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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조위한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남원서 창작된 사회 비판 작품 '문학사 보배'

역사적 실존인물 등장 / 다큐멘터리적인 작품 / 부조리한 정국 고발도

남원 만복사 동쪽에 모친을 일찍이 여의고 부친과 함께 살았던 최척이란 소년이 옥영이란 처자와 임, 병 양란을 겪으며 중국, 일본을 무대로 펼치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다룬 조위한의 〈최척전(崔陟傳)〉도 남원에서 창작된 한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최척은 임진왜란 때 남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변사정의 막하에 들어가 활약했던 실존인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주목된다. 그는 82세의 삶을 사는 동안 민족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고, 일생동안 사회현실과 관련된 문학 활동을 해왔다. 이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남원의 만복사를 배경으로 하여 창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임제의 〈원생몽유록〉, 〈화사〉, 〈수성지〉 등 한문계 고소설에 이어 그러한 문학적 환경을 이루어 왔다는데도 의의가 있다.

 

〈최척전〉은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이 받아야 했던 수난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왜구나 구원병으로 온 명군들에게까지도 당한 치욕과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아픔들까지 다루었고, 실제 역사적인 실존인물이 등장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 등 세 나라를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다큐멘터리적인 작품이다. 특히 작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건전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작자정신이 깊게 베어난다는 점에서 기존 소설이 따를 수 없는 차별적인 작품이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있는 홍도와도 유사한 내용으로 임진란 때 있었던 최척과 옥영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광해군 13년(1631년)에 조위한이 지은 소설로서 현재 한문본 필사본이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전한다.

 

조위한(趙緯韓)은 명종 22년(1567)에 출생하여 인조 27년(1649) 세상을 떠날 때까지 82년간의 그의 삶 자체는 임진란, 정유재란, 정묘 병자호란 등의 외침과 계축옥사,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 내적 난리로 어지러운 세상을 어렵게 살아온 풍운의 사대부였다. 그는 인조반정으로 인해 벼슬길에 오른 이후에도 과감하게 종실(宗室)인 인성군의 만행을 비판하는 ‘위인성군소척인피계(爲仁城君所斥避啓)’의 상소를 올림과 동시에 왕실 사람인 정백창을 논죄하라는 상소도 올렸다. 이러한 죄목으로 인조의 미움을 사서 한때 양양부사로 좌천이 되었지만, 인조 2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왕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군사를 거느리고 상경하여 왕을 보호할 만큼 임금에 대한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광해군 10년(1618년) 나이 52세 때 벼슬을 버리고 남원 주포로 이주하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생각하며 그 운(韻)을 빌어‘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를 짓고 전란으로 황폐된 강산과 세상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두 차례의 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으로 피폐된 강토와 유랑민들의 참상을 보며 사대부로서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일마저 버려둔 채 살아가는 한심한 자신을 이 한시에 담았고, 또 광해군 13년 55세 때 가사 〈유민탄(流民嘆)〉을 지어 유랑하던 백성들의 처절한 한과 아픔을 담아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조위한은 잘못된 현실을 묵과하지 않고 작품 속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나라 안에 이 작품이 크게 유행하였고, 그런 이유로 광해군은 이를 알아보라고 궁중 밖으로 암행조사의 명을 내린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한 까닭으로 가사 〈유민탄〉은 그 작품이 유실되어 전해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억(趙億)이 찬한 ‘현곡조공행장(玄谷趙公行狀)’에는 장종 천계원년 즉 신유년 공이 55세 때 〈유민가〉를 지었는데 그 당시 부역에 시달리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즐비한 참상을 우리말로 지었다. 노래가사가 슬프고 곡진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슬퍼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였다. 홍만종은 「순오지」에 홍섬이 지은 〈원분가〉로부터 송순의 〈면앙정가〉, 백광홍의 〈관서별곡〉, 정철의 〈관동별곡〉과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 차천로의 〈강촌별곡〉, 허균의 첩 무옥의 〈원부사〉, 조위한의 〈유민탄〉, 임휴우의 〈목동가〉, 무명씨가 지은 〈맹상군가〉 등 당대 굴지의 12가사를 소개하면서 조위한의 가사작품을 열 번째로 실어 놓았다.

 

그리고 이들 작품 가운데 〈유민탄〉은 ‘현곡 조위한이 지은 것으로 어두운 조정 정령(政令)의 번거로움과 열읍(列邑)들의 세금징수의 가혹함을 자세히 서술했으니 정협의 〈유민도〉와 서로 표리(表裏)가 됨직하다’라고 평설하였다. 또한 홍만종은 송시열이 찬한 조위한의 ‘신도비명’에도 조위한이 지은 〈유민탄〉이란 가사에는 백성들의 고통과 집안이 무너지는 슬픔을 그대로 기술했는데, 임금이 이를 찾아내라 했으나 찾아내지 못했고 훗날 광해실록을 수찬할 때 자신이 그것을 보고 사실로 믿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로 보면 조위한과 같은 조선조 사대부들은 불쌍한 백성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보살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애민사상의 소유자들이었고, 부조리한 정국을 고발하며 이를 광정해야 한다는 비판적 지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대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조의 사회문화가 세계적이었다는 문화사가들의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우리 전북지방에서 그러한 훌륭한 사대부들 예컨대 신경준, 장복겸, 조위한 등이 가렴주구의 무자비한 세곡징수과 부조리한 정정(政情)을 바로 잡아야만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된다는 상소를 하는 한편, 이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 많은 저술활동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다만 조위한의 가사 〈유민탄〉이 실전되어 안타깝지만, 어무적이란 사람이 지은 동명이작의 〈유민탄〉이란 한시를 보면 이 작품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창생들 어렵네(蒼生難)

 

창생들 살기 어렵네(蒼生難)

 

나는 너희를 구제할 마음 있어도(我有濟爾心)

 

너희를 구제할 힘은 없다네(而無濟爾力)

 

창생들 피나는 고통(蒼生苦)

 

창생들 피 토하는 고통(蒼生苦)

 

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는데(天寒爾無衾)

 

저들은 구제할 힘은 있어도(彼有濟爾力)

 

구제할 마음은 없다네(而無濟爾心)

 

원컨대 소인의 마음 돌려서(願回小人腹)

 

잠시 군자를 위해 걱정하노니(暫爲君子慮)

 

잠시라도 군자의 귀를 빌어서(暫借君子耳)

 

시험 삼아 백성의 말 들어보아라(試聽小民語)

 

백성들은 말을 해도 그대들은 알아듣지 못하고(小民有語君不知)

 

지금 백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렸네(今歲蒼生皆失所)

 

비록 대궐에서 임금이 근심하는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도(北闕雖下憂民詔)

 

자방관청이 받아 보는 건 쓸데 없는 종이 한 조각이네(州縣傳看一虛紙)

 

- 중략 -

 

억만창생들은 입을 옷가지 하나 없이 헐벗고, 아무리 추워도 덮을 이불 하나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데 구제할 힘이 있는 나라의 관료들은 탐관오리들뿐이라는 부조리한 참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한 시이다. 어무적(魚無迹)이라는 작자도 실명을 은익한 사대부일 것으로 보인다. 행동이 기민하지 못한 ‘어물쩍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어무적’이라고 지은 필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안목을 지닌 사대부들의 작품들, 예컨대 장복겸이 임금께 올린 ‘구폐소’와 연시조 〈고산별곡〉, 장현경의 가사 〈사미인가〉, 조위한의 한문소설 〈최척전〉과 가사 〈유민탄〉, 신경준의 〈시칙〉 등은 우리 한국문학사상 보배로운 국문학적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조 사대부들의 비판적 지성의 사회문화로 인해 조선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상위그룹에 오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도 더욱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토록 훌륭한 사대부들을 전북이 낳고 또 그런 사대부들이 이 고장에서 살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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