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10. 정극인의 상춘곡 (중)] '서정·서사·교훈' 종합 복합장르

(가) 엇그제 겨울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피어있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을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화풍(和風)이 건듯 불어

 

녹수(綠水)를 건너오니

 

청향(淸香)은 잔에 지고

 

낙홍(落紅)은 옷에 진다

 

천촌만락(千村萬落)이

 

곳곳에 벌려있네

 

연하일휘(煙霞日輝)는

 

금수(錦繡) 재폈는 듯

 

엇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有餘)할샤

 

(나)송죽울울리(松竹鬱鬱裏)에

 

풍월주인(風月主人) 되었어라

 

시비(柴扉)예 걸어보고

 

정자(亭子)에 앉아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여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閒中眞味)를

 

알 이 없이 혼자로다

 

아침에 채산(採山)하고

 

낮에 조수(釣水)하세

 

소동(小童) 아이에게

 

주가(酒家)에 술을 물어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微吟緩步)하여

 

시냇가에 혼자앉아

 

명사(明沙) 조한 물에

 

잔 씻어 부어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桃花)로다

 

무릉(武陵)이 가깝도다

 

저산이 그것인가

 

발화(發話)자는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를 경탄하다 못해 도취된 나머지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라는 탄사를 영발(詠發)하고 있다. 이는 봄날의 풍경이 객관적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주관적 관조의 세계가 심미적인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즉 봄날의 경치가 명장들의 칼로 조각된 것인지, 아니면 유명한 화공(畵工)에 의해 붓으로 그려낸 것인지 모르지만, 이는 분명 보통 사람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닌 필경 조화옹(造化翁)의 신비세계의 경지에 이른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연 경물 속에 서정을 담은 경중정(景中情)의 정서적 가치의 표방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일반적인 시적 감흥이었으며 시정신이 되어 왔다. 수풀에서 우는 꾀꼬리가 봄 향기에 취해 노랫소리마저 교태롭게 들리는 것은 발화자의 정서의 직서화(直敍化)가 아닌 조선조 사대부들의 일반적 정서의 표출 방식이었다. ‘물(物)’과 ‘아(我)’, 즉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는 곧 자연을 객관적 대상으로만 보지 아니하고 바로 발화자의 정서로 주관화하는 관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정은 ‘상춘곡’을 수용하는 향유자나 독자층의 입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가)를 읊조리거나 창(唱)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발화자의 입장과 같이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서정적 진술로 받아들여 미적 감흥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봄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도화행화(桃花杏花)나 녹양방초(綠楊芳草), 세우(細雨), 새, 화풍(和風), 녹수(綠水), 청향(淸香), 술잔, 낙홍(落紅), 천촌만락(千村萬落), 연하일휘(煙霞日輝) 등은 춘경을 그리는데 사용된 소재만은 아니다. 이러한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그것이 객관적 대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발화자의 시혼(詩魂)과 교감되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게 되며 향유자(독자)층에서도 똑같은 심정적 도취로 수용되어 나타나게 된다.

 

(나)의 경우도 봄날 하루 동안의 생활을 순서대로 늘어놓은 일기처럼 서사성을 보여주는 진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사립문(柴扉) 밖을 걸어보고, 정자에 앉아 보며, 나물캐기와 낚시질, 또는 주가(酒家)에서 술을 받아 시냇가에 홀로 앉아서 취락(醉樂)에 빠져 있는 발화자의 모습은 하루생활의 일목요연한 일기적인 서술로도 볼 수 있다. 하루생활의 나열로 관심은 객관적 대상에 머무르고 있고, 서사성을 외연(外延)으로 하면서도 객관적 대상과 발화자는 물아일체의 도취적 경지에 이르러서 서정성에 귀결되므로 서사와 서정의 복합성이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동일 교수는 ‘상춘곡’은 봄날의 풍경과 그 속에서 보낸 하루를 그리고 있는데 그치는 작품이 아니며, 그러한 사실을 묘사하여 남에게 알려주고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이해하고 있다. 즉 사실의 전달에만 그치질 않고 사실의 전달을 통하여 일정한 교술(敎述)적 목적을 첨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의 장르를 가르쳐주고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교술장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사는 교술장르만이 아니라, 서정과 서사, 교훈성이 종합된 복합장르로 파악하는 게 옳다.

 

이러한 특성은 우리나라 가사장르만이 가지는 고유성으로 세계적인 문학장르라 할 수 있다. 오랜 관직생활을 했는데도 조산대부행사간원(朝散大夫行司諫院) 정언(正言)에 그친 정극인은 공명과 부귀도 나를 꺼려 피해가니 단표누항(簞瓢陋巷)에서 ‘흣튼혜음’ 아니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조(自嘲)가 내면에 깔려 있다. 그러한 가운데 유교 윤리적 타당성을 설정하고 안빈자족(安貧自足)이란 유교적 철학을 가르쳐 주기 위한 교훈적 진술 위에 서정과 서사가 복합된 장르라는 것이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

오피니언활동적 노년(액티브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