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이면 나는 항상 가는 곳이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빠지지 않고 가는 남원 덕음산 기슭의 ‘솔바람길’이다. 이 길은 관광단지내 놀이시설 부근에서 시작되어 항공우주천문대 입구 부근까지 약 1200m의 나무데크 길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솔바람길’이란 이름이 의미하듯이 솔향기가 은은한 소나무 숲길이다. 더군다나 길 전체가 나무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 안심하고 다녀도 좋은 산책길이다.
‘덕음산 솔바람길’이라고 쓰인 입구의 현판을 통과하여 계단 길을 이삼 분 오르면,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다. 왼쪽은 100미터 정도의 나무데크길이 나있고, 그길 끝부분에 이르면 극락암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들 사이로 놀이시설들이 보이고, 리듬에 맞추어 놀이를 유도하는 경쾌한 음악이 흥겹기까지 한다.
그길 끝에 있는 전망데크를 돌아 처음 갈림길로 와서, 다시 반대쪽 방향으로 가면, 1000미터 정도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평탄한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외에도 아카시아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가 주를 이루고, 주위 계곡에는 고비 등 양치류들이 많다.
봄에는 연하고 푸릇푸릇한 신록들이 추운 겨울을 이겨낸 기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고 있다. 봄 산이 거느린 산벚꽃과 샛노란 개나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봄바람에 솔향기 은은히 풍겨와 상쾌함을 더해 준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바람이 종종 불어와 뜨거운 햇빛과 습기를 막아주니, 시원함에다 쾌적함을 더해 준다. 봄에 나왔던 상사화 잎들이 말라가는 대신, 연홍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어, 잎과 꽃이 서로를 생각한다 하여 상사화(相思花)라고 한단다.
가을에는 키 큰 소나무들을 칭칭 감아 올라간 담장이 넝쿨과, 나무데크 길 위에 쌓여가는 갈잎, 가랑잎 등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을 보고 걷노라면, 풍족함을 느끼게 한다.
겨울에는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으로 제법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몸이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걷다보면, 주위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의 운치를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낙엽들과 열매껍질들이 뒤덮인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밟고 걷노라면, 더욱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솔바람길’은 숲속의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천연의 피톤치드다. 일주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데 나는 이 ‘솔바람길’을 애용한다. 편한 마음으로 단전호흡과 명상을 하며 이 길을 걷는다. 나의 보행명상 자리로 그만이다.
“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온 몸을 이완하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들숨이 횡격막을 지나 단전 아래로 들어오는 느낌을 관전한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날숨이 단전에서 서서히 나가는 느낌을 알아차린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나의 생각, 감정, 오감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존재만 확인한다. 순수한 나를 느껴본다. “나는 늘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서 빛나고 있는 광명, 행복, 평화, 그리고 자유…”
어느덧, 처음의 갈림길까지 되돌아와, ‘솔바람길 입구’의 계단길을 내려온다. 조금 더 이 길을 걷고 싶다. 삼십분 정도 더 걷고 싶다. 덕음산 능선 가까이로 500미터 정도 연장하여 순환하는 길을 내면 더욱 좋겠다.
△김두성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한국문학예술〉로 등단했다. 현재 금지중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이며,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나의 작은 행복〉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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