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는 가볍지만 노래할 때 가장 행복
잔잔하다, 어둡다, 낮고 깊다, 쓰다, 때론 달콤하다…. '다크 초콜릿'이 아니다. '재즈(jazz)'다. 그렇다면, 이 힌트는 어떨까?
아무도 시키지 않는 거리 공연을 한다. 노래로 지나던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주머니는 가볍지만 꿈과 열정은 차고 넘친다.
정답,'재즈 보컬트레이너 김주환씨(25·johnnys studio 대표)'다.
재즈 음악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보편화 된 장르는 아니다.
많은 일반인들에겐 '세련된 분위기를 낼 때 안성맞춤이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즈보컬은 절대 다섯손가락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잘 모른다'는 말이다.
'다수의 문외한'인 일반인들과 달리 김씨에겐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재즈. 그는 누구이고 왜 재즈만 바라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씨가 노래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부산 동의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하면서부터. 악기를 다루고 공연을 하는 게 일과였고 일상이었다. 매일 이렇게 노래하면서 살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대학교 1학년때 진주시립교향악단에서 재즈와 국악을 접목시킨 공연을 하는데 제가 드럼을 맡았어요. 공연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보컬을 뒤에서 바라보는데 갑자기'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치는 거에요. 사실, 학교 다닐 때부터 노래 잘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축제나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도 많이 했고요. 그땐 남들이 잘한다고 해서 노래를 했다면, 지금은 제가 노래 할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해서 부른다는 게 다르지만요."
그의 스튜디오는 전주시 경원동 옛 전주백화점 뒤의 외진 골목에 있다. 아는 사람도 찾아오기 쉽지 않은 위치다. 굳이 구석진 자리를 택한 이유를 꼽으라고 하니, 숨어있는 맛집이 진짜 맛집인 이유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바로'자신감'.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의 지도를 받기 위해 골목길을 찾아 오는 수강생들은 계속 늘고 있다.
"군대에서 옆 중대에 복무 중인 연예인(가수) 보컬트레이너를 알게 됐어요. 기초 발성법부터 하나씩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거죠. 또, 덕분에 가수 '브라운아이드소울'에게 재즈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재즈의 '마력'에 빠져든게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열 달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뒤 전주로 내려와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유학 비용과 스스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음악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고 낡은 학원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얼마 후, 학원은 소위 '대박'이 났다. 새로 온 보컬 트레이너가 실력파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수강생이 줄지어 등록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실용음악 학원이 드문 전주의 특성상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 아르바이트로 모은 500만원이 전부였지만 운 좋게도 대출 조건이 맞아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스튜디오를 차린지 어느새 3년이 됐다.
막상 일은 벌여놓고 보니 가진 돈도, 인맥도 없었다.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젊은 사장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택한 게 바로 길거리 공연이다.
"전주는 연극이든 음악이는 공연 자체가 부족하잖아요. 서울은 홍대나 대학로 주변만 봐도 거리 공연이 하나의 공통된 문화 코드가 됐죠. 노래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저도 그런 문화가 좋더라고요. 처음엔 여기저기서 빌린 장비들로 전북대학교 앞에서 무작정 공연을 시작했어요. 걱정 많이 했는데 왠걸요, 생각보다 정말 반응이 좋았어요. 그 후 전주 시내, 대학교 근처 어디든 공연을 하다 보니 다음 공연이 벌써 아홉번째더라고요."
'길거리 콘서트'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직접 만든 무대에서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주환씨. 젊지만 결코 어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고민의 시간이 남긴 굳은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모르게 고생도 많았지만 흔들림없이 목표를 좇은 그는 이제 몇 년 후, 미뤄온 유학을 갈 생각이라고 했다.
"유명한 여자 재즈 보컬은 많지만 남자는 거의 없어요. 재즈가 보편화 되지 못한 영향도 크다고 봐요. 일본이나 유럽만 봐도 거의 모든 연령대가 재즈를 즐기는 편이거든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땐 저도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성 보컬리스트'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주에도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 공연이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어른스런 생각, 길 가다 공연 잘 봤다며 아는 체를 하는 시민들도 있다며 부끄러운 듯 웃는 철부지,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닌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노래를 할 줄 아는 천생 보컬리스트, 김주환에 대한 단상이다.
오늘을 즐기며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는 그에게 한국의 '마이클 부블레', 아니 세계를 감동시킬 '대한민국의 재즈 보컬리스트'의 희망을 조심스레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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