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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시인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시인이란 자기 삶의 가장 순결한 형식으로 시를 섬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별 흥미를 못 느끼는 이에게는 하잘 것 없을 글 몇 줄에 자신의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시인이다. 한 인간이 무엇인가 자기 삶을 걸어 애쓸 때 거기엔 그럴 만한 곡절이 있게 마련이며, 그 사람 나름의 절실함이 깃들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절실함을 향해 우리는 겸허히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에 나오는 구절이다. 미덥고 어진 그가 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습작생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쓰던 시절이었다. <밤에 쓰는 편지> , <가만히 좋아하는> , <어린 당나귀 곁에서> 등등, 여러 시편들 중에서 <가만히 좋아하는> 에 나오는 <비> 라는 시를 좋아했다.

 

가는 비여 가는 비여

가는 저 사내 뒤에 비여

미루나무 무심한 등치에도 가는 비여

스물도 전에 너는 이미 늙었고

바다는 아직 먼 곳에 있다

여읜 등 지고 가는 비

가는 겨울비

잡지도 못한다 시들어 가는 비

<비> 전문

 

여읜 등을 지고 가는 비를 생각하며 외웠던 시다. 김사인 시인을 좋아했던 나는 그의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고 또 섭렵하며 나아갔다. 시 창작교실을 기웃거리고, 시창작법을 읽고 열심히 쓰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던 시절이었다. 시의 숨결을 그토록 만지길 원했지만, 시는 쉽사리 품을 내어주지 않았다.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자괴감이 들었고 시가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의 채비를 달리하여 시 앞에 임했다.

김사인의 <시를 어루만지다> 에는 다양한 시들과 감상평이 곁들여져있다. 산문화되어가는 시류에 가려있는 마음의 보석인 서정 시편들과 삶의 애환을 담은 인생의 맛이 담긴 시, 우리말의 독특한 맵시와 정갈한 모습이 말의 결과 말의 저편들로 묶여있다. 그가 이끌어내는 시에는 겸허와 공경, 공감과 일치의 능력, 시를 읽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말하고 있다. 정맥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게 전해져 오는 시 앞에서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과 그 힘의 정체성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실물적 상상력을 토대로 시의 전부를 어루만져 보고 냄새 맡고 미세한 색상의 차이를 맛보는 일, 성글게 짜여진 문자 기호들 속에서 마음과 느낌을 들이밀어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시를 새겨 읽고 쓰고 깁고 다듬는 일이 시를 어루만지는 일임을 시인은 말한다. 사랑이 없는 얄팍한 시와 생경한 것을 들춰보고.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며 신기해하고 애써서 하는 말임을 전한다.

시 공부는 말과 마음을 잘 섬기는 데 있다는 김사인 시인의 말이 맴돈다. 마음을 관통하는 정서의 줄기를 단단하게 세우며 좀 더 그윽해지고 싶다면, <시를 어루만지다> 를 펼쳐보자. 마음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헌수 시인은...

전주출생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 당선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시화집 오래 만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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