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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김시습의 〈만복사 저포기〉] 남원지역 설화 재구성한 한문소설

노총각·처녀귀신 사랑 이야기 다룬 인간중심적 특성 국문학적 의미 커

계유정란을 일으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김시습(세종 17년 1435- 성종 24년 1493)은 삭발하고 중이 되어 북으로 안시향령, 동으로 금강오대, 남으로 다도해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 관동록, 호남록을 썼고, 그때 읊은 시들을 정리하여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을 남겼다. 그리고 누차 세조의 소명도 뿌리치고 31세(세조 11년 )때에 경주 남산 금오산 자락에 금오산실을 짓고 들어앉아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몽유록계 한문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筵錄)〉 등 5편이 「금오신화」에 실려 전한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으로 완본은 전해오지 않으나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발견하여 1927년 〈계명〉19호에 실음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은 고종 21년(1884년) 동경에서 발간된 것으로 상, 하 2권이다. 상권은 32장으로 서(序)와 〈매월당소전〉,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등이 실려 있고, 하권은 24장으로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발문, 평(評) 등으로 되어 있다. 본디 이 목판본은 효종 4년(1653년) 일본에서 초간되었던 것을 중간한 것으로 초간본은 오스까(大塚彦太郞)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자료였다. 국내에서도 1952년에 정병욱 교수가 필사본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을 발견하고 세상에 내놓아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생규장전〉은 개성의 이생(李生)과 최소저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후반에 가서 홍건적의 난에 죽은 아내 최소저와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가다가 영영 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생은 학당을 오가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양반집 규수인 최소저와 눈이 맞아 밤마다 담을 넘어 다니며 사랑을 나누었지만 결국 이를 알게 된 이생의 부모가 이생을 먼 울주로 떠나보내어서 이들의 애정행각을 끊어 놓았다. 하지만 최소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양가부모의 허락을 받아서 종국에 혼인을 하였다.

 

이후 이생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최소저와 양가의 가족이 모두 희생되고 이생 혼자만 남게 되는 비극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부인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는 이생에게 최씨 부인이 다시 나타나서 수년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이승의 인연이 끝났다고 홀연히 떠나버리자, 이생도 마침내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죽게 된다는 결말의 구조를 지닌 이야기다. 이생규장전은 일종의 산자와 죽은 자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시애(屍愛)설화라 할 수 있다.

 

〈취유부벽정기〉는 개성에 사는 홍생(洪生)이 평양으로 장사를 나갔다가 대동강 부벽루에서 술을 마시며 놀게 되었는데 수 천 년 전 선녀가 된 기씨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다. 본디 개성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홍생이 달 밝은 어느 날밤에 부벽루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처녀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처녀는 그 옛날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자의 후예였는데 고국을 너무 그리워하다가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날 하늘의 천명을 어길 수 없다며 승천을 하자, 양생도 병이 들어 죽게 된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은 시애소설의 공통적인 설화구조를 지닌다.

 

〈남염부주지〉는 미신과 불교를 배척하는 선비인 박생(朴生)이 경주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꿈속에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토론을 하고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용궁부연록〉은 개성에 살고 있었던 한생(韓生)이 꿈속에서 용왕의 잔치에 초대되어 시를 지으며 즐겼다는 이야기다.

 

〈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이 부처와 저포놀이(윷놀이내기)를 하여 승리한 대가로 부처가 수년전 왜구들에게 죽은 처녀귀신과 만나게 해줌으로써 이들은 꿈같은 부부생활을 하다가 헤어졌다는 산자와 죽은 자와의 사랑을 다룬 설화이다. 양생은 일찍 부모를 여읜 후 혼인을 못하고 홀로 살아가는데 부처의 도움으로 왜구의 난에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혼자 정절을 지키며 살다 죽은 원혼을 만나게 되어 며칠간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재회를 기약한 날 양생은 딸의 대상을 치루는 양반집 행차를 목격하고 자신과 사랑을 나눈 처녀가 3년 전에 죽은 그 양반댁의 망자임을 알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부모가 베풀어준 음식을 먹고 난 후 처녀는 저승의 명을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며 홀연히 사라지자, 양생도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홀연히 그 처녀가 다시 나타나서 자신은 죽어서 다른 나라로 가 남자로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이에 양생은 장가를 들지 않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평생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이야기로 이생규장전과 같이 산자와 죽은 자의 이야기구조를 지닌 설화다.

 

이들 한문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그 지방에 많이 살고 있는 대표적인 토속적 성씨들로서 재자가인들이며, 아름다운 문언문(文言文)의 한문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설화를 옮긴 점 등이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성격을 공통적으로 띠고 있는 특성을 보인다. 금오신화의 이야기들은 조선 초에 이르기 까지 계속적으로 서사문학의 원초형태인 설화로 이루어져 전승 변이되면서 소설이 발생될 수 있는 문학사적 기저를 마련했다고 할 수가 있다.

 

설화나 소설은 동질의 서사문학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화의 발달이 한문소설의 발전을 가져온 동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박인량의 「수이전」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는 수많은 설화들이나 임춘의 〈국순전〉이나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나 〈청강사자현부전〉 같은 고려의 가전체소설 등이 금오신화에 내면적 영향을 주었고, 외적으로는 명나라 초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와 같은 전기체 소설의 영향을 비교문학적으로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세조찬탈이라는 부조리한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관북, 관서, 호남, 영남의 방랑생활에서 얻어진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만복사저포기〉는 전북 남원지방에 있는 만복사를 배경으로 남원 양씨 성을 가진 노총각과 왜구의 출몰로 희생된 처녀귀신과의 이야기구조를 이룬 설화를 수집하여 재구성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가 있다. 그리고 국문학상 고려대의 가전체소설을 이은 최초의 한문소설의 첫 작품 〈만복사저포기〉가 남원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남원에서 살다간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을 낳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가사 〈유민탄(流民嘆)〉이 생산케 되었다는 국문학적 의미가 크다. 그리고 훗날 남원 광한루를 배경으로 전승되는 남원 여인을 중심으로 민간설화를 소설화한 우리나라의 러브스토리 〈춘향전〉이 조선 후기의 주요한 국문학 작품이라는데 큰 의의를 찾을 수가 있다.

 

〈만복사저포기〉와 〈춘향전〉 이 두 작품은 환상이나 몽상의 공간과 현실공간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주자학적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이념이나 철학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적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남성종속적인 여성관에서 여성의 독자적 존재 가치가 부각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근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가 있다. 이는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남원지방 민중들의 인간중심적인 휴머니티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한문소설의 효시작인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와 광해군이 암행조사를 할 만큼 문제가 된 가사 〈유민탄〉과 임진란 때 실제 남원에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소설 〈최척전〉이 남원의 조위한에 의해 이 지방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이 고장이 우리나라 산문문학의 원천이라는 국문학적 의미를 갖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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