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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습니다. 얼굴도 가물가물 이름도 가물가물, 열여섯 살 친구들이 보였습니다. 녀석들 촌티 팍팍 났습니다. 제법 심각한 척하는 놈, 아무 생각 없다는 듯 헐렁한 놈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빛바랜 사진처럼 흑백 꿈을 꾸었습니다. 추억과 기억의 차이는 그리움이라지요. 기억에 그리움이 묻어있으면 추억이라는 얘기지요.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예 있고 거기 있는 몸과 마음의 간극(間隙) 때문일 겁니다.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느끼는 멀미일 겁니다. 나이 들면 먼 곳이 잘 보이는 것처럼, 먼 것이 더 꿈에 보이는 터입니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피천득 <장수>) 했습니다. 흘러간 물로 물방아를 돌리려고 기억을 호출하지는 않습니다. 열여섯, 우리는 그때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아마도 울긋불긋 꽃 대궐 속 총천연색 꿈이었겠지요. 그리운 이름 반도 불러보지 못하고 그만 깨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는 옛꿈을 꾼 오늘이 또 그립겠지요.
숲만 보고 살았습니다. 숲을 보라는 가르침은 부분에 집착하다 전체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일 테지요. 그 말씀 따른답시고, 숲만 보다가 정작 그 숲에 깃드는 새들은 놓쳤습니다. 당달봉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넘실대는 바람만 보다가 나뭇잎 끼리끼리 소곤대는 소리 흘리고 말았습니다. 귀머거리였지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씀, 나무는 보지 말고 숲만 보라는 소리로 알아먹었습니다. 삼동(三冬)을 건너려 몸피를 줄인 거겠지요. 어깨를 겯은 거겠지요. 숲속 나무들이 잎을 떨궈 제 발등을 덮었습니다. 가려있던 가지가 드러났네요. 여름 숲 울울창창했던 것이 잎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술 부리듯 연초록 보자기를 끄집어내, 초록으로 갈맷빛으로 때맞춰 바꾼 그 잎을 피워낸 가지가 있었습니다. 잎 피워올린 가지를 벌서듯 떠받친 몸통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지요. 겨울 빈 숲에 나와 압니다. 넉넉했던 품, 수만 장의 잎을 피워내고 떠받친 가지와 몸통의 일이었습니다.
매화나무 가지에 성냥알만 한 꽃눈이 부풀었습니다. 한나절 햇살을 그으면 금방이라도 확, 피어오를 성싶었습니다. 책상 위에 꽂아 두었지요. 서너 밤 지나 벙글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향내도 제법 때아닌 춘삼월이었습니다. 답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계절은 계절다워야, 꽃은 또 꽃다워야. 올겨울은 유난히 포근합니다. 한겨울인데 아직 눈다운 눈 한번 구경하지 못했네요. 계절답지 못한 겨울입니다. 저 들녘의 보리싹도 이맘때는 솜이불 끌어 덮듯 눈을 덮고 칼바람을 견뎌야 하건만, 겨울답지 않은 날씨에 그만 웃자랐다 합니다. 웃자란 보리는 대가 실하지 못할 게 뻔합니다. 매운바람과 쌓인 눈은 시련 아니라 정한 이치라는 말씀이지요. 사람답지 못한 사람 제 노릇 못 하듯, 보리도 필경 제구실 못 하겠지요. 들여놓은 매화가 반쯤 벙글어 한 이틀 향기로웠습니다. 행여 시들세라 수반의 물도 봐 주며 다정했건만, 마저 벙글지 않고 그만 풀이 죽습니다. 뜨락에 있어야 할 매화나무 가지를 꺾어 방 안에 들인 탓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봉급을 소금으로 주었다지요. 옛날엔 금처럼 귀한 물건이었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할머니의 무릎에서 듣던 옛날이야기에도 소금장수가 자주 등장했었지요. 어머니, 어쩌다 손님이라도 오실 양이면 밥상을 들이시며 첫 말씀이 간이나 맞는지 모르겠네요 였지요. 모냥도, 때깔도, 향도 아니고 간이 우선이었던 거지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양념보다, 발효보다 소금을 제일의 맛이라 했지요. 지난해도 당신이 있어 간이 맞았습니다. 뻣센 내가 다소곳이 숨 죽었으며, 슴슴한 나날이 곰삭아 게미가 들었습니다. 그래요, 당신이 내게 짭조름 스민 거지요. 이 세상 냄새 중엔 빵이, 풍미 중엔 소금이 최고라지요. 소금이 쉴 때까지 같이 가실 것을 믿습니다. 곰소염전, 저 타는 노을 아래에선 소금 아니라 황금입니다. 한생 아니라 영원입니다. 당신, 아직 촛불을 켤 시간이 아닙니다.
두메산골 밤하늘은 숨차게 초롱 했습니다. 깨금발을 디뎌도 잡힐 듯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장대처럼 자라기를 소원했습니다. 별을 따서 가슴에 달고 싶었습니다. 암만 기다려도 고참 초병은 오지 않았지요. 하릴없이 별을 셌습니다. 어깨에 메고 있던 소총 끝에 일등병 계급장 속 작대기 두 개를 이어 붙여도 어림없었습니다. 손가락이 열 개뿐이라는 걸 안 것도 그 밤이었습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운동주 <별 헤는 밤>)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흐리지 않아도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짝반짝 밝은(晶) 빛을 내던(生) 별(?)이 사라졌습니다. 내 눈이 어두워진 탓만은 아닙니다, 이미 재바른 누군가 다 따간 것이 분명합니다. 북두칠성 그 큰 국자로 술 떠 마신 밤이 많았으나, 아니다 아니다 빗금을 그으며 사라지는 별똥별 두엇 보았을 뿐입니다. 사라진 새벽잠에 일찍 눈 뜬 어느 아침, 짓밟히는 길바닥의 수많은 별을 보았습니다. 간밤에 다녀간 내 꿈의 잔해입니다.
세상에서 비행기가 제일 빠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참 더디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벌써 세밑입니다. 북미 인디언 아라파호족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른다는 11월도 갔습니다. 이제 정말 모두 다 사라지는 달입니다. 겨울 하늘이 쨍합니다. 마냥 푸르르던 게 엊그제만 같은데, 추수 끝난 겨울 논배미가 휑합니다. 없는 듯 묻혀있던 논둑이 제모습을 드러냈네요. 나릿나릿, 부드럽게 돌아가는 급할 것 하나 없는 논둑길을 갑니다. 곧게 뻗어 질러가는 세상 속에도 이렇게 더딘 길이 있었습니다. 쟁기를 끌던 누렁소의 순하디순한 등이, 논둑에 앉아 달게 새참을 먹던 그 시절이 잡힐 듯 눈에 선합니다. 부드럽게 마을을 감싼 뒷산 산등성이로 눈을 줍니다. 내년으로 가는 올해의 끝자락, 세상도 사람도 부드럽고 더뎠으면 좋겠습니다. 올려다본 하늘에 비행기 한 대 떠 갑니다.
지금은 익산이라 부르지만, 옛 이름 이리였다. 완주 동상에서 시작된 물길이 삼례를 지나 제법 큰물이 되어 만경강이라 했다. 이리역을 출발한 기차가 종착역 목포를 향해 내닫다가 길게 목이 쉬어 우는 만경강 어디쯤, 목천포(木川浦)가 있었다. 남겨 두고 떠나는 사람, 보내고 남는 사람, 눈물이 강물에 넘쳤겠다. 그 목천포 강둑에 갈대가 무성했더란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떠나간 사랑을 부르며 사나이가 운다.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못 잊어 우는 것은 사나이 마음, 지키지 못한 사랑에 사나이가 흐느낀다. 목천포에서 사랑을 키운 작사 작곡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알려진 노래 <갈대의 순정>, 여름내 갈대숲에 드나들던 개개비 떼도 이젠 없다. 사나이의 순정인 듯 오늘도 갈대는 흐느끼고, 속도 모르고 하늘은 또 저리 시리게 푸르다. 소설처럼 영화처럼, 사랑은 왜 이루어지지 않고 오래 남아 가슴을 저미는 걸까?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엇갈리는 걸까.
점심시간이면 몰래 쪽쪽 쪽 수도꼭지를 빨았더랍니다. 배부르다 배불러! 최면을 걸었지만 오그라드는 등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점심때 먹은 고구마가 얹혔나? 저녁엔 굶어야겠다, 닥닥 쌀독 긁어 지은 밥 식구들 다 퍼주고 부엌으로 나가시던 등 고부라진 어머니는 더 오래된 전설이었습니다. 때로는 시침 뚝, 뗍니다. 시름을 감추고 한숨을 숨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닌 척 세상을 속이고 자신마저 속여도, 쓸쓸한 등은 끝내 어쩌지 못합니다. 저기 한 사내가 앉아있네요. 면목 없다는 듯 의자 끝에 궁둥이 살짝 걸치고 있습니다. 수그린 등이 어쩔 수 없어 흔드는 백기 같습니다. 세상을 받아내는 방패 같습니다. 빈 지게가 더 무거운 법! 돌아가 식솔 앞에 쌀 한 말 부릴 수 없다는 듯 빈 가방 밀쳐놓은 저 사내, 사각의 링 위에 수건 던지고 온 복서 같습니다. 저물기를 기다려 허청허청 귀가할 것입니다. 시월 상달, 오늘은 달도 없는 그믐입니다. 먼 옛날 아버지, 마당에 나락 한 짐 부려 놓는 가을 저녁 허엄 험 연신 헛기침을 하셨지요.
현가루(絃歌樓) 뒤편 은행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있습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강당 마루의 시조창 따라 깍 깍 깍 거립니다. 무성(武城) 고을이 바로 여깁니다.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다스린다는 공자(孔子)의 땅입니다. 현가불철(絃歌不輟), 거문고를 타며 노래 그치지 않으니 세상이 환합니다. 즐겁고 행복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불러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노래 속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느낀다 했습니다. 가을 가고 겨울 지나 봄 오면 까치네 식구도 더 늘어날 테지요. 둥그렇게 둘러앉은, 깍깍 깍깍 노랫소리 더 크게 울려 퍼지겠지요. 그때 은행나무 가지는 둥 둥가, 바람결에 거문고를 타겠지요. 늦가을 무성서원에 연풍(年豐)코 국태민안(國泰民安)하여 구추황국단풍절(九秋黃菊丹楓節)에, 정가악회(正歌樂會) 회원들의 노랫소리 낭랑합니다. 손뼉 치는 단풍나무 손바닥이 마냥 붉습니다.
벚나무 잎새에 복사꽃 같은, 주차장에 핀 꽃 이름을 묻는 이의 소매를 끌며 그냥 꽃이라 일렀습니다.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밟으며 올라갑니다. 어디선가 목탁 소리 들립니다. 절간은 아직 멀어, 두리번거립니다. 딱딱 딱딱 탁목새네요. 앞서가던 이가 닥닥 닥 돌 봉숭아를 찧어 손톱에 처맵니다. 다섯 살배기 오줌발인 듯 쪼르르 마른 폭포가 나립니다. 벼랑에 매달리던 옛길 아니어도 숨이 찹니다. 철계단을 딛는 발소리가 텅 텅 잘 맨 장구 소리 같네요. 투두둑, 은행알 떨어지는 우화루 옆 돌담 가에 또르르르 감로수가 대롱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적묵당 마루에 걸터앉습니다. 소슬바람에 땡 땡그렁 처마 끝 풍경이 웁니다. 바싹 마른 가을볕에 요사채 창호지 숨 쉬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요. 산마루엔 이미 반 뼘 햇살. 미처 못 들은 새벽 싸리비 소리, 스님 방 찻물 끓는 소리, 서리 내리는 소리는 아껴 두기로 합니다. 오지 않는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꾸 가(최남선 <혼자 앉아서>)던 입동 전날 불명산 화암사에 올랐습니다. 온몸으로 가을을 들었습니다.
축제가 끝난 뒤였습니다. 하늘 높이 떠올랐을 애드벌룬도 북적였을 인파도 온데간데없습니다. 활짝 피어났을 꽃도 향기도 희미합니다. 이미 지기 시작한 구절초 꽃쯤 관심 없다는 듯 누군가 돌탑 앞에 있네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집에서 가져간 돌을 놓고 오듯, 정화수 떠놓고 비나리 하듯, 돌멩이 하나 올려놓습니다. 필경 풀리지 않는 무엇에, 해결되지 않는 어떤 일에 쫓겨 온 성만 싶습니다. 마을 어귀에 서낭당이 있었지요. 돌무더기 위에 돌멩이 던져놓으며 그 앞을 지나곤 했지요. 소망 위에 소망을 올려놓는 돌탑 쌓기,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안식을 얻기 위한 기도겠지요. 돌탑 앞 저이, 진지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극정성 쌓다 보면 행여 애간장 녹이는 일 잊기도 하겠습니다. 우리는 평생 기도하며 살지요. 쪼그려 호미로 김을 매는 농부의 일도, 구부려 노를 젓는 사공의 일도 다 기도입니다. 하늘에 고민을 고하는 게 아니라 하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도라 했던가요? 층 층 돌탑을 쌓습니다. 하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요, 축제는 아주 잠깐입니다.
두 눈 멀쩡히 뜨고 길을 잃었다. 북두칠성 그 국자 끝을 따라가면 박혀 있던 붙박이별이 사라진 뒤, 난바다 어디쯤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 길 없었다. 암초에 걸린 듯 오도 가도 못 했다. 막막한 가슴팍만 주먹으로 쳤다. 빈 배 한 척 부서질 듯 흔들렸다. 이제 그대 있어 길이 보인다. 비바람 거세고 거친 파도 밀려드는 이 밤이 안심인 건, 방파제 끝 거기 나침반인 듯 서 있는 그대 때문이다. 막막한 내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먼바다에 나갈 수 있었던 것, 깜박깜박 꺼지지 않는 당신 생각 때문이다. 칠흑 같은 세상, 눈을 씻고 본다. 사라질 듯 가물거리는, 그대 분명 한 점 불빛이다. 대낮에도 캄캄한 내게,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내게 그대는 오늘도 한 잔 소주를 따라준다. 내일도 모레도 짠 내 나는 바람이 뺨을 갈기고 안개가 짙을 것이나, 지친 어깨 받아주는 그대로 하여 숨통이 트일 것이다. 갑갑한 내가 끔벅끔벅 망망한 바다를 본다. 숨을 고른다. 하늘의 붙박이별이 내려온 당신, 한낮에도 불빛이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싸늘합니다. 옷깃을 여밉니다. 그러고 보니 시월도 벌써 끝자락이네요. 해마다 반복되던 반성을 올해도 합니다. 관성으로 살아온 탓입니다. 눈뜬장님처럼 산 때문입니다. 익숙한 자신에게 관대한 탓입니다. 매표소 앞 저이, 여행을 떠나는 게 분명합니다. 사람은 여행하거나 아플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지요. 갈 때 가고 멈출 때 멈추고, 이 길로 저 길로 또 제 속도로 가려면 여행은 혼자여야 하겠습니다. 여행은 계획된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관광과는 분명 다른 법입니다. 이제 낯선 여행지에서 낯익은 타자 같은 자신을 만날 것입니다. 떠나온 낯익은 자리를 낯설게 바라볼 것입니다. 저이, 어깨에 멘 가방에 들어있을 속옷 몇 장과 한두 권 책도 거추장스러워질 수 있겠지요. 삶이 인생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인생의 시라지요. 여행량이 곧 인생량이라지요. 부디 낯익은 나를 버리고 돌아와, 관성의 나날에 브레이크 걸어 보시기를요. 옷깃 여미듯 정신 줄 바짝 여밉니다. 궤도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꽃길을 갑니다. 재채기만 해도 놀라 달아날 것 같다는 꽃, 코스모스 길을 갑니다. 빨강, 자주, 분홍, 흰, 조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카오스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신이 맨 처음 만들었다는 꽃이 분명한 듯합니다. 긴 허리를 살살거리는 살살이 꽃, 연습 없이 만든 꽃이라 연약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기로 합니다. 계절마다 수많은 꽃이 있다지만 누가 뭐래도 가을엔 코스모스가 제격입니다. 한여름에 피어도 어쩔 수 없는 가을꽃, 아련한 소녀의 귀밑머리처럼 나부낍니다. 신작로 양편에 코스모스가 나란합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분명 기차역에 닿을 것입니다. 이 길을 곧장 걸어간 코스모스, 깨금발을 딛고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을 터입니다. 목 빼고 기다렸을 터입니다. 그 옛날 젊디젊은 어머니의 나들이옷 같은, 추석 전날 밤 담 너머로 아랫집 대청마루를 기웃거리던 꽃분이의 블라우스 같은 꽃입니다. 콩쿨대회가 끝날 때쯤이면 휘영청 달이 밝았지요. 달빛 아래 코스모스 환장하게 고왔었지요.
꽃은 언제부터 꽃이었을까요? 우리는 왜 꽃을 꽃이라 이름 불러주는 걸까요? 장미꽃도 애초부터 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장미라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가시 달린 나무나 덩굴의 다름 아니었을 터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이라 불러주는 순간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이 꽃을 향해 무한 박수를 보냅니다. 영원하여라, 연방 셔터를 누릅니다. 꽃보다 더 꽃입니다. 기럭아비를 앞세운 사모관대 신랑은 초례청에서 벌써 벙글고 있습니다. 제 안의 꽃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꽃가마에서 내린 원삼 족두리 신부는 이 세상의 꽃이 아닌 듯합니다. 아직 남아있을 배롱나무꽃이 그만 제빛을 잃었습니다. 청실홍실 엮어 늘 푸른 소나무와 대나무에 걸쳐놓은 초례청으로 사뿐 걸어가는 신부의 얼굴이 몰래 붉습니다. 한 쌍의 기러기 앞에서 표주박의 술을 나눠 마실 두 꽃송이, 갈채가 쏟아집니다. 전주 향교 대성전 뜰, 꽃 같은 시절입니다.
우리는 평생 몇 그릇의 밥을 먹는 걸까요?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몇 벌의 옷을 입고, 들어앉을 집은 또 몇 평이어야 족할까요? 동굴에서 살던 먼 조상들은 하루하루 살았겠지요. 그날의 수고로 그날을 연명했겠지요. 운이 좋아 수확이 넉넉할 때면 나누었겠지요. 남은 과실과 곡식, 고기는 어차피 썩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던 인간들이 냉장고를 만들었습니다. 창고에 그득그득 쟁여놓고 남들보다 더 기름지게, 더 많이 먹고 싶었지요. 토끼, 양, 여우, 소의 가죽을 걸어두고 평생 껴입으려 하지요. 한 바가지면 족했을, 한 보자기면 흡족했을 인간들의 욕심이 자꾸 커진 거지요. 가을장마에 갇혀 답답했습니다. 어젯밤만 해도 걷힐 기미라곤 없던 하늘이, 쨍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이 고슬고슬합니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상큼합니다. 길바닥에 고인 빗물이 푸른 하늘을 품었습니다. 겨우 보자기 하나 자리, 한 바가지 빗물에 온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한 바가지면 족합니다. 보자기 하나 펼칠 자리면 충분합니다. 내 마음속 창고.
3, 8일에 서는 인월 오일장. 도회의 여느 시장처럼 현대화(?)되었더군요. 명절 끝이라 한산했습니다. 점심은 뭘 먹어볼까? 두리번거리는데 보리밥집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쌀이 귀했을 지리산 자락, 장 보러 오는 어르신들 다 보리밥에 물렸을 텐데 말입니다. 좌판을 둘러봤습니다.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같은 산나물 등속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요. 좀약에 이태리타올 빨래집게 골무 참빗. 꼭 휙휙 달아나는 세상에 손사래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막내 고모 아직 처녀 적, 수틀 앞에 오색실 던져주시던 거나한 할아버지가 스쳤습니다. 낭자머리에 곱게 동백기름 바르신 할머니도 보였고요. 어느 늦가을 장날이었던가요? 아버지도 어머니 손에 구루무 한 통 가만 들려주셨지요. 눈썹연필, 입술연지, 색조화장품, 농사일 꺼끔헐 때 곱게 분 바르고 좋은 데 구경 가시라 좌판에 화장품도 그득하네요. 나이 들어가는 누이에게 매니큐어 하나 사다 줄까 생각 다가, 혹시 봉숭아꽃은 없나 두리번거렸습니다. 화개장터처럼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남원 인월 장날.
아파트 마당에서 고추가 말라간다. 맨드라미 꽃보다 더 붉다. 한 소쿠리나 될까? 채반과 피서용 매트 위에 널린 고추, 옥상의 스티로폼 상자나 골목 공터나 댓 평 주말농장에서 키워냈으리라. 주차장 한쪽에 참 손때 맵게 널려 있다. 엉덩이 비집고 들어앉을 만큼의 땅만 보이면 푸성가리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담벼락 밑이나 길가에 꽃보다 먼저 상추 고추 방울토마토를 피우는 건, 마음 깊숙이 새겨진 농경의 유전자 때문이리라. 고향의 부모님께 철 따라 쌀이며 양파 감자 마늘 참깨 고추를 바리바리 받아먹은 몸속 기억 때문이리라. 봄이면 두어 발 이랑에 씨를 심고 모종을 내는 사람들, 행여 잊어먹을세라 손발에 흙냄새를 바르는 것이다. 잡초에 묻힐세라, 가물세라, 진딧물 꼬일세라 푸성가리보다 먼저 푸르러가는 것이다. 눅눅한 가을장마도 말려버리는 태양초가 맵다. 매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고개 들어 아득한 하늘을 본다. 지금은 가고 없는 얼굴이 어른, 어른거린다. 저 바지런하고 손때 매운 이웃 덕분에, 올겨울 맛있게 맵겠다.
엄마와 너덧 살 아이가 길을 갑니다. 비척거리는 손 잡아 주듯, 아이는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입니다. 자전거 소리에 놀란 풀숲의 방아깨비, 메뚜기가 뜁니다. 고추잠자리는 한 뼘 더 날아오르고 갈대숲 참새떼 포르릉 날아갑니다. 아이야, 한세상 살아가다 보면 달려야 할 때도 있는 법이란다. 때로는 강을 건너고, 산도 넘어야 한단다. 돌 지나 한 걸음 두 걸음 가르치듯, 오늘은 자전거 걸음마입니다. 헬멧을 쓰고 무릎보호대를 한 저 꼬마, 넘어져 상처가 나기도 하겠지요. 그렇게 고꾸라지며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바로 선다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는, 알음이 몸과 마음에 새겨지겠지요. 자전거를 세워두고 엄마와 아이가 징검다리 앞에 섭니다. 손 꼭 잡고 징검다리 걸음마를 합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일렀을까요? 엄마의 빨간 가방이 방점으로 찍힙니다. 자전거 바큇살에 초가을 햇살이 반짝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엄마의 자전거는 노랗습니다. 아이의 네발자전거 손잡이는 하늘색입니다.
처처에 꽃입니다. 나팔꽃이 피었었고 마지막 장미가 피었으며 국화가 필 것입니다. 산수유꽃, 매화, 배꽃, 복사꽃, 살구꽃, 작약, 목단, 능소화, 봉선화, 맨드라미, 코스모스, 휴- 이름을 부르기도 숨넘어가는 꽃들. 꽃을 미워하는 사람 없습니다. 욕망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향기 없어도 때깔 곱지 않아도 모양이 좀 빠져도, 꽃은 세상 모든 환한 것들의 은유입니다. 벼꽃이 피었습니다. 화단 가득 하얗게 피었습니다. 저 꽃을 피우기 위해 농부는 땅을 갈고 물을 대고 모를 냈을 터, 새벽 발걸음 소리 들려줬을 터, 벼꽃에서 달큰한 향내가 납니다. 가마솥 밥 지을 때 흘러넘치던 밥물 내가 납니다. 그 옛날 아버지, 가뭄에 제때 모내기를 못 하면 풀풀 흙먼지 날리는 논배미보다 더 타들어 가셨지요. 밤송이를 당신 겨드랑이에 넣어보고 참을만하면 늦지 않았다고 했었지요. 풋대추가 콧구멍에 들어갈 정도면 쭉정이라도 먹을 수 있다, 늦모를 냈지요. 화단에 쌀꽃이 피었습니다. 눈이 침침해져야 비로소 보이는 꽃, 꽃 중의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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