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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에 핀 명자

▲ 임영희

지난 12월 초, 뜨락 담 아래 새똥 빠지게 명자나무의 꽃이 두 세 송이 살짝 얼굴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모든 사물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추운 절기인 소한 무렵 검붉은 숭어리에서 대여섯 송이가 활짝 피어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춘삼월에 피어야 할 꽃이 동지섣달 매서운 시절에 꽃을 피우다니 이상의 현실에 난감하면서도 나는 한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 집 뜨락의 명자나무 꽃만이 양지바른 언덕에선 개나리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런 이상 현상이 모두 제트기류 때문이란다.

 

그러더니 대한이 당도하자 그 이름값을 하며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1주일 가까이 계속되어 힘들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立冬)에서 시작하여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산골짜기와 하천이 있어선지 시내보다 5도 정도 더 낮게 체감한다.

 

2017년 정유년을 붉은 닭의 해라고 한다. 그동안 수많은 닭들을 보아왔지만 붉은 닭은 생소하다. 그러나 어감 상 ‘붉은 닭’ 하면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좀 더 이해를 돕자면 ‘붉다’는 것은 ‘밝다’는 뜻이기도 해서 정유년을 ‘밝은 닭’의 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밝다’는 것은 사람에게서는 ‘총명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유년을 ‘총명한 닭’의 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상서로운 기운에, 나도 생각지도 않은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 수반에 꽂아 보름 정도 더 감상했다. 향기가 멀리까지 간다는 천리향 작은 철쭉 분을 방안에 들여 한결 코와 눈의 호사도 부려보았다. 방안 가득한 향을 인공 향수와 비하랴. 그 맑고 상큼한 향 때문인지 추운 날인데도 추운 기분은 뒤로 물러서고 나는 그 향기에 취해있다.

 

어느새 70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달려온 나를 반추해 본다. 풀 한 포기도 자연의 일부로 다 제 길을 가는 게 뭐 나쁠까마는, 꼭 정원의 예쁜 꽃 보다는 길가의 풀 한 포기로 만족하면서 욕심 없이 살아갈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

 

꽃을 대단히 좋아는 나는 올해에는 뜨락에 꽃 양귀비와 수레국화를 심으려 했지만 이름 없는 들풀들도 함께 심어보려 한다. 내가 들풀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은 그 풀들이 저마다 독특한 풀 향기를 내뿜고 있어서가 아니다 세찬 바람엔 조용히 누워주고 잔바람엔 살짝 일어나 그윽한 향기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무명의 들풀들도 비가 오면 모두가 젖는다. 들풀은 그 속에서 온몸을 적시며 발뒤꿈치를 든다. 누가 알아주랴 그의 이름을, 그래도 그들은 파란 생명의 등불을 켠다. 이름은 없어도 신선한 등불을. 그리고 들풀은 들풀끼리 어울려 산다. 갖가지 모양새, 수수한 차림새로 오가는 길손이야 보든 말든 바람 부는 대로 하느작거리는 몸짓으로 서로 어깨를 비비며 머리를 맞대고 하냥 즐겁다. 거목의 꿈은 아니어도 생명의 빛을 세상에 펼친다. 푸르게 그러나 조용히 설레면서 들풀은 들풀끼리 어울려 산다. 이러한 들풀들을 심약한 가지의 양귀비와 수레국화 사이에 심어 놓으면 서로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화원에서 구입해 피우는 꽃도 좋지만, 들풀과 더불어 마음속에 항상 곱고 알알이 맺힌 작은 송이를 만들며 웃고 살면 일석이조로 건강하고 행복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작년부터 세상이 뒤숭숭한 세월 속에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꽃을 보고 가꾸며 위로하고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 없는 여생을 보내고 싶다.

 

붉은 닭의 해인 올해는 닭의 오덕 중 여명을 알리는 부지런함과, 여럿이 먹이를 먹는 것에서 배려하는 마음을 올해는 더 배우련다.

 

△임영희 수필가는 전북백일장에 시가 당선되어 문학에 입문해 대한문학 수필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문화 해설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야기할머니로 유치원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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