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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 40년간 희귀 잡지 수집해 온 서상진씨"삶의 향기 간직한 고서, 발견하는 기쁨 크죠"
이재문 기자  |  sandak7@jjan.kr / 등록일 : 2009.03.18  / 최종수정 : 2009.03.18  18:39:57
  
독립운동가 이기 선생이 발간한 도내 최초 잡지 '호남학보'를 들어보이는 서상진씨. (desk@jjan.kr)
 

"허름한 책방 한켠에 포개진 채 방치된 잡지 책이 사회의 이방인이 된 제 모습과 닮아 있었죠. 삶과 맞 닿아 있는 잡지는 그래서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잡지 (창간호)수집을 위해 40년 째 헌 책방을 들락거린 서상진씨(徐相珍·55·건축가·진안 주천면 무릉리).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야트막한 산기슭 아래 자리한 그의 보금자리에는 1만 여권의 고서들로 빼곡하다.

추억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헌 책방을 통해 어렵사리 서씨의 품 안으로 들어 온 희귀 잡지는 그야말로 숱하다. 그것도 혼이 담긴 창간호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문예동인지인 '창조(창간 1908.11)', 최초의 과학잡지 '과학조선', 김제출신 독립운동가인 이기 선생이 발간한 도내 최초 잡지 '호남학보(1908)''개벽', '조선문단'.... 그리고 최근의 '전원생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이 가운데 영국인 선교사 올링거 부부가 한국문화 소개를 위해 영문으로 발간한 국내 최초의 잡지 '리포지터리(Repository)'는 '보물 1호'로 손꼽힌다.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역사적 고서임에서다.

애지중지하는 그러한 '창간호'만도 2500여 종이 넘는다. 때문에 13㎡ 남짓한 그의 서재 벽면은 빈틈을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잡지 박물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잡지)고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죠. 서울의 청계천, 인사동 고서점 등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서가를 이틀이 멀다하고 들락거린 결과물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 묻는 서씨.

그의 별난 보물찾기는 10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부모 얼굴도 모른 채 혈혈단신으로 사회에 홀로 남겨진 그에게 '노동'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의 통로였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국민학교 졸업장 밖에 따 낼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몸으로 떼우는 일' 말고는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노동판만 전전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의 한 일원(?)이 되고픈 욕망에 200통이 넘는 이력서를 써 봤지만 매번 허사였다. '문교부 증'이 없는 그를 세상은 이방인으로 단정지음에서다.

혈기왕성한 20대의 젊은 나이에 정형화 된 도심의 틀을 벗어나기로 한 것도 이처럼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경기가 좋았던 1992년 그가 처음 찾은 초야지는 빨치산 지역사령부가 있었던 장수읍 노곡리. 달랑 지도한장 들고 찾아간 그 곳은 조실부모한 그에게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기 딱 이었다.

자연과 동화된 새 삶 터는 제법 글 재주가 있는 아내 박선진씨(朴仙珍·59·소설가)의 집필환경으로 손색이 없었고, 열심히 살기만 하면 '먹물(?)'도 한낱 사치에 불과했기에 만족감은 충만했다.

텃밭수준의 농사를 지으면서 생긴 돈은 잡지부터 구입했다"는 서씨. 7년전 지금의 거주지인 진안 무릉리로 귀농터를 옮겨와 벽돌쌓기로 생계를 꾸려가는 그에게 고서 구입은 또 다른 현실의 벽이었다.

"수입이 있으면 곧바로 책사는데 투자하다보니 생활이 어려웠다"면서도, "지금도 새로운 잡지가 창간되면 어김없이 입수한다"는 그의 집념에서 잡지관련 계통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은 당연논리다.

때론 서씨의 집에 석·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과 학자들이 찾아오곤 한다. 서재에 빽빽히 꽃혀있는 누렇게 빛바랜 잡지들을 엿보기 위해서라고. 이들 고서는 역사적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열쇠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한 고서를 소장하는 서씨를 주변에서 그냥 둘리 만무. 희귀본 50여 권은 전국 유명 잡지 전시회 단골 메뉴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이름난 특별전만도 20여 차례 참가할 정도다.

결국 수포로 돌아가긴 했지만 한때 무주군청에서 잡지 박물관을 만들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는 서씨. 보유하고 있는 잡지를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서스름없이 드러냈다.

"소장한 잡지가 많아 이젠 보관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제가 모은 평생의 성과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말로, 잡지 박물관을 위해 흔쾌히 보물을 내 놓을 생각이 있음을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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