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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문신 시인-장창영 '여행을 꺼내 읽다'

세상에 지기 위한 연습, 여행

장창영 시인 시집 '여행을 꺼내 읽다' 
장창영 시인 시집 '여행을 꺼내 읽다' 

어쩌다 책이라는 사물과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책은 늘 내 손이 닿을 자리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끔 미운 구석이 살펴지는 법인데, 수십 년 들여다본 책이 싫지 않은 건 전생에 책이 나를 구해준 모양이다. 그런 책을 손에 들면 대개 두 가지를 고민한다. 정독할 것인지 발췌독할 것인지가 첫째 고민이라면,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것인지 두어 번 거듭 읽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나머지 고민이다.

장창영 시집 <여행을 꺼내 읽다> (북컬쳐)는 드물게 발췌독으로 시작해 정독으로 끝난 책이다. 그러면서 자주 들여다보는 책이기도 하다. 이곳저곳 발길이 닿았던 곳의 풍경과 그곳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내면을 낯설게 풀어내는 재미가 있다. 미리 말하지만, 이 시집은 읽는 즐거움에 앞서 보는 맛이 있다. 한 컷 사진이 있고 그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시 형식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문자 기호가 서로 의미를 보완해주니 시집 읽기가 한결 수월하다. 사진만 들여다보다가 책을 덮어도 시집 한 권을 알차게 읽은 보람을 얻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시집이 “세상의 가장 뜨거웠던 쪽이/가장 서늘한 쪽으로/발길을 옮겨가는 순간”(「무이네에 해가 지면」)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삶의 뜨거움으로부터 서늘한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는 일이 바로 여행일 것이다. 일상이라는 욕망과 충동의 뜨거움을 잠시 가라앉히기 위해 우리는 낯선 시간과 공간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럴 때 여행은 “늘상/세상과 이기기 위한 연습만 하다가/오늘은 잠시 지기로 한다”(「나트랑에 부는 바람」)는 약속이 된다. 여행길에서 우리는 나의 길과 만나는 숱한 다른 길을 보게 되고 다른 길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세상에 슬쩍 져줄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시집 <여행을 꺼내 읽다> 를 읽는 일은 시인의 여행길에 동행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앞에서 아득해지고 말았다. “이곳 사람들은/눈 어두운 이를 위해/마음으로 작품 읽는 법과/더불어 세상 가는 길을 점자로 새겨 놓았다”는 시행을 읽고는 “홀로 어둠을 걸어가야 하는 가혹한 운명”(「점자 안내문」)에 잠긴 우리를 떠올렸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 시대라는 어둠 속을 홀로 걷는 중이다. 이런 여행길에 눈 밝고 마음 따뜻한 동행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것이 새해에 여행 시집을 펼쳐 든 이유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움츠렸었나. 만나지 못해 많이 외로웠고 쓸쓸했다. 그래서일까? “어차피 겨울은 끝날 테고/지붕이 있는 한/봄은 또 나비처럼 올”(「시라카와고에서 온 편지」) 거라는 희망을 믿기로 한다. 2022년 새해는 나비처럼 다가올 봄을 기다리면서 한 해의 여행을 시작하고 싶다.

문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시집 <곁을 주는 일> 등을 냈으며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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