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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도현 시인 ‘그에게 바란다’ - 안도현 시인, 그의 시가 듣고 싶다

그가 들려주던 시는

 

늘 힘 있고

 

건강하고 따뜻했는데

 

그는 지금

 

시를 쓰지 않고 있다

 

의사로서의 안락한 삶을 기꺼이 마다하고 성직자의 고된 길로 들어섰던 사람.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땅,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로 가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었던 사람. 세상에 환한 빛을 밝혀주고 마흔여덟 젊은 나이에 하늘로 떠난 사람….

 

이태석 신부다.

 

선종 직전 그의 야윈 볼에서, 한겨울밤을 꼬박 새워가며 온몸을 뜨겁게 불태워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준 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볼품없는 모습으로 골목길에 버려진 연탄재를 발견한다.

 

세상에는 이태석 신부처럼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해를 끼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또 있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온갖 트집을 잡아가며 비난하고 폄하하는 부류다.

 

골목길에 버려진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는 이들에게서 안도현 시인은 일찍이 그런 수많은 ‘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에게 묻는다〉를 통해 따지듯 혹은 나무라듯 물은 바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가 쓴 〈연어〉의 주인공 ‘눈맑은연어’처럼 따뜻한 눈을 가진 시인은, 비록 한때나마 세상의 수많은 ‘너’들을 향해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던 게 마음에 걸렸던가 보다. 그래서 그림처럼 〈너에게 묻는다〉를 집필실 한쪽에 두고 것이리라. 일찍이 〈연탄 한 장〉을 통해 자기 성찰의 자세로 돌아가 바로 그 ‘너’들 앞에서 어깨를 낮추었으면서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중략…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산란을 위해서 초록강을 향해 헤엄쳐가는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지느러미처럼 그가 들려주던 시는 늘 힘 있고 건강하고 따뜻했으므로, 비유컨대 그가 쓴 〈연어〉의 ‘초록강’은 그에게 ‘시작(詩作)’의 터전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안타깝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구더기와 똥물이 우글거리는 지금의 초록강은 더 이상 초록강이 아니라고, 이런 초록강에서는 그 어떤 희망을 찾을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고, 그런 곳에 알을 낳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 옛날처럼 햇살이 강바닥의 조약돌에 곧장 내리꽂힐 만큼 맑은 물이 흐르지 않는 한 초록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초록강 아닌 그 어느 곳에도 알을 낳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의 결기를 뉘라서 말릴 수 있으랴만, 〈너에게 묻는다〉에 빗대어 이제 그에게 바라노니, 훗날 그가 초록강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그랬던 것처럼 온몸이 누더기가 되어 있는 일은 없기를, 주둥이에서 핏물 따위를 흘리는 일도 생기지 않기를….

 

△안도현 시인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기간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의 출처를 묻는 글을 몇 차례 트윗했다고 검찰에 기소되어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받았으나 그에 반하는 재판부의 벌금형에 불복하여 상고했다. 그와 관련해서 시인은 ‘현 정권에서는 시를 쓰지도 발표하지도 않겠다’고 트윗한 바 있다. 현재 그 사건의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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