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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장구 명인 배난경씨] 국악 외길 서러움 이기며 우리가락 전수 혼신

어릴적 권번서 흘러나오는 가락에 어깨춤 / 12살부터 이정범 선생에 설장구 장단 배워 / 전주 여성농악단 최연소 장구재비로 선발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버스를 타고 전주에서 정읍으로 건너와 전수생을 지도하는 국악인이 있다. 배난경(본명 윤정숙, 6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느덧 국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근 반세기가 넘었다는 그를 지난 19일 정읍에서 만나 배 명인 특유의 넋두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를 만나 조용히 옛 이야기를 듣고자 하면 늘 차는 곧 술로 이어지기가 십상이고, 종내에는 북 또는 장구통을 앞에 놓고 흥타령을 쏟아내기가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구통을 짊어지고 50년 이상을 국내와 국외 무대를 종횡무진 쏘다녔던 그녀에게 남은 것은 켜켜이 쌓인 설움과 한 뿐이었으리라. 이날도 배 명인은 “커피나 녹차 대신 선뜻 술 한 잔 나눠야 이야기가 된다”며 술자리를 권했다.

 

그의 이야기는 꿈 많았던 12살의 어린 소녀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아마 나는 어려서도 끼가 많았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그 등살에도 공부보다 장구 가락이 좋았으니까,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늘 권번에서 흘러나오는 따당땅 두들기는 장구 소리에 흥얼흥얼 어깨춤을 추곤 했으니 말이어.”

 

그러던 어느 날 출타했다가 당시 교동 권번으로 귀가하던 당대의 명고 명창 고(故) 김동준 선생이 어깨춤을 추는 윤정숙을 발견했고, 12살 어린 소녀는 김동준 선생의 손에 이끌려 처음 권번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12세 소녀는 전주권번에서 김동준 선생에게 어설프게나마 북장단과 단가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소녀의 북장단을 우연히 지켜보았던 당대 최고의 설장고 명인 고(故) 이정범 선생이 북장단 보다 설장구 장단을 배워보지 않겠느냐는 즉적 제안을 했다.

 

이정범 명인은 어린나이에도 배 명인의 소리와 북 장단이 두드러지자 시험 삼아 몇 가락의 장구 장단을 가르치고는 따라 치게 했고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가락과 몸짓을 모두 따라하는 배 명인을 이정범 명인은 자신의 제자로 입문시켰다.

 

이때부터 배 명인은 김동준 선생이 아닌 이정범 선생을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기 시작했고 스승이 하사한 ‘배난경’ 이라는 예명으로 소녀 국악인으로 거듭났다.

 

당시 이정범 선생이 배난경 명인에게 전했던 설장구 가락은 ‘정읍굿 설장구’ 가락의 시조로는 불리던 김홍집의 가락이 안봉구, 이봉문, 이정범 등으로 이어지던 가락이었다. 이후 이정범의 설장구 가락은 정읍의 신기성과 전주의 배난경 등에게 전승되는 계보가 됐다.

 

그렇게 지난 1964년 처음 이정범 선생을 만났던 배 명인은 이 해 가을부터 1974년까지 10년간 집중적인 강습을 받았다. 하지만 배 명인의 본격적인 활동은 14세가 되던 1966년부터 전주 여성농악단의 최연소 장구 치배로 선발되며 시작됐다.

 

이때부터는 배 명인은 이정범 명인이 펼치던 서울과 부산, 정읍, 전주 등지의 공연에 함께 참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구치배로, 때로는 스승을 대신해 설장구 공연자로 나서며 여성 설장구의 섬세한 가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설장구 가락은 판 굿의 개인놀이에서 출발했던 장르였다. 일반적인 개인놀이가 다른 악기의 반주 속에서 진행되는 것에 반해 설장구는 다른 악기의 도움이 없이도 연주자의 기량을 마음껏 나타낼 수 있는 악기였다.

▲ 배난경씨가 후배들과 공연을 하고 있다.

배 명인인 이런 설장구의 특성과 특유의 재능, 노력으로 20살이 되던 1972년부터는 장구치배보다는 뛰어난 설장구 예능인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배난경류 설장구’라는 독특한 몸짓과 연주 가락을 선보였다.

 

배 명인은 33세가 되던 1985년 이정범 선생으로부터 설장구 부분 기능보유자 인정서를 제수받았다. 이후 스승과 함께 한국문화재단, 경희대, 국립국악원, 서울예술전문대학, 리틀예인절스 예술단 지도자로 활동했다. 지난 1985년 전국대회가 없던 시절 경주 신라문화재 전국국악경연대회에 독자적으로 설장구로 부문에 ‘배난경류 설장구’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우리가락을 선보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니며 장단과 몸짓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그 과정이 때로는 서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외길 국악인이 지니는 한(恨)은 뒤틀리며 완성되는 예술의 마디를 채워주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현재 배 명인은 전국 각 지역 예술단의 설장구 지도자로 초청받아 활동하고 있다. 차세대 국악인을 키우기 위해 자신을 찾는 전수생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아직은 젊은 국악인이다.

▲ 이용찬 정읍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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