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가난퇴치 방법 구체적으로 서술 / 자식 가르치는 것도 '맹모삼천지교' 영향
치산하라 이른 말이 우선농사 힘을 쓰소
산상육등 박토라도 거름하면 곡식되리
옛 사람은 전하되 농불실시(農不失時) 일렀도다
상평전(上坪田)에 하평전에 농사하기 재미내소
(중략)
우마계(牛馬鷄)돝 양식동물 암 짐승을 가려두소
육축짐승 잘되기는 사람에게 있나니라
온갖 채소 잘 가꾸어 삼시반찬 장만하여서라
좋은 반찬 곁에 두고 값진 고기 사지마소
(중략)
송죽(松竹)이라 하는 것은 여염가에 허다 있어
쓰고 남은 송죽베어 팔아다가 전답사소
밭을 사고 논을 사면 가세(家勢) 자연 요부(饒富)하리
앞에 노적 뒤에 노적 석숭왕가 가소(可笑)로다
치산가의 주제인 살림살이와 가난퇴치의 방법이 구체적으로 서술된 단락이며, 재산을 늘려야만 집안이 번성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물질철학이 두드러진 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실학정신이 들어온 정조대 이후 조선조 말엽의 사회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난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길고 긴 봄날 하루를 죽 한 사발로 연명하고, 아들 손자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동네를 돌면서 걸식(乞食)하는 일이란 부모로서 참을 수 없는 처절한 절망이다. 걸식하는 아이들이 밥은커녕 오히려 매를 맞고 돌아오는 상황이라든지, 우는 아이 달래려고 밥이나 고기를 주겠다고 속임수를 써서 부모가 거짓말로 울음을 달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의 극한상황이다.
‘매터를 만지면서 매 맞으면 쉬 큰단다/ 우지마라 지발 덕분 우지마라/ 밥을 주마 우지마라 고기주마 우지마라’는 극단적인 가난의 고통을 표현하는 패러그랩이다. 부모 자신의 고통쯤이야 스스로 견뎌낼 수 있지만, 분신같은 자식의 고통과 쓰라림은 참고 견딜 수 없는 게 이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오죽했으면 밥을 주고 고기를 줄 테니 우지마라라고 거짓으로 달래었을까 말이다. 이런 처절한 고통은 치산(治産)하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치산의 방법을 구체화한다.
첫째, 제초와 시비로 농사에 힘을 기울이면 산상 육등부의 박토(薄土)일망정 수확이 가능하고, 특히 농사란 절대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윗뜰의 상평전이나 아랫뜰의 하평전이라도 농사하기에 재미를 붙이고, 모맥과 서숙, 두태(豆太)밭에도 제초하기를 힘쓴다면 가을 수확은 ‘양양만가(揚揚滿家)’일 것이니 이 아니 좋은 일인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둘째, 농사일뿐 만이 아니라 양잠과 길쌈에도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봄, 여름 두 계절에는 마포(麻布)와 저포(紵布)를 힘써 낫고, 석 달 농사가 양잠이므로 누에치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衣食)이 일체이니 농사만이 아니라, 의복에도 힘을 써서 거느리고 있는 종에게도 옷을 만들어 입힌 후에 남은 것은 내다 팔면 그것 또한 재물이 된다는 것이다. 재물이 많아지면 자연히 귀한 손님도 많이 드나들게 되고 판서자제, 참판, 수령방백들도 모여드는 법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치산가는 재물이 있어야만 집안이 흥성할 수 있다는 생각 끝에 적극적으로 치산에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교술(敎述)적인 가사이다.
셋째, 소나 말, 닭과 돼지 등은 암컷을 잘 가려둬서 번식시켜야 재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짐승들은 사람이 어떻게 양축(養畜)하는가에 달려 있는 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 채소를 잘 가꾸어서 반찬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순연히 자급자족의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과정 중에 남은 것은 내다 팔아 재물로 만든다는 것이 주된 치산의 방편이다. 채소와 같은 좋은 반찬을 놓아두고 값진 고기를 사지 말 것이며, 삼시 세 때 정성으로 반찬을 마련하되 쓰지도 맵지도 않게 알맞게 장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이란 그 집안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경계하는 것도 주목된다.
다섯째, 청결과 불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뜰을 쓸고 상 밑과 그릇까지 정성스럽게 닦아 청결을 유지하여 가정의 건강을 돌봐야 하며, 부엌에서 불조심을 게을리 하여 화재를 만난다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된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여섯째, 송죽의 임산관리로 재물을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송죽이라는 것은 여염가에 흔히 있는 것이므로 쓰고 남은 것들을 베어서 장에 내다팔아 논과 밭을 사게 되면 가세가 자연 요부(饒富)하게 된다는 것이다. 양반가에는 울창한 산이 많으므로 나무를 베어내어 팔아다가 전답을 사서 농사를 짓게 되면 앞뜰과 뒤뜰에 노적가리가 가득하여 진나라 때 부호인 석숭(石崇)이가 부럽지 않다는 용사(用事)까지 하고 있다.
이렇듯 치산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치산의 방법이다. 일반 규방가사에선 이 치산조가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작품은 47행 96구로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개의 내훈조의 규방가사들은 근려(勤勵)와 절검의 덕목으로 입치레 곧 군음식금지, 몸치레의 의복치레금지, 헌옷 기워 입기, 잡음식도 버리지 말 것과 집안 청소, 기명(器皿)간수를 잘하여 그릇이 깨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 등으로 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치산가는 그 보다도 재산관리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는데 그 특성이 있다.
옛적의 해임태사 임태(姙胎)하여 태교 하네
태교란 뜻 들어 보소 낳기 전에 가르치소
궂은 빛과 음탕소리 보고 듣지 아니 하네
이렇듯 십삭만에 탄생하매 옥동자라
(중략)
어진 스승 맞아다가 글공부를 가르치소
사서삼경 백가어를 무불통리(無不通理) 가르치소
근본재주 있는 고로 수용산출(受容算出) 기지로다
문장탁월 무슨 일고 태교 덕이로다
태교는 여훈(女訓) 속에 ‘임자(妊子)’로 나와 있는데 특히 소학 ‘성학십도(聖學十圖)’ 입교편의 입태육보양지교(立胎育保養之敎)조를 근저로 하고 있다. 치산가의 ‘궂은 빛과 음탕소리 보고 듣지 아니 하네’는 소학 권1 ‘입교’편의 ‘목불시사색 이불청음성(目不視邪色 耳不聽淫聲)’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다른 규방가사의 경우도 소학의 입교편을 국문으로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 혹사하다. 자식을 가르치는 것도 소학의 맹모삼천지교의 전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맹자의 어머님은 세 번 옮겨 가르칠 제/ 처음으로는 장가이요 두 번째는 묏가이요/ 세 번째는 학당이라’는 여느 규방가사와 같이 소학 권4 계고(稽古)조를 그대로 용사한 것에 불과하다. ‘어진스승 찾아 가르치니 천고의 맹자로다’는 성학십도의 입교 가운데 ‘입사제수수지교(立師弟授受之敎)’로 ‘어진 스승 맞아다가 글공부를 가르치소’에 그대로 연결된다.
치산가가 아니더라도 집안을 잘 다스려서 부자로 만들고 자식을 잘 기르고 가르쳐서 과거에 급제하고 영달(榮達)하게 되는 것은 규방가사의 일반적 내용이며, 이 또한 여인네들의 한결같은 꿈이요, 소망이었다.
그러므로 과거는 거의 모두가 장원급제로 과장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선조 여인들의 열정적인 치산과 교육력에 의해 자식들이 잘 가르쳐지고 길러져서 가정이 번창을 하였고, 나라가 잘 지켜져서 오늘의 부강한 국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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