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맑은 소 눈망울 보며 정 주니 더욱 예뻐져…일 많지만 오늘이 즐겁고 더 나은 내일 꿈꾸니 행복
"지금처럼 소 열심히 키우면서 단란한 가족 꾸리고 살면 그게 즐거운 인생인거죠!"
껄껄껄. 성준남 씨(35)의 웃음은 보는 이까지 절로 웃음짓게 만든다.
성 씨는 요즘 농촌에서 보기 드문 30대다. 완주군 고산면 양야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한우를 키우기 시작한지 이제 4년 차. 아버지가 4마리, 성 씨는 8마리를 키우며 벼농사를 짓고 있다. 규모도 작고 경력도 짧은 풋내기 귀농인인 셈.
"어려서부터 한우를 키우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소가 친근했어요. 크고 맑은 눈으로 저를 알아보며 눈인사를 하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자꾸 정을 주니까 더 예뻐하게 된거죠. 다른 동물보다 유난히 소에 애착이 가는 이유에요."
마을에서도 아니 완주군 전체에서도 어린 편에 속하는 성 씨는 수십 년씩 한우를 키운 동네 어르신들에 비하면 막내 아들뻘. 그래서 더 할 일이 많다. 지난해부터 마을 이장이 되면서 '최연소 이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 가을엔 늦깍이 신랑이 된데다 곧 아빠가 된다며 싱글벙글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는 데 한창인 나이에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개그맨이 하고 싶어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어요. 온갖 고생을 하며 20대를 보냈는데 꿈도 못 이루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저버렸죠. 결국 2007년에 고향으로 돌아왔죠. 그때부터 부모님 일 도우면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성 씨는 작은 체구 때문에 군대를 면제 받았다. 1998년, 개그맨을 하겠다며 상경해 모든 방송사를 쫓아다니며 시험을 봤다. 하지만 방송인의 꿈은 만만치않았다. 계속되는 낙방에 점점 지쳐갔다. 돈은 벌어야 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술집 지배인으로 5년, 연예인이 많이 찾는 라이브카페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용돈을 벌었다. 막막하고 그늘진 삶을 살면서도 개그맨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한 극단의 개그팀에 합류했지만 대학로에서 표를 팔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게 고작. 끼니도 못 챙기고 스트레스까지 받다보니 갈수록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이다.
"1년 정도 쉬면서 부모님 일을 도왔어요. 소도 관리하고 농사일도 거들고…. 아무 것도 모를 때였으니까 일손 거드는 정도였지만 이젠 생업이 되니까 책임감도 커지고 할 일도 훨씬 많아졌어요. 부담이 크지만 즐거워요."
농촌으로 내려와 정착하면서 욕심도 생겼다. '진짜' 농어민후계자가 되기 위해 제대로 배우고 싶어 농업개발대학원을 다녔다. 1년 동안 부회장을 맡으며 열심히 한 덕에 도지사상을 받고 수료했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2007년에는 30마리를 키웠지만 이젠 12마리까지 줄었다. 사료비를 비롯해 유지비도 많이 들고 부쩍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내다 팔거나 병들어 죽으면서 떠나보냈다. 마음 고생도 많았고 지칠 법도 하지만 꿈 많은 젊음 농업인은 지칠 줄 모르는 듯 했다.
성 씨는 새벽 5시면 일과를 시작한다. 부지런히 축사로 가서 소의 아침을 챙겨준 뒤 인근 봉동 3공단에서 일용직 근로를 한다. 일거리가 없을 땐 논일,밭일을 하러 나선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오후 6시께. 일을 마치고 나면 정작 아내와 함께 한 시간보다 소와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거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가정을 꾸리면서 본가에서 400여m 떨어진 곳으로 집을 지어 분가했습니다. 가끔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아내와 손잡고 집까지 걸어갈 때면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할 일이 많지만 오늘이 즐겁고 내일은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아직은 시작 단계에요. 계속 소를 키우면서 축사도 늘리고 많은 소득을 내고 싶어요. 대체로 영농인들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소를 수십 마리 키워도 그게 다 돈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래저래 대출 받다 보니 빚도 많고요. 저는 규모는 작지만 빚 없이 시작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거죠. 앞으로 한 마리 한 마리 제가 직접 키워가며 고소득을 내도록 열심히 할 겁니다."
소를 아끼는 마음도 크지만 생업으로 삼은 만큼 소득을 올리는 일에도 집중하고 싶다는 그. 마흔 살까지 한우 50두를 목표로 오늘도 축사를 지키는 성 씨.
젊은 영농인이 늘어 완주뿐만 아니라 전북의 농촌도 힘차고 젊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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