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시 당선작 - 검은 줄, 김정경

파업이 길어지고 있었다

 

주머니엔 말린 꽃잎 같은 지폐 몇 장

 

만지작거릴수록 얇아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방바닥에 검은 줄 하나 그어져 있다

 

특수고용자로 분류된 나는

 

노동조합이 철야 농성 중인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출입문 위에

 

붉은 글씨로 쓴 부적들 나부끼고

 

제 이름 외치며 뛰쳐나온 노란 팬지꽃

 

화단 위에 삐뚤빼뚤 구호를 받아 적었다

 

나무 기둥의 몸을 열고 나온 날개미들,

 

좁은 방에 검은 줄 늘려가고 있다

 

문 걸어 잠그고

 

쓰다 남은 살충제 쏟아 붓는다

 

혼자서 살겠다고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던 자기소개서

 

개미들이 따라가며 밑줄을 긋는다

 

고쳐 쓰다만 자기소개서 위의 검은 줄이 흩어진다

이화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전북현대[CHAMP10N DAY] 전북현대 ‘우승의 나침반’ 거스 포옛과 박진섭이 말하다

전주‘전주 실외 인라인롤러경기장’ 시설 개선…60억 투입

영화·연극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출품 공모 시작

김제김제시 종자산업 혁신클러스터 조성 ‘파란불’

금융·증권미 증시 덮친 'AI 거품' 공포…한국·일본 증시에도 옮겨붙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