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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지렁이도 치매인가?

신팔복 수필가

나이 들어 피하고 싶은 병이 치매가 아닐까? 지난 세월의 생사고락을 까맣게 잊고 자식도 몰라보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존경을 받아야 할 인생 끝자락에서 의미 없는 황혼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요즘 맨발 걷기를 하면 심폐기능을 높여주고 혈액순환도 도움이 되어 치매 예방에도 좋다기에 인근 학교 운동장을 갔다.

거친 모래 때문에 발바닥이 따끔거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걷는데 젓가락만 한 지렁이도 힘겹게 꿈틀대며 몸을 움직인다. 몸통에 달라붙은 모래는 아교 풀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는다. 살갗으로 호흡하는 지렁이는 피부가 건조해 숨이 가빠 괴로운 듯하다. ‘분명 길을 잘못 들었다’는 안쓰러운 마음에 손에 든 부채로 조심스럽게 떠서 풀밭으로 옮겨줬다.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지렁이를 보았다. 기어 나온 흔적을 보니 고작 두 뼘도 안 되었다. 그 역시 많은 모래 위를 기고 있다. 나는 순간 ‘지렁이도 이제 살 만큼 산 것인가?’ 하다 문득 ‘지렁이도 혹시 치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살피는 순간, 작은 개미들이 그 옆을 바쁘게 오가고 있어 위험해 보였다. 

 

요즘처럼 흔한 요양원 하나 없던 옛날, 우리 마을에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있었다. 다리가 약해 걸을 수 없는데도 자꾸만 길로 나오셨다. 젊은 시절 그 고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비녀도 없이 헝클어진 머릿결과 노쇠한 육신을 바라보니 무척 애처롭다. 힘이 없어 걷지도 못해 길바닥을 엉덩이로 밀며 자꾸만 집 밖으로 나오니 며느리가 기저귀를 채워줬고, 엉덩이 부분에 옷감을 덧대어 두툼하게 해줬다.

자동차 길이라 위험하기도 했다. 이웃 사람들이 반워 “식사하셨어요?”라고 인사하면 “응, 장에 간다고? 하며 엉뚱한 말로 답변했다. 아들 며느리가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면 집에 혼자 있는 것이 갑갑한 모양이다. 평범한 일상을 잊어버려 참 안타까웠다. 

 

젊은 시절엔 부지런하고 깔끔하기로 소문난 여인이었다. 설날 세배하러 가면 정성 들인 음식들을 내놓았고 웃음 섞인 덕담도 잘해주셨다. 시부모님 모시고 자식들도 잘 키웠다. 동기간 도우애가 좋아 화목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도 아예 ‘치매 환자’로 인정했다. 그는 이제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없고 혼자 본능적 행동으로 몸을 유지할 뿐이었다. 

 

노인성 치매는 뇌의 활력이 떨어져 인지능력(認知能力)과 기억력(記憶力)이 사라진 병이다. 출생아보다 노인 인구가 더 많아지는 요즘 우리 사회의 시급한 선결 과제다. 더욱이 의료 혜택이 적은 농촌에선 매우 심각한 문제다. 

 

누구나 살아온 삶은 위대하다. 숭고한 삶의 끝자락에 이웃과 가족들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텐데 모든 인격이 무너지고 빈껍데기처럼 취급받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건강한 생활을 위해 주기적 건강체크와 치매 검사는 필수적이다. 원인을 조기 발견하고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지름길이다.

Δ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협 회원, 진안문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수필집 <마이산메아리> <내 생활의 좌표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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