙(氣容肅)이다. 기운을 엄숙히 하라. 우리는 예외 없이 세상 속에서 기 싸움을 하고 있다. 기 싸움은 무조건 기운을 뻗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상대방을 눌러 이기는 법도 있지만 누르지 않고 승리하는 기운도 많다. 아우르라. 기운을 바르게 갖고 품어라. 넷째. 구용지(口容止)이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물고기가 입을 잘못 놀려 미끼에 걸리듯, 사람도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법이다. 입구<ㅁ>자가 세 개가 모이면 품<品>자가 된다. 자고로 입을 잘 단속하는 것이 품격의 기본이라 하였다. 그대는 왜 입을 함부로 놀리는가? 그대만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당신을 버린 것이다. 다섯째. 성용정(聲容靜)이다. 소리는 조용하게 품고 논하며 가져야 한다. 말을 할 때는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며 바른 형상과 기운으로 조용한 말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크게 유색을 떨며 웃지 말라.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당신을 낮추는 최대의 단점이다. 여섯째. 색용장(色容張)이다. 얼굴빛은 항상 씩씩하고 밝게 하라. 주변 사람의 얼굴빛이 어둡다, 어렵다고 찡그리지 말고 애써 미소를 지어라. 긍정과 낙관이 부정과 비판을 이기게 할 것이다. 그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이다. 일곱째. 수용공(手容恭)이다. 손은 공손하게 가져야 한다. 손을 사용할 때가 아니면 마땅히 단정히 손을 맞잡고 공수(拱手)해야 한다. 겸손이 당신을 높인다. 여덟째. 족용중(足容重)이다. 발은 무겁게 가져야 한다. 즉 처신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발을 디뎌야 할 곳과 디디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할 줄 알라는 말이다. 입지를 위한 처신의 방법은 그렇게 단순하지만 어려운 판단이 앞선다. 아홉째. 입용덕(立容德)이다. 서 있는 모습은 의젓하게 가져야 한다. 중심을 잡고 바른 자세로 서서 덕이 있는 기상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참고로 서 있을 자리와 물러설 자리를 아는 것도 덕의 근본이요 처신의 기본이다. 격몽요결은 서두에 말했듯이 초보 후학을 위한 지침서로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을 적은 글이다. 하지만 이 글은 초보가 아닌 중견 지식인에게도 귀히 정독 되는 글로 그만큼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인가를 알려주는 글이라 하겠다. 조금이나마 율곡 선생의 글이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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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3 16:4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록주, 너를 사랑한다

박록주 명창은 경북 구미 출신으로 판소리에 일생을 바치며 치열하게 살다간 거장이다. 또한, 사랑도 사연이 많았던 인물로 소설가 김유정과의 일화가 유명하다.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나와 연희전문학교에 다녔던 유명한 소설가로 1935년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조선일보 '소낙비'가 당선이 된다. 이후 조선중앙일보에 '봄.봄'을 발표했고 1936년에 '산골나그네', '동백꽃'을, 1937년에는 '땡볕' '따라지' 등을 여러 지면에 발표했다. 하나같이 우리의 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단편소설로 지금도 그의 작품은 사랑받고 있다. 김유정은 1937년 지병인 폐결핵으로 서른 해 남짓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 직전에 청순하고 애절한 사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박록주 명창을 향한 애절한 순애보이다. 김유정의 절친한 휘문고보 친구 안회남이 유정 사후에 그를 그리워하면서 쓴 소설 '겸허 김유정전'에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정이 맨 처음 연애한 이성은 한 유명한 기생이었다. 물론 짝사랑이다. 그 시절의 유정은 점잖은 집안의 처녀들을 퍽 경멸하고 싫어하였는데 이것도 그의 가정에 대한 울분의 폭발이었으며 ㅡ중략ㅡ 유정이는 그때가 이십을 조금 넘은 때였고 그녀는 적어도 그보다 오륙 세는 위였을 것이다> 현실의 소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김유정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던 박록주를 첫 사랑했다. 그가 박록주에게 보냈던 편지와 박록주가 쓴 글이다. <1926년 가을. 내 나이 24세. 잠자는 나의 가슴에 장미 한 송이가 꽂힐 줄이야. 추석이 갓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겉봉엔 내 이름 석 자가 정성 들인 글씨로 씌어 있었다. 발신인은 '봉익동 00번지 김유정'이라는 사람이었다. 생소한 이름이어서 의아스러운 마음으로 흥분 속에 겉봉을 뜯었다. # 박록주 선생에게 저는 전문학교에 다니는 김유정입니다.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올시다. 나이는 18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봉익동 00번지에서 살고 있사옵니다.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은 형님과 누님이 저를 돌봐주고 있사옵니다. 박록주 선생님이여, 저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에게 당돌하게 편지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김유정 올림 # ㅡ중략ㅡ 수많은 편지가 왔고 나는 그를 만나 말했다. "학생이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지 딴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더구나 나는 기생의 몸, 학생의 신분으로서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당신이 나의 마음을 받아줌으로써 더욱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ㅡ중략ㅡ 내(박록주) 마음은 아파서 얼른 오르지 못하고 같이 서 있었다. 유정에게 말했다. "이제 가세요", "가겠습니다. 저를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립니까?", "기다리세요"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얼마 후 나는 유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을 미리 알았다면 한마디 말이라도 다정히 하여 줄 걸 하고 후회스럽기조차 했다. 6.25 피난처에서 나는 친구 동생을 통해서 <동백꽃>이란 유정의 소설집을 처음 대했고 그가 그런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에게 너무 쌀쌀히 대한 것이 새삼 죄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사상 1973년 4월호 중 '록주, 너를 사랑한다'] > 그렇듯 이 세상 모든 운명의 사랑은 뜨겁게 오고, 소리 없이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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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6 16:53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세계문화유산 임실 필봉농악

지난 4일 단옷날을 맞이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는 신명 나는 연희 굿판이 펼쳐졌다. 굿판을 주도한 우리 지역의 임실 필봉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된 소중한 마을굿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일찍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유도했던 상쇠(연희판의 꽹과리를 제일 잘 치며 연희를 주도하는 사람)가 계셨는데 제일 먼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으로 초대하면서 그 계보는 시작된다. 계보를 이어 두 번째 송주회 상쇠가 필봉농악을 지켰으며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상쇠 양순용에 의해 전승의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었던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한 분이다. 지난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1980년대, 양순용 명인은 우리의 전통 연희굿에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필봉농악을 정성으로 전수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임실 농악의 진가를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전승과 진흥에 노력하시다가 1995년 작고하시고 명인의 아들 양진성, 양진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필봉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 임실 필봉농악을 잠시 살펴보자. 필봉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룬다. 그리고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며 연희를 행한다. 타 여느 농악처럼 종류에는 섣달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 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 등이 있지만 이 중 임실 필봉농악 판굿은 가장 연희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지난 단오일, 임실 필봉농악 정기발표회 ‘단오야 필봉가자’에는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뒷굿인 노래굿, 돌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등 연희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판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또한, 공연에서 뒷굿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과 탈머리굿도 선보여 많은 관객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이중 도둑잽이굿은 마을공동체의 질서와 결속, 화합을 목적으로 실연하는 연극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연희와 더불어 필봉문화촌 마을 어귀에 창포물 머리감기, 족욕하기, 단오선 부채 만들기, 화채 나눠먹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 체험도 힘께 진행하여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힘든 어깨를 펴고 함께 만나 소통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정한 연희는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열게 하고 소중히 하나 됨을 추구한다. 현실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만, 단옷날의 필봉농악처럼 희망찬 나래를 펴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판을 모두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러한 살판 위에 우리네 삶을 멋지게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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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순창 고추장

지난 29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는 성금연가락보존회(대표 지성자)가 주최·주관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한바탕 이수자 발표회’가 있었다. 연주된 가야금산조는 춘사 성금연이 구성한 산조로 창작자의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견과 이해를 통한 반복으로 다듬고 다듬어진 가락의 창조물이다. 성금연 명인은 일찍이 1960년대 파리민속예술제와 1972년 최초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었으며, 음악가로만 아니라 국악예술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봉직하며 교육자로서도 익히 알려진 가야금의 명인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3월 지성자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하였는데 그녀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이어받고 일찍이 8세 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가야금의 명인이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고제古制의 예스러움과 투철한 예술 감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지성자 명인은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 오랜 세월 삶의 이치를 가락으로 구성하고 가녀린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원초적 소리이다. 그리고 같은 산조라 해도 각 개인 환경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고 나타내는 마음 표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전통 악기 중 가야금은 그러한 산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다. 가야금산조는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 또한 다채롭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 구분에서 굿거리가 삽입된 점이 특징이며 다른 유파流派에 비하여 간결하고 경쾌하며 감칠맛이 있다. 감칠맛을 논할 때 우리는 전통음식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추장하면 영조英祖와 전라북도 순창이 떠오르는데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였고, 가장 오래 장수한 왕이다. 장수의 비결이 있음 직하나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의는 매번 설사와 어지럼증으로 입맛이 없는 영조를 걱정했지만, 가을 보리밥에 고추장, 즙저만 있으면 족하다며 늘 검소한 수라를 드셨다 한다. 이러한 고추장의 감칠맛은 왕의 건강을 지켰고 그 맛의 비결은 지금도 순창 지역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 그 둘은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하고 색다른 멋과 맛에 있다. 가야금의 요동치는 선율은 맛깔스러운 별미와도 같고 고추장의 감칠맛은 가야금 선율의 휘몰아치는 감동과 같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구성진 가락과 감칠맛에 동요되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삶을 지켜왔다. 자. 이제 우리 가야금산조를 듣고 즐기며 순창의 고추장을 영조처럼 탐식하며 감칠맛을 즐겨보자. 그리 녹록지 않은 세상의 삶이지만 우리네 마음에는 감칠맛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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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다시 부른 민중의 노래

지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하며 보수 정권으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시도하였고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5·18 유족들의 뜻을 받아 기념식을 주관하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제창' 형식으로 불린 민중가요이다. 이후 '제창'은 2009년부터 종북 논란의 이유로 '합창' 형식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다. 특히 2010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을 식순에 넣어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제창'은 참석한 모든 이가 함께 부르는 음악의 형식이다. 그리고 '합창'은 여러 화성을 만들어 함께 부르는 노래 형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누구나 다 같이 부를 수도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창'과 '합창'은 각각의 논리와 변으로 서로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고 화합을 추구하는 민주적 추모 행사에 전대미문의 음악적 궤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국가가 인정한 민주화 추모 행사에 애매한 음악의 갈래로 의미 부여를 교란했으며, 때아닌 경기민요의 등장으로 성급한 정책의 혼돈으로 남았다. 지난주 다시 돌아온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 다시금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대통령은 '합창'으로 일축했던 보수의 고정관념을 깨고 '제창'의 형식으로 그 의의를 다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는 마음속 깊이 응어리졌던 노래를 세상 밖으로 용출시켰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음악은 대부분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분을 잃었을 때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 앞에서 곡을 했고 힘든 일을 할 땐 노동요로 그 고됨을 이겨 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공동체 삶 속에 희로애락의 노래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불렀고, 그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삶의 토대를 그리며 더 행복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역사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고 그 노래는 국민 가슴속에 자리 잡아 한 시대의 위안이자 민중의 노래로 남았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진보의 정치적 성과라 생각지 말고 보수의 논리로 그 뜻을 논쟁치도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간 아픈 역사적인 산물로 만들어진 선율이요, 가사이다.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네 맘을 곱씹어 만들어 냈던 노래인 것이다. 비장한 단조의 멜로디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흐르는 곡의 4/4박자는 우리들의 맥박이요, 외치는 간결한 가사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처절하게 돌아가신 유공자들의 영혼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후대들로 하여금 다시 이러한 역사의 불행이 오지 않게 동기 부여를 한다면 제창이 중요하리요, 합창이 뭐 그리 중요하리요. 역사의 중요한 멜로디가 되고 소중히 함께 부르고 싶어 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제 '제창'과 '합창'이란 음악적 논쟁 앞에 멈추지 않고 아픔 없는 나라를 위한 민중의 노래로 남아 그 의를 돌아보며 영원히 함께하는 역사적 산물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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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6 17:07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통춤을 아는가

지난 30일 전라북도 전주에 춤과 관련된 모든 상상이 가능한 춤 놀이터 문화공간 ‘금파아트센터’가 개관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한량무 보유자인 故 금파 김조균, 전북무용협회장을 역임한 故 김숙의 딸이자 금파아트센터 창립자인 애니킴 이사장은 “춤의 학문적 가치와 사회적 중요성을 높이고 그 실천의 장을 이끌기 위해 금파아트센터를 마련했다”라 말했다. 또한, 실험적인 춤 작업뿐 아니라 전통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통해 확장하고 성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침체하였던 전통예술계로서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쁜 마음에 전통춤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논해보자. 우리나라의 노래와 춤은 지방마다 다르며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환경에 따른 삶의 적응방식이나 민속문화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인 전라도는 소리에 강점이 있다. 특히 판소리는 선조 대대로 명창이 많았으며 이를 애창하며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마한과 백제로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농경문화와 다양한 농경민속, 민간춤들이 만들어졌고 각 지역마다 농악, 여성적인 소리춤들이 발달하여 존재감이 특별했다. 전라도의 춤에는 여성춤, 손짓춤 같은 특성을 나타내는 선의 아름다움이 존재했고 춤에 따른 배경음악이 뛰어난 강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경상도의 춤은 수직·수평적이다. 평면적·동적인 춤이 발달했고 마당춤과 방안춤 등 복합적인 전승이 이루어져 흥겹고 여흥적인 춤의 특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각 전라도와 경상도의 독특한 지역적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담론은 선입감이란 공론을 만들었고 전라도는 마치 춤이 부족하다는 감성으로 표현됐다. 담론의 사유를 논하자면 그것은 호남의 뛰어난 소리와 기악선율문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춤이 저평가된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논하자면 경상도의 춤이 발달하게 된 원인에는 지역 향토춤과 탈놀이 그리고 기방문화가 있었다. 그중 큰 획을 긋고 있는 기방춤은 과거 영남지역에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에서 춤을 배웠던 예인들이 권번에서 춤을 지도했었고,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호남에서 피난 온 많은 예술가들이 영남의 각 지역에서 호남춤을 전파해 현재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유추해 볼 때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우리 한민족은 오랜 세월을 지내며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창출하고 호, 영남의 특색있는 색깔로 화합을 이끈 민족이다. 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춤, 기악, 기예, 연희 등 지역의 특화된 장점을 근거로 다양한 예술을 보존하고 이어가며 발전시켜 왔다. 특화된 지역의 예술적 장점을 담론으로 표현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부분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만 공통된 생태문화권을 형성하면서 함께 이루어진 주체를 분류하여 지역 나눔을 가져야만 하는가 의문을 가져본다. 물론 특화된 지역의 장점을 부각시켜 더 나은 결과물을 찾기 위한 연구의 방편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명제가 굳어진다면 연구의 시발점조차 잃게 되는 두려움을 안게 될 것이다. 이제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고정관념은 뒤로하고 지역의 특화된 예술은 장점으로 품으며 또 다른 서로의 장, 단점을 찾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로소 통합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관점, 정교한 논리를 준비하며 전통춤을 알릴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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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9 16:47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국악교육 개정에 대한 단상

현시대 우리의 대한민국은 전통예술을 이해함은 물론 삶의 가치로 융합, 수용하여 많은 국민과 함께 즐기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도전과 시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며칠 전 일이다. SK텔레콤은 국립극장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각종 문화 행사가 가능한 '놀러와 국립극장'을 만들어 전통예술에 기반한 콘텐츠와 함께 디지털화 및 확산, 선도한다는 사업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개관식을 통해 랜드 오픈식을 성대히 치륐다. 기업의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전통예술을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확산시켰고 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경제적 창출을 포용한다는 성과를 이뤄냈다. 또 다른 민간사업을 살펴보자. 게임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넥슨재단은 5월 11일, 12일 이틀간 제1회 ‘보더리스 공연: PLAY판'라는 공연을 개최한다고 알렸다. 재단은 공모전을 통해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이란 주제로 ‘현대연희 prototype21’ ‘플레이 오케스트라’ ‘보쏘(BOSS5)’ 등 세 팀을 뽑았고 지난 1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개최했다. 선발된 세 팀은 넥슨의 대표 IP에 씻김굿, 마당놀이, 국악관현악 등 전통예술과 접목한 공연을 선보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류 게임 문화 콘텐츠 가치를 대내외로 알렸다. 이러한 전통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융합 창출하고자 하는 사업이 있는 방면 안타까운 국가정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올해 말 확정·고시 예정인 <2022 개정 교육 과정의 '국악' 전면 배제>라는 논의이다. 지난 4월 21일 전국 국악교육자협의회는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는데, 한국국악협회 등 130여개 관련 단체와 함께 소신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전통문화계는 크게 논란이 되었고 SNS 속 많은 담론객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 4월 교육부가 공개한 ‘2022 개정 음악과 교육 과정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는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교육 목표를 의미하는 ‘성취 기준’이란 학교 수업·평가와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 라인으로 새롭게 변경된 기준안에는 국악이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논란에 교육부는 "서양음악, 국악 등 장르를 구분하기보단 실생활 위주의 교육을 위한 개정 과정에서 국악이란 표현이 빠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전통예술가 및 관련 교육자에게는 이해의 아쉬움이 많은 답변이었다. 국가는 그러한 이해의 정책이라면 국악과 더불어 이제 역사 또한 세계사 속에 한국사를 넣어 동일한 형평성으로 교육함이 옳으며 국어 또한 영어, 일어, 중국어와 함께 만국어란 교과명으로 통일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 국가 원동력인 전통문화를 향한 민간기업과 정부의 애정 어린 마음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방향성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드러내어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와 포용해 획일 시키려는 의미는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수용하고 지혜롭게 이끌어내며 담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은 불온한 혁신과 수용 속에 본질을 잃을 수도 있고 섣부른 융합과 무관심 속엔 사라질 수도 있는 정서적 매개체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올곧은 전승과 진흥으로 함께 전통예술을 소중히 지키고 이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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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2 17:0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라북도립국악원

지난 24일 전라북도립국악원은 37년간 함께했던 청사를 떠나 행정 사무국, 교육학예실 등 주요 부처가 전통문화체험전수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도립국악원은 노후화된 청사로 인해 안전 확보, 주차공간 활용 및 연수공간 운영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에 따른 환경 개선 및 효율적 활용을 위해 신청사의 건립을 추진, 성사시켰다. 2년 뒤에는 현 위치에서 새로운 청사로 도립국악원을 만나게 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아간다는 말이다. 전통예술 역시 고정화된 역사의 산물이기보다는 함께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이루어내는 결과물이며 국가적인 계승과 창조적 문화 창달을 위한 근본이 된다. 이러한 옛것을 알고 새로움을 행하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인지하고 느끼며 배워야 한다. 전라북도는 그러한 매개 중심에 민족문화예술의 국악원을 만들었고, 도민들과 함께하는 국악을 즐기며 37년의 세월을 보냈다. 전라북도는 도립국악원 외에도 타 시도와 다르게 전통예술의 다양한 무형문화재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와 농악은 여느 곳과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예능 보유자와 이수자가 많으며 다양한 지역의 전통예술 희소성을 입증하고 있다. 더불어 특별한 점은 그러한 전통예술을 함께 배우고자 하는 도민들도 많다는 것이며 든든한 예술적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 전라북도의 전통예술은 한국 최고의 수준 그리고 전통예술의 본향이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전라북도 예술계도 지난 수년간 코로나19의 전염병으로 많은 고통과 아픔을 받았다. 특히, 전라북도의 전통 문화계는 더욱더 그러했다. 우리 도의 중추적인 문화사업소인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이러한 아픔을 딛고 전통예술의 위상과 대민 교육 및 문화 향수권을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했다. 갑작스럽게 발발한 코로나19에 초·중·고급 온라인 교육 강좌를 대응 개설하여 도민과의 전통예술 학습을 지속시켰으며, 비대면Untact 온라인 공연의 콘텐츠 서비스를 추진해 사실상 어려운 비대면 속이지만 국악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악서樂書 악학궤범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음악은 하늘과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 따라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국악은 이렇듯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적 산물로 만들어졌다.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이 느끼며 즐겼고 민족의 음악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의 소리로 승화시켰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이렇듯 민족의 애환과 희망을 담고 있으며 민족의 정서를 올곧게 전승하려는 전라북도의 중요한 기관으로 그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 향후 새로이 건립되는 전라북도립국악원과 함께 다양한 전통예술의 교육과 연구, 공연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현시대에 필요한 “포용적 회복 inclusive resilience”의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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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8 16:4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한恨의 악기 “아쟁牙箏”

한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경제, 학술의 모든 분야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우리 국민은 식민지 치하의 차별받는 분노와 굴욕,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다루는 우리나라의 예술작품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우울했다. 짐짓 밝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리 인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때 사람들에게 기대 심리를 자극하며 나오게 된 것이 전통극인 창극이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의 상황을 아무런 고민, 고뇌도 없이 희망과 진보, 기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애환과 억눌린 감정의 표출을 민족극인 창극으로 나타냈다. 1939년 9월 동일창극단 창작 창극 “일목장군”을 계기로 남, 여 혼성의 창극에서 여성 창극의 시대를 연다. 창극이란 원래 기존의 판소리나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작창하여 부르는 연극 형식인데 노래를 포함하여 춤, 노래의 반주와 배경 무대가 포함된다. 이때 노래의 반주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귀신소리, 천둥소리 등 인간과 짐승의 감정까지 모두 성음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곧 판소리에서 소리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소리 감정이 여성들의 배역으로 이루어지면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간결함으로 작품의 소리 감정을 표출하였다. 또한,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표현함으로 색다른 중성적 이면과 성음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때 반주가 이러한 표현을 도와준다. 이러한 음악적 간지懇志에 필요성을 느낀 악기가 아쟁이다. 찰현악기인 해금 아쟁은 지속적인 음을 내는 악기로서 가야금과 거문고보다 창극반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소리와 동작을 파악하여 장면을 만들어 낼 때, 지속적인 현의 소리로 극 중 고조되는 부분은 더욱 고조되게 표출하며, 애절한 곳은 더욱 애절하게, 기쁜 곳은 다양한 가락의 지속음을 통해 더욱 기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박성옥은 이러한 아쟁을 연주하기 편한 크기로 작게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당시 박성옥(朴成玉)은 무용음악을 위해 전통적인 악기의 개량을 주로 많이 하였는데 아쟁 또한 그에 의해 음량이 증폭된 악기로 개량되어 창극과 무용음악에 사용되었다. 1949년 2월 「여성국악동호회」의 〈햇님 달님>은 아쟁의 애절한 소리로 각광을 받은 창극이다. 현재 아쟁산조의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정철호와 한일섭은 그 당시의 공연을 보고 아쟁소리에 반하여, 가야금을 고쳐 아쟁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장월중선, 김일구, 지영희 또한 다양한 시험을 거쳐 오늘날 산조아쟁이라 불리는 전통악기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의 창극은 음악적 표현에서 전반적으로 계면조를 선호하였는데, 이때 우조와 평조 표현보다 계면조 표현을 더 잘하는 아쟁을 민중들이 더욱 좋아하였다. 기존 아쟁의 크기와 개나리 활대는 각 연주자의 부분적 개량과 용도에 따라 변화되었으며, 창극의 반주로써 쓰이던 아쟁은 점차 독자적인 악기의 기능이 확대되어 독주 악기로 발전한다. 유일한 전통음악의 저음부인 아쟁은 저음부의 찰현 음색과 표현력으로 그 시대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대변하였다. 아쟁의 표현력이란 타 전통악기와 달리 거친 개나리 나무의 찰현 소리와 판소리에서 쉰 듯한 목소리의 성음 표현을 말한다. 이러한 아쟁만의 음악적 음색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시대를 풍미했던 창극의 중요한 전통악기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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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1 16:4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한류韓流의 창조적 가치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이니까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강남의 고등학교 주위에는 상추와 고추가 막 지어진 아파트 사이로 간간이 그 푸름을 간직할 시기였다. 1970년대 강남 개발로 한강 이남에 아파트가 하나둘씩 지어지고 젊은이들의 유행이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퍼진 1980년대. 압구정동과 강남역을 중심으로 유흥가에서는 일명 말처럼 흔드는 '말춤'이 유행했고, 음식과 주류를 양반다리의 교자상이 아닌 의자처럼 앉을 수 있도록 방바닥이 꺼진 곳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 주점 문화가 흘러들어왔다. 젊은이들이 강남역의 유흥가를 돌며 멋들어진 춤과 한 잔의 술로 청춘을 예찬한 곳이 바로 강남이었다. 어찌 여흥에 긍정적인 모습만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 시절 그 장소엔 오늘날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 중년들이 한 번쯤 강남스타일로 멋을 부리며 진한 소주 한 잔으로 열정과 패기를 곱씹었던 추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러한 동경을 꿈꾸며 그곳을 찾았고, 그렇게 스타일을 외치며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한 우리 젊음의 패기와 도전 정신의 모체가 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음악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고 유튜브 수억 뷰를 만들며 우리들의 감성은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불과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쓴 지 몇 년, 우리의 젊은 그룹 방탄소년단이 한류韓流의 정체성을 담아 또다시 K-pop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더 시티'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콘서트를 단순히 공연이 아닌, 하나의 축제로 다시 만들었다. 지난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는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LAS VEGAS)란 공연을 시작으로 그들은 한류 감성感性의 돌풍을 다시금 일으켰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리조트 그룹 MGM과 함께 손을 잡고 진행되었다. 현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MGM 그룹 소속 호텔 11곳, 약 3만 7000여 개의 방을 방탄소년단 테마로 꾸며진 BTS 테마룸으로 개조했으며 각 방에는 방탄소년단의 손글씨 웰컴 카드,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담긴 포토 카드 등을 구비하여 한류의 팬심을 전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즐겨 먹는 한식韓食 메뉴들을 코스 요리로 즐길 수 있는 음식점도 선보였는데 이곳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좋아하는 음식들인 비빔국수, 치킨, 붕어빵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코스 요리로 제공하기도 했다. 세계 각 나라에는 제각각의 특별한 문화와 풍습이 있다. 그것은 고유의 문화 전승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라의 현실에 맞게 나타나는 문화의 유행일 될 수도 있다. 그러한 흐름이 우리 대한민국의 멋과 흥, 멜로디로 투영되어 세계 대중문화 중심인 Las Vegas를 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한류 문화의 바람이 아시아를 넘어 함께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욕망 그리고 그것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적 시발점으로 함께 거듭나며 세계적인 도시를 ‘제2의 대한민국’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가상을 넘어 실질적인 현실의 문화 유행과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한류韓流 문화공동체의 역량과 자긍심이며 미래 비전Vision의 창조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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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4 16:43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국가무형문화재 '남원농악'

지난 3월 25일 대한민국의 국악계 큰 어른이시며 남원농악을 이끈 상쇠 류명철 명인이 81세의 춘추로 안타깝게 별세하셨다. 명인이 몸담았던 남원농악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일원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 좌도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단위 대동굿을 통해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전라북도의 농악이다. 특히 들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으로 구성된 마을굿으로 판굿 중 뒷굿(도둑잽이, 재능기) 구성이 특이하며 호남 좌도농악에서만 사용하는 부들상모를 전승자들이 현재까지도 직접 제작하여 연행하는 등 차별화된 연희를 구현하고 있다. 남원농악의 특징은 가락이 다채로우며 놀이 동선과 동작이 세련되고 섬세하다. 그것은 각 장단의 가락과 연희 동선의 예술성이 높다는 이야기로 그러한 농악의 품격은 남다르다. 남원농악을 이끌었던 고故 류명철 명인은 약관인 16세에 마을 농악단에 들어가 기능을 익혔고 18세에 상쇠로 입문하여 남원농악을 이끄셨다. 이후 지역 농악인들을 규합해 1970년대 초 남원농악단을 창단하셨고 오랜 시간 활발한 활동을 하시면서 남원농악의 진가를 대내외에 알렸다. 1997년 8월 남원농악 판굿 발표회를 주도적으로 실연하였고 이듬해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심사를 거쳐 남원농악의 예능 보유자가 되셨다. 류명철 명인과 함께 남원농악의 전승과 진흥을 담당하던 남원농악보존회는 기록 및 채록 작업을 통해 많은 자료를 더불어 남겼다. 남원농악의 가락과 고사소리를 CD와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였고 농악에 들어가는 모든 장단을 정간보와 서양 악보로 기록하여 단행본을 내는 등 남원농악을 위한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러한 결과로 전라북도의 무형문화재였던 남원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승격을 이루어냈고 그 위풍을 당당히 전국의 전통예술인들에게 보여주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악에는 전국 8곳의 농악이 있다. 각각 지역 특화된 연희와 가락을 전승하고 있는데 그 분포를 살펴보면 경기도 1곳(평택농악), 강원도 1곳(강릉농악), 경북 1곳(김천금릉빗내농악), 경남 1곳(진주삼천포농악), 전남 1곳(구례잔수농악) 그리고 전북 3곳(이리농악, 임실필봉농악, 남원농악)으로 각각 차별화된 예술성과 더불어 실연능력과 전승활동, 전승의지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 남원농악은 걸립(乞粒)농악의 전통을 모두 갖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의미는 농악 연희자들이 지역사회 운영의 주축이 되어 마을을 돌며 마을 공공자금을 마련하고자(걸립)하는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 즉 운명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잘 표현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원농악은 마당극 형식의 재담과 상여소리, 호남좌도 특유의 부들상모놀음 등 많은 지역 문화 전통예술의 특징을 담고 있다. 8개의 “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중 3곳을 보유하고 있는 전라북도. 호남평야의 드넓은 대지 위에 선조들의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대변하는 우리 농악은 그렇게 역사 위에 견디어 왔고 우리 민중 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고故 류명철 명인의 명복을 다시금 빌며 호남 운명공동체의 대표적 문화유산 “남원농악”의 보존과 전승이 굳건히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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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7 16:45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9조

우연히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책을 놓칠 뻔했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의 나이인데도 이렇게 헌법에 무지의 소치란 사실이 부끄러웠다. 예술을 하면 정치나 경제엔 참으로 무디어진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에 온몸과 마음을 몰입하지만 의외로 세상 물정엔 그리 밝지 못한 환경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세상과 조제된 자유를 거부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편협된 사고를 저버리고자 하는 예술적 의도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우리의 선배 예술가들은 배고프고 억울했던 시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이제 아픈 추억의 뒤안길이 되었고 현시대에는 많은 예술인은 정치, 경제, 문화 참여와 공조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가로서 얕은 법률 지식을 위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헌법의 전문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중략." 그렇다. 이 땅의 주인인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민족이다. 조국을 위한 이념의 항거와 정의를 위한 시련도 있었고 민족의 단결과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아픔도 있었다. 그러한 역사 진실은 이제 삶의 뿌리가 되었고 시대의 교훈은 현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헌법 서두의 제1장 총강을 살펴보자. 모두가 잘 아는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조항이다. 제2조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중략. 국가는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요건과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알리고 있다. 제3조를 보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토에 관한 문장이며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며 이를 추진한다."로 우리의 현 분단국가에 대한 통일 염원을 담은 소중한 헌법 조항이다. 제5조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란 법령으로 세계 평화에 일조하겠다는 의지 조항이며 제6조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즉 국제사회에서의 한민족 지위와 보호, 존엄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제7조로 들어가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조항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피력한 조항이다. 제8조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국민은 나라 운영에 참여할 수는 권리가 있고 모든 자유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리는 조항이다. 마지막으로 피력된 헌법 제1장 중 제9조 바로 그것은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장이다. 이는 국외 문화 개방과 개혁에 의한 수용보다도 전통문화에 따른 계승·발전이 국가의 존재가치와 발전에 우선시 된다는 것으로 헌법 제1장에 먼저 규정하여 그 소중함을 귀히 알리고 있다. 헌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이자 권리이며 삶의 준칙이다. 헌법 제1장 제9조의 법령이 국민의 삶에 항상 함께하기를 전통 예술가로서 소망하며 의무와 책임을 다시금 소중히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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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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