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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치부의 노래 치산가(상)] 근세 실학사상 특성 지닌 호남지역 귀중한 자료

치산가는 부녀자를 가르치기 위한 계녀가류(誡女歌類)의 가사로서 주로 재산을 늘려 집안을 일으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 작품이다. 이 가사는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여 노래한 망부가나 명당을 찾아 산천을 답사하면서 쓴 답산가와 마찬가지로 재산을 잘 다스려 집안을 일으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가사라는 뜻을 지닌 치산가(治産歌)이다.

이 작품은 오래전에 필자가 이 고장 전주의 한 고서화점에서 발견한 것으로 ‘신유년 정월 팔일 효심곡 열녀전합부’라 병기하고 한글로 〈열녀젼이라〉고 표제한 것 중의 일부이다. 창작시기는 치산가의 결구 뒤에 ‘임슐년 졍월 쵸파일 치산가 디노라’로 보아 임술년 1월 8일인 것은 분명하나, 임술년의 간지가 어느 해인지 분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사상적 배경으로 보면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실학이 성행했던 조선 정조대 이후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순조 2년 1802년이 임술년이고, 철종 13년인 1862년이 임술년인데, 사용된 국어법이나 종이의 지질, 또는 사상적 배경 등으로 보면 1862년 정월 팔일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치산가’ 라 표제한 뒤 32×21cm의 크기로 한지를 접어 궁체흘림붓글씨체로 14장 28쪽으로 쓴 252행 501구의 장형가사작품과 ‘겁젼이라’ 한 산문체의 한글소설이 18장 36쪽으로 병합된 수제본이다. 끝에는 ‘고창군 대산면 성남이 成소저시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성소저(成小姐)는 이 작품을 필사한 사람으로 추정된 여성이다. 이외에 ‘기묘 8월 득용기(得用記)’라고 한 동명이작의 치산가가 〈별회심곡〉과 합본된 작품이 또 있으나 취급하지 않고 이 치산가만을 소개하려 한다.

 

작품 내용으로 보면 안빈낙도하는 도학자풍과는 달리 치산을 잘 해야만 집안이 풍족해지고 자식도 잘 가르쳐서 번성할 수 있다는 근세 실학적 물질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도 조선조를 주도해 왔던 남성적 언어가 아니라, 규중여인네의 목소리였다는데 주목하고 싶다.

 

 대개 계녀가란 근검절약하여 가산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치산의 개념으로 하고 있지만, 이 치산가는 그러한 소극적 차원에서 벗어나 치산의 구체적이고도 실천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어서 다른 계녀가사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홍규권장가〉, 〈상사별곡〉과 더불어 영성한 호남지방의 규방가사 가운데 질량을 더해줄 귀중한 자료인 셈이다.

 

이 치산가는 서사, 화동생지친(和同生至親), 사구고(事舅姑), 행신(行身), 접빈객(接賓客), 봉제사(奉祭祀), 치산, 태교, 육아, 장원급제 및 도문(到門), 진심갈충(盡心竭忠), 결사로 구성되어 있는 영남의 일반적인 계녀가류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치산가의 결언 가운데는 ‘유전(有錢)이면 가사귀(家事貴)’라 하여 치산을 잘해야만 자식의 권학에 힘쓸 수 있고, 이후에 온갖 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물질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지간 만물중의 신령(神靈)한 게 사람이라

얼굴로 이른 것과 행실로 이름이라

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

효도로 지애(至愛)하고 지성으로 봉양하소

가막 까치 저 짐승도 반포(反哺)할 줄 능히 아네

하물며 사람이야 부모봉양 섬서하랴

부모은덕 논란하면 태산이 가벼우니

정성 충양 극기하나 반분인들 갚을소냐

귀하도다 우리형제 부모정기 함께 받아

형수 동기 형제간의 우애화목 아니하랴

(중략)

행동거지 조심하고 언어수족 삼가하소

과년(過年)에 출가하기여자의 예사로다

이친출가(離親出嫁) 무삼인고 삼종(三從)이 지중하다

 

  천지간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게 사람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규방가사의 일반적 형식에 맞춘 것으로 유교적 윤리의 전범에 의거하였다. 〈훈계가〉의 ‘천생만물 하올적에 유인이 최귀로다’도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소학의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天地之間 萬物之衆 唯人最貴)’를 그대로 용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신체발부 이내몸은 부모님께 받아있다.’(身體髮膚 受之父母)라든가 ‘까막까치 저 짐승도 반포할 줄 능히 아네’등이 모두 논어, 맹자, 소학, 대학 등의 유교전서에 전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런 바탕 위에 송나라 때의 ‘주자가훈’이나 주천구가 찬한 ‘여범(女範)’이 근간이 된 인효문황후(AD 1407년)의 ‘내훈(內訓)’ 등은 조선조 규방가사의 전범이 되었다. 내훈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70년이 지난 조선 성종비인 소혜왕후가 쓴 게 있지만 목록은 비슷하나 내용은 서로 다르다.

 

 명 나라의 내훈은 영조 12년(1736년)에 이덕수가 ‘여사서(女四書)’의 권2에 전문을 수록하여 놓았는데 그 목록들은 유교전서 외에도 주자가훈이나 여범(女範), 내훈(內訓), 여사서, 여훈(女訓) 등에 들어있는 덕목으로 여자로서 말을 삼가하는 일, 덕성을 기르는 일, 부지런함, 남편을 모시는 일, 형제간의 우애와 친척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일 등 20덕목을 구체화하여 진술되고 있다. 천지간 만물 중에 인간만이 가장 신령스럽고 귀중한 존재이며, 사람의 신체발부는 부모께 받은 것이므로 부모께 지성으로 효도하여 봉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새끼들은 어미가 물어다 준 먹이를 먹고 자라지만, 성장한 뒤에는 어미를 되먹여 살린다는 반포조(反哺鳥)인 까마귀를 용사(用事)하여 때론 인간이 미물인 까마귀만도 못하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강조하였다. 부모정기를 함께 받아 태어난 형제간에는 우애하며 화목해야 하고 출가하면 후회하지 않도록 규중범절을 익히면서 침선(針線)과 주조(酒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언어와 수족을 삼가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특히 언문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보더라도 언문은 학문이라기보다 규중여자들의 필수적 수신과목이었음을 알만하다.

 여자가 과년하면 의당 출가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나 부모 곁을 떠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를 확인해 보지만 여자는 삼종(三從)의 질곡이 운명이라고 체념을 하기도 한다. 삼종의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고 삼강오륜의 뜻을 알고 몸소 실행을 한다면 여자의 행실은 자연 아름다워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삼강 중에서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는 강상은 지적함이 없이 자식의 벼리는 아버지인 것이며 부처(夫妻)의 벼리는 가장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오륜은 부부간에 친애하고 임금과 신하간에는 충의가 있어야 하며, 부자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소년간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도 삼강에서 군신간의 벼리가 빠진 것처럼 오륜에서도 벗들 간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덕목이 결여되어 있다.

 

 출가하여 3일을 지낸 뒤에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시부모에게 공양을 잘 해야 하는데, 시부모께 효양을 잘 하면 세상 여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효부가 되고 또 가장을 공경하면 세상에서 범상치 않은 열녀가 된다고 하였다. 시부모는 남편의 부모이자 곧 나의 부모가 되기 때문에 어육과 떡, 과실을 얻게 되면 먼저 부모에게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예거하고 있다. 벗들 간에는 신의가 첫째요, 일가친척 간에는 화목해야 하며 슬하의 노복(奴僕)들은 나의 손발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체하(逮下)’의 도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옛날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 원문에는 종공예로 잘못 기록됨)는 9대에 걸쳐 집안 화목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들어 용사하면서 구세동거(九世同居)의 중요한 요인이 참는 일이며, 따라서 백인지당(百忍之堂)의 집안이면 반드시 화목이 이루어진다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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