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데스크창] '방폐장대화'에 거는 기대

이경재 편집국장

 

희랍시대 소피스트들은 입으로는 진리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 세상을 어지럽혔다. 공리공론이 횡행하자 이를 개탄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대화의 방법을 사용했다. 몸소 아테네의 거리에 나가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올바른 길을 가르치려 했다. 이때 사용한 게 문답식 대화인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상대방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된 지식이나 사고를 깨닫게 했다.

 

자가당착 産婆法의 백미

 

이 문답식 대화법은 산파가 아기를 받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대편의 답을 이끌어낸다 해서 '산파법'(産婆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어머니는 실제 산파였다.

 

대화를 할 경우, 특히 무거운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경우에는 초장부터 상대와 다른 주장을 내세워 반박하는 것은 최고의 방법이 아니다. 서로 맞서는 두 테제 중에서 어느 편이 옳은지를 다시 따져봐야 하는 순환의 오류를 범하게 되고 결국 대화의 진전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최고의 방법은 상대의 주장이 모순을 담고 있다거나, 터무니 없는 귀결을 낳는다거나 등등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주장이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드는 것인데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은 이의 백미이다.

 

부안 방폐장 유치문제를 놓고 정부측과 반대대책위측이 '부안지역 현안을 위한 공동협의회'(위원장 이종훈 경실련 공동대표)란 이름을 달고 지난 2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첫 대화를 한데 이어 31일 두번째 머리를 맞댄다.

 

양측이 추천한 협의회 구성원 면면은 이론과 논리에서 전문가 수준이고 국민들로부터도 각기 대표성을 담보받기에 충분한 인사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방폐장 '백지화'라든가 '유치강행'이라는 고착적 전제조건을 달고 대화에 임한다면 사실 대화할 필요가 없다. 몇차례 못가 파국을 맞고 말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시간만 낭비하고 국민을 또한번 속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반대위측은 '시민들이 먼저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하고 질문자가 다시 소크라테의 질문을 받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의 오류에 빠져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식'의 산파법을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방폐장 유치와 관련한 오류와 모순 덩어리들이 용광로 속에서 용해돼 쓸만한 물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장(場)으로 이번 대화가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 주민들이 갖는 혼란과 불안, 국감에서 드러난 모순, 정부의 신뢰 문제, 에너지대책 등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새 주조물로 태어나게 만들어야 할 현안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도 방폐장 문제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나 기술적 이성적 논쟁보다는 정치적인 또는 이념적인 행사로 색채가 변질돼 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현실을 정확히 분석해 보고 찬성이나 반대의 상호논쟁을 거치면서 주민이나 국민의 의사를 타진하고 대안이나 결정사항을 제시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밀어부치기식 강행'과 '무조건적인 반대'만 있어왔다.

 

오류와 모순 용광로에

 

대화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제로베이스의 사고에서 출발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가능한 모든 사항이 검토되고 충분히 논의될 때 생산적인 마당이 형성될 것이다. 방폐장 유치의 절차상의 문제와 안전성, 기술성 등에 대한 논의 등은 무거운 주제임에 틀림 없지만 서로가 '내것만 고집하는 아집'만 버린다면 머리를 맞대고 충분히 논의가 가능한 사안이다. 다양한 방법을 놓고 얼마나 고민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민도 해보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다면 억지에 다름 아니다. 공리공론 속에서 진리를 캐내려는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방폐장 대화에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이경재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전북도, 산업 맞춤 인재 키워 고용위기 넘는다

정치일반분산된 전북 환경정책…통합 기후·에너지 지원조직 필요성 제기

전주전주시, 생활밀착형 인프라 강화한다

기획[2025년 하반기 전주시의회 의정 결산] “시민과 함께 전주의 미래 준비하는 의회 구현”

경제일반[주간 증시 전망] 코스닥 활성화 정책, 배당소득 분리과세 정책에 기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