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이고 지금의 장류단지가 위치한 아미산의 남쪽 금과면 연화리이다. 나는 연화리에서 태어나 금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나가 생활하였고 경기도에서 공직생활을 하였기에 평생을 객지를 떠돌며 살아왔다.
누구나 그러하듯 고향은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곳이기에 나 역시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으며 학창시절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을 읽으면서 아미산을 연관시켜 생각해 오던 내 삶이었다. 왜냐하면 아미산 정상에는 암벽으로 된 커다란 봉우리가 자라잡고 있으면서 사람의 이마처럼 보이기에 아미산(峨嵋山)이라고 하였던 것 같고 그 봉우리에 있는 바위를 덤 바위라고 불러 왔기 때문이다.
덤 바위의 뜻은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덤으로 더 준다는 말이나 무덤에서의 덤과 같은 의미에서 ‘많다·크다·넉넉하다’의 뜻이 내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나대로의 해석을 하면서 덤 바위의 본뜻은 덕(德)바위가 와전되어 덤 바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따라서 덤 바위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으로서 금과 면민과 순창군민을 껴안아 왔고 이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순하고도 순한 양으로서 강간, 강도, 살인폭력의 수배전단에 한번도 오르내리지 않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 된 것이리라.
내동리(내동리는 법정리고 연화리는 내동리에 속하면서 행정리로 떨어진 자연부락임)는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되어 마을 입구에 정부에서 세워놓은 ‘범죄없는 마을’이라는 간판이 방문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갖고 있는 어렸을 때의 추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미산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미산 바로 아래 첫 마을에서 태어났고 아미산을 오르내리며 자랐기 때문이다.
아미산에는 산토끼는 물론 다람쥐, 노루, 오소리, 멧돼지 등의 산짐승과 각종 산새 및 갖가지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자 섬진강 상류의 청정지역 보금자리다. 그러기에 정부에서는 전국 시범 전원주택단지로 지정하여 농어촌공사에서 추진 조성했다. 어렸을 때 산에 올라 가을이면 으름·다래·머루·깨금 등을 따 먹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 년 전 늦은 봄에 아미산을 올라보니 울창한 소나무 밑에 피어난 철쭉꽃이 솔향과 함께 장관을 이루어 전국 어느곳과 겨누어도 절대 빠지지 않는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정상에 쉽게 오르도록 철사다리가 만들어져서 등산하기가 쉬워졌고 금과에서 아미산 중턱을 가로질러 순창 장류단지 옆의 강천산 입구까지 포장도로가 개설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함으로서 세상 정말 좋아졌다는 것을 실감케 하기도 한다.
이제 금과에도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선 것을 보면 금과(金果)라고 하는 지명대로 금 열매가 맺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여 혼자 기뻐해 보기도 한다. 일지기 선친께서도 훈장을 하시면서 연동 팔경기라는 글을 남기셨지만 선친께서 팔경기에 쓰신 것처럼 내고향은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은 아니지만 사람살기에 아주 좋은 고장임에는 틀림없기에 내 고장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향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것은 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고향을 떠난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리라. 이름 그대로 순창군 금과면이 참으로 순박하고 금과실 같은 아름답고 값진 결실이 맺어지기를 거듭거듭 비는 마음일러니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진실로 나타나기를!
△홍성주 수필가는 <문학춘추>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순창문인협회 지부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삶의 길목에서> , <휴당산방의 겨울 아침> , <영원 속의 기다림> 등이 있다. 영원> 휴당산방의> 삶의> 문학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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