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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다산초당에서 길을 묻다

이종순 수필가

겨울의 끝자락에 맺힌 푸른 눈물 자욱들로, 남도의 겨울 햇살은 유독 시리고도 따스했다.  강진 만덕산 기슭, 보풀 같은 안개를 헤치고 오르는 길 위에서 나는 200여년 전 한 사내가 걸었을 고독의 보폭을 가늠해보았다. 흑산도로 떠난 형 약전과 헤어지며 눈물로 적셨던 강진의 첫 발걸음은 아마도 이 길보다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먼 곳으로 밀려난 유배객, 정약용의 시간이 머문 ‘다산 초당’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꺽인 마음을 다시 세우는 수행의 길과도 같은 마음의 여정이였다.

정약용이 갓근을 풀고 붓을 든 고독의 시간들을 보냈던 초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울퉁불퉁한 나무뿌리들이 얽혀 만든 ‘뿌리의 길’이였다. 지상으로 드러난 나무의 갈비뼈 같은 그 길을 밟으며 생각했다. 땅 밑에서 남모르게 견뎌온 인내의 시간이 저토록 처절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구나, 하고 말이다. 다산 역시 그랬을 것이다. 절망이라는 단단한 지명 아래로 자신의 사상을 깊게 뻗어 내리며, 그는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다산초당의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으니, 대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사이로 서글픈 서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석(丁石)이라 새겨진 바위 앞에 서니, 자신의 성을 새겨 넣으며 다짐했을 그의 서늘한 결기가 손끝에 전해져 온다.

그는 유배지에서의 고통을 원망으로 되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그 아픔을 거름 삼아 백성들의 삶을 보듬는 실학의 꽃을 피웠다. 마당 한쪽의 ‘연지석가산’을 바라보며 나는 그의 마음결을 읽어보았다.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섬 하나, 그것은 어쩌면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이자,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내면의 요새였을 것이다.

초당을 지나 천일각(天一 閣)에 올라서니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끝자락’ 이라는 그 이름처럼, 이곳은 유배객의 그리움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장소이다. 흑산도로 유배 간 형님을 그리워하고, 고향의 가족을 향해 긴 한숨을 내뱉던 곳, 하지만 그가 바라본 바다는 단절벽이 아니라, 언젠가 돌아가야 할 길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다산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인생의 겨울이 찾아왔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그는 차가운 유배지에서 자신을 연마하여 보석으로 만들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했을 때, 비로소 가장 높은 정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초당을 내려오는 길, 내 마음 한구석에는 다산이 남긴 맑은 찻물 한잔이 고여 있는 듯했다. 강진의 흙먼지를 떨어내며 나는 깨달았다. 다산초당은 단순히 옛 선비의 거처가 아니라, 고난을 견디고 일어선 인간 승리의 성지라는 것을. 삶이 버겁고 외로울 때, 우리는 강진의 그 좁은 오솔길을 기억해야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우리의 시련 또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울창한 숲이 될 수 있음을 다산은 몸소 보여주었다. 해 저무는 만덕산의 노을이 유난히 붉었다. 그 빛은 다산이 평생토록 간직 했던 뜨거운 열정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따스한 위로 였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학박사이다. 월간 종합문예지 <문예사조>와 <시조문학>을 통해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했다. 호원대 유아교육과, 우석대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창의숲 프로젝트 연구소 대표와 아이가 크는 숲 예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주걸스카우트연맹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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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이종순 #다산 초당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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