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황선미 '트럭 속 파란눈이'

image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중략) 찾는다!”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이 소리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쫓기는듯한데 왜 그리 웃음을 구르게 만들던지…. 요새를 찾아 나는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돌 틈에 발을 딛고, 간신히 꼭대기에 한 손을 얹었을 때였다. 물컹한 무언가가 손아래 잡혔다. 같이 달아나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쥐, 쥐! 이따만 해.”

나는 며칠 동안 셀 수 없이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내 기억이 편집되었겠지만 나는 아직도 새까맣고 고양이만 했던 쥐를 잊을 수가 없다.

『트럭 속 파란눈이』의 은호가 외치는 소리에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거 씻어야 돼. 열 번 스무 번, 더, 더 많이!”

은호네 집에 남은 쌀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하필이면 씻어 놓은 곳에 쥐가 빠지다니…. 하는 수 없이 쥐를 건져버린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쌀을 씻어야 한다고 크게 소리친 것이다. 그 밥을 토하지 않으려 욱여넣었다. 은호에게 가난은 징그러운 것보다 더 힘이 셌다. 

동화의 시작은 소소한 이유로 옥신각신하는 것 같아 재밌고, 흥미로웠다. 송곳니를 뺀 손자의 입안을 찍으려고 아침부터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이댔다. 살점이 뜯기는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크게 입 벌리라고 말했다. 손자의 입안에서 바라보는 카메라 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와 렌즈에 비친 손자의 이까지. 한 앵글에 세 개의 입이 보이는 그림에서 할아버지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손자의 성장 모습을 남기려는 극성스러운 할아버지로만 보였다. 

창고 속 컨테이너, 멈춰선 낡은 트럭, 득실대는 쥐들, 얼마 안 남은 쌀, 이 배경은 모두 빈곤을 보여준다. 돌아오지 않는 부모는 기다림 대신 버림이라는 상처일 뿐이다. 은호는 자신을 찍어 아빠에게 보내는 것도 화가 났다. 멈춰 선 트럭은 너무도 무기력했다. 트럭을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쳐 화풀이를 해도 돌아온 건 아픔이었다. 비상시 연락하라고 쪽지에 적힌 ‘119’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만약 전화를 한다면 그건 분명 할아버지에게 일이 생긴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호는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쌀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는 아이이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기보다 득실거리는 쥐가 없어졌으면 바랄 뿐이다. 하지만 앞날이 캄캄할 것만 같은 은호에게 트럭 속 도둑고양이 ‘파란눈이’는 불빛을 밝혀준다. 버렸던 새끼를 다시 데리고 간 파란눈이는 다독여주는 위로가 된다.

황선미 작가의 작품에는 화해와 성장, 생명존중과 정체성, 희망이 있다. 슬픈 결말이지만 강한 의지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트럭 속 파란눈이』도 암담하지만 희망의 끈을 이어간다. 

아무것도 해줄 것 같지 않았던 고물 트럭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 파란눈이 덕분인지 쥐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호의 창고 속 컨테이너, 고물트럭은 분명 보금자리이다. 긴장과 고난의 전개가 과장되지 않았다. 

글 서두에서 나의 옛 추억과 은호의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왠지 내 가까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황선미 작가의 잔잔함과 강렬함이, 소박함과 치밀함이 균일하게 버무려져 있다. 진솔하고 따뜻하다.

있는 자에 대한 적개심과 시기심이 한 구석에 자리한 은호. 『트럭 속 파란눈이』는 한 아이의 마음이 마지막까지 넘치지 않고 잔잔하게 펼쳐진 이야기가 있다. 

/김영주 작가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마키코 언니'로 등단했다. 같은 해 동양일보 동화 부문에서 '가족사진'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편 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 등을 출간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국회 초당적 협력 요청... “단결과 연대에 나라 운명 달려”

국회·정당인공태양(핵융합)이 뭐길래..." 에너지 패권의 핵심”

국회·정당“제2중앙경찰학교 부지 남원으로”

정치일반전북도청은 국·과장부터 AI로 일한다…‘생성형 행정혁신’ 첫 발

정치일반전북 ‘차세대 동물의약품 특구’ 후보 선정…동물헬스케어 산업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