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공간서 만나는 성음놀이, 우람한 맛·섬세한 결 돋보여
‘김세종제 춘향가’란 19세기 말에 활동했던 김세종으로부터 이어져 온 ‘춘향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세종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신재효가 소리꾼들을 자기 집안에 모아놓고 교육할 때 소리 선생 노릇을 했던 사람이다.
김세종이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이자 가왕(노래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남원 운봉의 송흥록에게 소리를 배우러 갔더니, 송흥록이 너희 집안 소리도 좋은데 왜 왔느냐고 나무라서, 자기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소리를 해 대명창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순창이 동편제 판소리의 중요한 전승 지역이기 때문에 김세종의 판소리는 송흥록과는 계보를 달리하는 또 다른 동편제 판소리로 본다.
김세종의 ‘춘향가’는 수제자인 장재백을 거쳐 김찬업에게 이어졌는데, 보성의 정응민이 김찬업으로부터 이 소리를 배워 제자들에게 전승했다. 정응민은 일제 강점기 내내 보성에서 나오지 않고 전통 판소리를 갈고 닦았다. 정응민의 아들 정권진과 제자 조상현, 성우향, 성창순 등이 이 소리를 배워 현대 판소리의 가장 중요한 소리로 키워냈다.
정응민은 부자집에 초청되어 가서 방안에서 소리를 하는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방안소리’의 전통과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방안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이 방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만나는 소리이다. 따라서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음악적 표현을 한다. 그래서 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판소리를 ‘성음 놀음(성음의 변화를 통해서 그 미감을 즐기는 일)’라고 한다.
정응민은 제자들의 능력에 따라 다른 소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남녀에 따라 다르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래서 남자인 정권진, 조상현의 소리와 여자인 성우향, 성창순의 소리가 서로 결이 다르다. 특이하게도 여자인 박지윤은 조상현으로부터 남자소리를 배웠고, 남자인 임현빈은 성우향과 이난초로부터 여자소리를 배웠다.
그러기 때문에 음악적 표현으로만 본다면 박지윤의 ‘춘향가’는 남성적인 우람한 맛이 강하고, 임현빈은 여성적인 섬세한 결이 돋보인다. 따라서 두 사람의 ‘춘향가’를 통해서 크게 보면 같지만 세부에서는 서로 다른 ‘춘향가’의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박지윤과 임현빈은 40대 소리꾼으로서는 정상급에 속한다. 박지윤은 광주시립국극단과 남원국립민속국악원에서 짧게 활동한 뒤로는 단체 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소리 실력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판소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로 치는 애원성으로 저음에서 고음까지를 막힘없이 구사하며, 깊이 있는 감정 표현으로 청중을 감동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임현빈은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린 소리꾼으로 국립창극단과 남원시립국악단에서 주역으로 활약한 지 오래되어,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남성으로서는 맑은 목을 가졌으며, 성량 또한 풍부하여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박지윤과 임현빈 두 사람의 판소리를 통해서 우리 판소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이 이제 막 깊이를 더해가는 우리나라 남녀 판소리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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