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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상에, ‘젖꼭지탕’이라굽쇼? - '왕족탕'은 어디서 왔고 '우두탕'은 또 무엇인가

언어, 역사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아닌가 /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입에 붙은 말은 그대로 써야

▲ 어느 음식점 입구에 붙어 있는 메뉴판.

전통 음식 중 하나인 ‘탕(湯)’은 ‘오래 끓여서 진하게 우려낸 국’을 가리킨다. ‘탕’의 종류는 주로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른다. 생선으로 끓이는 탕만 해도 아구탕, 조기탕, 내장탕, 우럭탕 등이 있다. 메기탕이나 빠가탕은 민물고기를 쓴다.

 

옛날에 임금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즐겨 드셨다는 ‘용봉탕(龍鳳湯)’은 본디 잉어와 닭을 함께 넣어 끓였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잉어 대신 자라를 쓰기도 한단다. ‘뱀탕’과 ‘만세탕’은 포획 자체가 법으로 금지된 파충류가 주된 식재료이므로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돼지고기로 끓이는 것으로는 ‘순대국밥’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경상도 지역의 ‘돼지국밥’도 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탕’ 중의 으뜸은 갈비탕, 꼬리곰탕, 우족탕, 설렁탕, 도가니탕, 곰탕, 소머리국밥 등과 같이 소의 고기나 뼈를 넣고 끓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식당 입구를 들어서다 보니 그런 ‘탕’ 이름이 위아래로 가지런히 적힌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가운데 적힌 세 가지 ‘탕’ 때문이었다. ‘꼬리탕’은 ‘꼬리곰탕’으로 금방 연결이 되었다. ‘왕족탕’도 생소하긴 했지만 ‘족’을 보니 그게 ‘우족탕’임을 알 것 같았다. 잠깐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 옛날 ‘왕족(王族)’이 자기네들끼리만 모여서 먹던 탕인가, 아니면 ‘왕족(王足)’으로 끓인 탕인가?

 

그 아래 적힌 ‘우두탕’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갸웃거려졌다. 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 ‘우두(牛頭)’가 ‘소머리’를 가리키는 말임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그게 여인네들 ‘젖꼭지’를 이르는 한자말 ‘유두(乳頭)’로 보였던 것이다. 유두탕, 젖꼭지탕….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카운터에 서 있는, 얼굴이 동그랗고 앞이마가 훤한 60세 전후의 주인 남자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저 우두탕이라는 게 혹시 소머리국밥 아닌가요?”

 

그랬더니 그 남자, 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거, 사람들이 자꾸 소머리국밥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어디 촌구석 장터에서나 쓰던 말이라서 내가 바꿨죠. 도대체 소머리국밥이 뭡니까? 품격 떨어지게….”

 

내 식당이니 내 맘대로 이름 좀 바꿨기로서니 당신이 나서서 무슨 상관이냐는 투의 대답에 묻는 쪽에서 오히려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 ‘우두탕’인지 ‘유두탕’인지를 한 그릇 맛나게 먹고 이빨을 쑤시면서 식당을 나오다가 메뉴판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다들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쓰고 불러 온 ‘꼬리곰탕’, ‘우족탕’, ‘소머리국밥’을 두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름을 적어 붙여서 사람을 헛갈리게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두탕’이라고 이름을 바꾸면 주인 말대로 식당의 품격이 정말로 높아지기는 하는 걸까.

 

언어, 특히 어떤 대상의 명칭은 본디 역사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붙은 말은 그대로 잘 어루만져서 쓰면 그만인 것 아닌가. 그게 옳은 거 아닌가. 그걸 굳이 이런 식으로 바꿔야 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우두탕’ 만큼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메뉴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었다.

 

이 식당 주인은 분명히 뛰어난 언어적 리듬감과 시각적 센스를 갖춘 사람이겠다. 메뉴판도 세 글자씩 꼭 맞추어서 제작하고 싶었던 거겠다. 소머리국밥이 눈에 제일 거슬렸겠지, 다섯 글자나 되니까. 그 흔한 ‘도가니탕’이 메뉴에 없는 것만 봐도 틀림없겠다.

 

아니다.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 그 주인이 강조했던 것처럼 이 식당만의 독창적이고 품격 있는 음식문화를 창달하고 싶었던 거겠다. 그러니 ‘소머리국밥’이라는 이름이 사람들 입에 아무리 친숙한 말이어도 그걸 무시하고 ‘우두탕’을 고집하는 거겠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다 보니 맨 위에 적힌 ‘갈비탕’이 눈에 확 들어왔다. 동시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아까 그 주인한테 그 말을 전해주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요, 기왕 고치기로 한 거, 이참에 갈비탕도 이름을 좀 품격 있게 바꾸면 어떨까요? 가령 ‘늑골탕’ 같은 식으루다가요….”

 

그냥 이빨이나 열심히 쑤시기로 했다. ·우석대 교수

 

*글의 내용 중 식당 주인과의 대화 부분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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