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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형미 시인 - 복효근 시인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남원시 주천면 해발 200m의 중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는 범실마을. 마을 형상이 호랑이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이 마을에 등단 30년 저력을 가진 복효근 시인이 산다.

마을 생김새야 찬찬히 살펴봐도 당최 호랑이를 닮았는지 모르겠으나, 좌측으로 뻗어 있는 산이 엎드려 있는 호랑이를 닮았다는 데에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런 범상치 않은 마을에 시인이 어떻게 들어가 살게 되었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남원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니, 보다 자연 가까이로 가 있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내심 짐작해볼 뿐이다. 그보다 은퇴한 후에도 이 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시인은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여 문단활동을 시작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등의 시집 다수와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시집을 받아볼 때마다 단 한시도 등을 바닥에 뉘어본 적 없는 부지런한 시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해 까마득한 문단 후배로서 매번 긴장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인의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문학의전당, 2006)을 특히 좋아해서 곁에 두고 늘 펴보곤 했다. 굽어질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고, 사시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강직함의 대명사인 대나무에게서 “사실은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거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발견한 시인의 눈이 감격스러워서다.

사실 평소 중저음의 깊고, 차분한 시인의 목소리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일말의 단호함이 느껴지곤 했다. 때문에 여간해서 말 한 번 붙여 보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시를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던 대나무하고는 전혀 다른 속성을 보여줌으로 해서 시인에게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어준 것만 같았다. 나는 전혀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게 공감을 준 그 배려가 좋았다.

복효근 시인은 2021년 한 해가 다 가기 전, 아홉 번째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현대시학,2021)로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의 무게를 전해왔다. 내가 시집을 받았을 때쯤, 시인은 허리통증으로 고생 중이라며 범실마을의 산과, 물소리와, 바람소리와, 꽃 내음을 놓아두고 훌쩍 제주에 가 있었다. 그리고 제주의 파도소리와, 숲길에서 만난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는 노루와, 저지오름을 페북을 통해 바다 건너 이 곳 전라도 하고도 전주에 부려놓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시집을 읽는 동안 내내 남원 지리산 자락의 범실마을에 가 있다가, 늦가을 파도가 부서지는 제주에 가 있다가 하면서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인이 머물러 있는 이 곳이나 저 곳이나 모두 한 곳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결같은 시인의 어조와 음성, 내지는 시인의 내면속에 침잠되어 있는 대자연에 대한 사유와 철학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시는 울면서 웃는 방식이다. //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했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채 / 야멸차게 떨치고 돌아설 재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 누군가는 몇 걸음에 도달할 거리를 돌아보니 30, / 300년을 걸어도 닿지 못할 것임을 알 즈음이다.”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를 통해 내비친 시인의 속내에 가슴 한 곳에 찌르르하니 통증이 건네져 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한다는 시와 시인과의 운명에서 느껴지는 인연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운명을 지고 끊임없이 걸어온 시인의 발자취 때문일지도.

어쩌면 시인은 시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이네요’ 에 등장하는 ‘빠진 발톱’과 ‘나’처럼 그렇게 시와의 인연을 맺어온 것은 아니었을까. “문틈에 끼여 발톱 하나가 빠졌습니다 / 빠진 발톱은 버렸지요 / 빠진 발톱도 나를 버렸고요 / 난 버려졌습니다 / 시간이 지나고 / 울퉁불퉁 못생긴 발톱 하나가 새로 돋았지요 / 발톱에게도 내가 하나 새로 돋았겠지요 / 우린 처음처럼 / 처음 만났습니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과 시는 서로를 버렸다가, 시간이 지나 새로 돋은 마음을 확인하기도 하며 그렇게 30년을 몸 부비며, 부대끼며, 조금은 짠한 마음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 품 안은, 시 ‘종소리의 품 안’에서 풀어놓았듯이 간절하면서도 따뜻하고, 넉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종소리를 산 너머로 전하기 위해 / 산사의 종이 저 홀로 울었던 것은 아니다 // 도라지꽃 한 송이 / 돌멩이 하나까지 울었다 / 산이 온통 함께 울었던 것이다 // 같이 울 수 있는 거기까지가 품 안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몇이나 될까. 종소리 하나를 산 너머로 전하기 위해 도라지꽃 한 송이, 돌멩이 하나까지 온통 함께 울어줄 수 있는 품 안을 지닌 시가 말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한나라 시대에 구리산이 무너지려 하자 궁중 대궐 용마루 끝에 매달려 있던, 그 산에서 캐내어 만든 구리종이 따라 울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서로 아무 말 않고 있어도 아픔을 느껴서 우는 구리산과 구리종 이야기처럼 울림이 있는 시.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자연에서 얻어진 것이기에, 더욱 위대하게 다가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리산 자락 범실마을에 깃들어 살며 호랑이와는 무관하지만, 호랑이를 닮은 것도 같은 시의 발톱을 산 위 밤하늘에 훌쩍 던져놓고 사는 복효근 시인. 언제 어느 때 읽어도 좋은 시집『예를 들어 무당거미』를 머리맡에 두고 있자니, 늦가을 풍경을 건너는 일이 거뜬하기만 하다. /김형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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