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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 김형중
시월이 서산(西山) 너머로 떠내려가고 있다. 넘겨지는 달력이 유독 시월만은 아니련만, 올해는 유난스레 아쉬움이 커져간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마음에 새겨지고, 천연으로 물들어가던 나뭇잎들은 남자들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어 간다.

 

가을에만 느껴지는 고독은 남성들만의 감정일까? 창밖에는 무심결에 날리는 낙엽들이 숱한 발길에 밟혀 아파하는데, 스산하리만큼 외로운 가을바람에 무임승차로 날아든 ‘고독’이라는 놈이 홀로 구르는 낙엽을 넋 놓고 바라보게 한다. 허공을 휘젓다가 지쳐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아쉬움을 내려놓고, 모태(母胎)의 품안으로 숨어든다. 애처로운 시선으로 서로들 마주보며 내년을 눈물로 적신다.

 

나이테가 하염없이 싸여서일까? 노년이면 누구나 멀리하고픈 놈이 ‘나이’라는 올가미라는데 나도 어느새 이순(耳順)의 중간 고개를 넘어 가면서 뒤돌아보는 눈가에 애상(哀想)이 젖어든다. 미수(美壽)의 고개 마루에 서서 보니, 굴곡진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의 가슴 저린 지난 이야기들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불가(佛家)에서는 팔만사천자의 법문(法門)을 한 자(字)로 줄이면 마음(心)이라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어떤 욕구에 의해서도 몸이 들뜨지 않기 위해 승려들은 참선, 사경(寫經), 염불, 108배(拜) 등을 선택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가는 길인 선정(禪定)에 든다고 한다. 누구라도 마음은 항상 안팎으로부터 충동질을 당하고, 어지럽기 때문에 나름대로 몸에 익혔거나 재미있는 해결책들을 찾아 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청소, 잔소리, 수다, 쇼핑, 취미생활 등으로 불편한 마음을 조절하고, 남자들은 운동, 술과 노래, 등산, 낚시, 골프 등 육체의 움직임으로 내면의 불편한 심기(心機)를 조절하고 해소시킨다. 이런 ‘마음(心)’을 가다듬지 못한 중ㆍ장년층의 수많은 남성들이 올 가을에도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간 큰 남편’ 시리즈가 나오던 엊그제의 시절이 그리워진다. 사오정(45세로 정년)과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적.)가 현실에서 굳어져가는 요즘은 중년남성의 정체성이 사라진 위기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남성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착한 아들노릇과 성공한 남편으로 또는 의젓한 아빠가 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면서 뒤를 돌아볼 겨를도 가져보지 못했던 서글픈 삶이었다.

 

그들은 “어느 덧 내가!”라는 단어로 살아 온 역사를 뒤집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쓸쓸해지는 텅 빈 것 같은 낡아져가는 가슴을 하얗게 수놓는 지나간 날들을 떨쳐내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란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뭉클한 처녀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처럼 사위여가는 가을바람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 하다. 그런 가을바람 속에는 성숙한 모습으로 마무리를 해가는 소멸의 기운이 실려 있다고 한다.

 

계절의 끝자락으로 낙엽이 흩날려 가듯, 가을은 성숙한 고독과 상실을 동반하면서 저물어가는 노년의 세월 속에 추억들을 물들게 간다. 푸석푸석한 가을처럼 쓸쓸함을 온 몸으로 느끼는 까닭은 남성으로서 희미해지는 사회적 존재감과 무력해지는 가장(家長)으로서의 자괴감일 것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란다. 사색에서 얻어지는 것은 삶의 철학이다. 철학은 사상을 만들어내고, 사상은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구심체 노릇을 한다.

 

한 시대를 이끄는 사상은 남자로부터 나온다고 하니, 대한의 남자들이여! 너무 쓸쓸해 한다거나 외로워서 고개를 돌리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는 말자.

 

△수필가 김형중 씨는 〈수필시대〉로 등단. 칼럼집 〈도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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