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히틀러처럼 한사람 영향력이 세상 바꿔 / 책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듯 글 쓰는 것도 큰변화 일으켜
△클레오파트라의 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팡세〉를 쓴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몇 마디 덧붙인다.
"나로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 그 하찮은 것이 모든 땅덩어리를, 황후들을, 모든 군대를, 온 세계를 흔들어 움직이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그것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도 변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제국의 마지막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조금만 덜 예뻤더라면) 파스칼의 말처럼 세계의 역사가 정말로 바뀌었을 것인지 단언할 수는 물론 없다(일설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볼품없이 뾰쪽한 매부리코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외모가 아니라 지성미 넘치는 내적 매력으로 당대의 영웅들인 제왕들로부터 총애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는 가정이다. 클레오파트라처럼 멀리 갈 것까지도 없다. 만약 나치와 히틀러가 없었다면 20세기 세계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물론 이건 펜으로 제유되는 '문화'가 어떤 무력武力도 무력無力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구驚句다.
클레오파트라나 히틀러에 비교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펜 끝에서 만들어진 한 편의 글/책은 그걸 쓴 사람 자신은 물론이고, 때로는 수많은 이들의 삶의 물줄기를 바꿔놓음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될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작중에 묘사된 베르테르처럼 파란 상의와 노란 바지에 조끼를 걸치는 옷차림이 유행했고, 처녀들은 샤롯데처럼 사랑 받기를 갈망했다고 한다. 남편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탓하며 이혼하는 젊은 부인도 급증했으며, 급기야 작중의 주인공을 따라 하느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게 바로 저 유명한 '베르테르 효과'다.
우리들 대부분은 물론 클레오파트라나 히틀러처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을 만큼 영향력 있는 정치가가 아니다. 괴테와 같이 위대한 작품을 쓴 대문호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누가 뭐라 해도 세상의 중심은 '나' 아닌가. 세상의 어떤 변화도 그 출발점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나의 변화는 가까운 타인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준다. 내가 쓴 글도 마찬가지다. 그건 일차적으로 나를 가꾸고 키워서 변화시키지만,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도 변화시키는 힘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 게 쌓여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게 글인 것이다.
내가 쓴 글로 많은 사람을 기쁨과 환희의 세계로 이끌 수도 있다는 걸 한번 상상해 보자. 내가 쓸 글을 읽은 뒤 오랜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발견한 누군가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가슴 벅찬 일이지 아니한가. 그건 어디까지나 괴테와 같은 대문호나 유명한 문필가들의 몫일뿐이라고 생각하는가.
감명 깊게 읽은 책 한 권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리하여 내가 바라는 대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걸 발견할수록 글쓰기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글 나고 사람 났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이 속담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이름을 남길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는 '당위'의 뜻도 들어 있다. 이름을 남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장차 훌륭한 업적을 남길 대통령이 되겠는가, 아니면 김연아 선수처럼 올림픽에 나가서 그 종목의 선구적 금메달을 목에 걸겠는가.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다. 물론 글을 쓴다고 누구나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우리들 각자의 삶을 충실히, 그야말로 사람답게 살아가게는 해준다. 아니, 글쓰기야말로 그걸 가능하게 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사람으로 세상에 났으면 글을 쓰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고, 사람 나고 글 난 게 아니고 '글 나고 사람 났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끝) ·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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