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단어 고르고 맞춤법·띄어쓰기도 중요
△음정·박자·단어
친구들끼리 노래방에서 노는 동안 '인기 짱'은 누구일까.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일까. 그럴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니다. 음정 박자를 완전히 무시하고(가사는 자막으로 정확하게 나온다) 큰소리로 끝까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
왜냐고? 재미있지 않은가. 소음공해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노래는 듣는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노래에 자신이 없는 친구들한테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용기도 준다. 생각해 보자. 2차로 노래방을 간 건 오로지 재미나게 놀기 위해서 아닌가. 음치가 오히려 대접받는 이유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는 분위기만 잘 띄우면 그만이지만, 글은 읽는 이에게 새로운 지식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감흥까지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글은 제대로 읽자고 들면 일정한 양의 힘든 노동까지 동원해야 한다.
노래의 기본은 두말할 것 없이 음정과 박자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안다. 그럼 글의 기본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단어와 문장이다.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그걸 여러 개 연결해서(한 문장으로 된 글도 있지만) 한 편의 글을 만든다.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맞춰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글을 쓰려면 단어와 문장부터 올바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내용이 풍부하고 창의적이어도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운전자들은 교통법뀨를 잘지켜야 한다. 학생도 반듯이 교칙에 딸아 생활해야한다. 그게 바로 민주시민의 옳바른 자세인 거시다.
짧은 문장 세 개로 이루어진 글이다. 물론 어떤 글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민주시민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평범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 담긴 주장은 얼마나 당연한가. 나름의 논리도 갖추었다. 그럼 이걸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읽어 보자.
이 세 문장에는 맞춤법에 어긋나거나(법뀨, 딸아, 옳바른, 거시다), 내용에 맞지 않거나(반듯이 → 반드시), 띄어쓰기가 잘못된(잘지켜야 → 잘 지켜야, 생활해야한다 → 생활해야 한다) 단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물론 초등학생 수준의 아이들도 이 글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맞춤법 같은 건 대충 무시하고 써도 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글이라는 게 생각이나 느낌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쓰는 것이고, 또 이런 식으로 써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뜻을 단번에 알 수 있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정말 그런가.
△바퀴벌레와 평강공주
운영씨. 어제 우리는 처음으로 만나씀니다. 그래서 나는 운영씨의 순수한 모습에 흠뻑 완전히 빠지고 마랐습니다. 타락하게 사랏던 재 자신이 순수해지는 것도 느껴씀니다. 누가뭐라도 운영씨를 무지 만히 사랑함미다. 부디 저에 사랑을 바다 주시기 바람니다.
'운영 씨'는 주위 사람의 권유로 며칠 전에 맞선을 보았다. 상대 남자가 마음에 썩 들었다. 생긴 것도 나쁘지 않았고, 성격도 원만해 보였다. 직업도 그만하면 안정적이었다. 운영 씨는 그 남자한테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오기를 내심 간절히 기다렸다. 사흘 만에 이처럼 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자, 이 문자메시지를 읽은 운영 씨는 기분이 어떨까. 맘에 드는 남자한테 사랑 고백을 받았으니 구름에 올라타고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남자한테 오만정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질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공갈빵처럼 텅 빈 사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힌 내용대로 그 남자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면, 그래서 그와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면 운영 씨 또한 그 남자와 더불어 못 말리는 바퀴벌레 한 쌍일 것이다. 그게 아니면 바보 온달을 용맹한 장수로 키워낸 평강공주를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음속으로 몹시 흠모해 왔거나….
생각해 보라. 운영 씨가 이 글에 적힌 남자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 남자가 자신에게 전달하려는 뜻을 하나도 남김없이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이렇게 맞춤법을 무시하고 써도 그 남자의 마음이 운영 씨한테 과연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겠는가. '전달'이라는 말의 본디 뜻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그건 이런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운영 씨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일 것이다.
운영 씨. 어제 우리는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나는 운영 씨의 순수한 모습에 흠뻑 빠지고 말았습니다. 타락하게 살았던 제 자신이 순수해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저는 누가 뭐라 해도 운영 씨를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부디 저의 사랑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운영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이렇게 써서 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남자는…. 그런데 안타깝게도 좀 전과 같이 쓰는 바람에 사랑도 놓치고 망신까지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단어를 골라 쓸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맞춤법만이 아니다. 앞서 봤던 것처럼 사용한 단어의 뜻이 전달하려는 내용하고 잘 어울려야 하고, 품격 있는 단어를 골라 쓰는 것도 중요하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말도 정확하게 써야 한다. 모양이 같은 단어를 자꾸 반복해서 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각종 문장부호나 띄어쓰기도 당연히 정확하게 구사해야 한다.
사실 우리말은 대단히 과학적이면서도 올바로 구사하기가 쉽지 않은 언어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도 단어를 적재적소에 잘 골라서 정확하게 쓰는 건 글쓰기의 가장 기초적 요건에 해당된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어쩌면 이것부터 자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렵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평소 다른 이들이 쓴 좋은 글을 유심히 살펴가며 읽는 습관만 가져도 문제를 웬만큼은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단어나 문장이 어법에 맞는지 여러 경로를 통해 수시로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 이제는 병 주고 약 줄 차례다. 아까 그 노래방으로 다시 돌아가자.
노래방에서 다들 가장 싫어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좀처럼 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음으로 눈총을 받는 축이 있다. 저는 죽어도 부르지 않으면서 다른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값비싼 술만 축낸다. 그런 친구하고는 노래방에 다시는 함께 가고 싶지 않다.
노래방에 갔으면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마이크를 잡고 한 곡 뽑아내는 게 좋다. 그러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노래방을 가지 않는 게 좋다. 음정이나 박자를 잘 못 맞추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엉터리라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잘 부르는 노래는 CD나 TV를 통해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어떤 글이든 단어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골라 써야 하지만 그게 자신이 없다고 글쓰기를 주저하는 건 더 좋지 않다. 요즘에는 대부분 컴퓨터로 글을 쓰는데 웬만한 잘못은 그 영특한 기계가 빨간 밑줄을 그어서 바로잡아준다.
그러니 일단 쓰기부터 하자. 쓰지 않고 망설이거나 쓰기를 포기하면 내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조차 영원히 알 길이 없다. 그것 때문에 쓰지 않으면 영원히 못 쓴다.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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