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을 언어로 길어 올릴 때, 그 땅은 비로소 제 깊이를 얻는다. 시선집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전북문화관광재단·2019)는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전북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증명한다. 전북 14개 시군의 산과 강, 그곳에 깃든 삶의 조각들을 150명의 시인이 150편의 시에 담아낸 이 기록은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올곧은 이정표와 같다.
특정한 공간을 표지판 위의 글자를 넘어 더 의미 있는 장소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 이 시선집은 이야기와 기록에서 그 답을 찾는다. 수록된 시들은 진안 장날부터 장수 어전리, 부안 곰소와 내소사에 이르기까지 지역 곳곳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시인이 세밀하게 포착한 풍경과 사연은 독자의 감각을 생생하게 깨운다. 이소애의 「전주천 여울목 섶다리」를 지나며 물소리를 듣고, 우미자의 「강천산에 단풍 들 무렵」에선 문득 붉은 마음을 들킨다. 신재순의 「군산 경암동 철길 마을 이야기」를 통해 근대의 흔적을 밟는 독자는 전북을 이전과는 다른 정서적 유대감으로 마주한다. 송희의 「어청도 등대」가 비추는 외로운 불빛과 김남곤의 「안국사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색은, 문학적 공간이 어떻게 독자의 가슴속에서 생생한 실체로 살아 움직이는지를 깊이 새겨준다.
기록은 곧 보존이며, 동시에 정체성의 확인이다. 문병학의 「전봉준의 눈빛」이 깨우는 강인한 역사의식과 이희중의 「중인리의 봄」에 담긴 계절의 미학은 이 땅의 뿌리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김도수의 「진뫼로 간다」와 박형진의 「모항1」, 신형식의 「웃동네 통시암」, 유순예의 「말하는 더덕」 같은 작품은 점차 희미해지는 향토적 정서와 사투리, 공동체의 원형을 언어로 붙잡아 둔 소중한 자산이다. 글 쓰는 이들이 지역의 구체적인 모습을 외면하고 관념에만 빠질 때 문학은 생동감을 잃는다. 반면 안성덕의 「목어」, 이봉명의 「입동, 단풍들」, 장교철의 「귀래정에 앉아」, 장현우의 「화백나무」, 전병윤의 「멀미 앓는 뜬봉샘」, 조미애의 「정읍 가는 길」처럼 땅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피는 시선은 전북의 저력을 한데 모은 인문 지도가 된다.
시선집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전북이 지닌 이야기의 힘에 압도된다. 김영의 「동령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전선자의 「가을 적상산 그리고 나」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용범의 「줄포에서 보내는 봄 편지」를 읽는 경험은 전북의 산천이 그 자체로 거대한 시적 영감의 보고임을 깨닫게 한다. 시인들이 남긴 흔적은 이 땅을 마주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채우는 따뜻한 온기가 된다.
이 시선집은 전북의 땅과 그곳을 사랑한 문장가들이 합작해 만든 위대한 합창이다. 지역을 기록하는 문학적 실천이 어떻게 공간의 가치를 일깨우고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북의 산과 강이 노래가 되는 순간, 그곳은 지도 위의 굳은 이름을 벗어나 풍성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우리 문학의 깊은 젖줄이 된다. 전북의 산과 강은 언제나 노래였다. 시인들은 다만 그 노래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정성껏 옮겨 적었을 뿐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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