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남우주연상 뒷 얘기
'지하실의 7인'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나는 74년 화가 '이중섭'이란 영화로 제13회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특히 당시 나의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은 당시 우리 영화계의 이기주의적 풍토 속에서 빚어진 잊지 못할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소중한 기억이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 배우는 영화계에서 별난 일을 다 해도 상이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배우협회가 막강한 실력을 발휘, 영화인들만을 위한 장막을 쳐놓았기 때문에 정통 영화배우가 아닌 배우들이 대종상을 수상하기는 불가능했다. 연극과 텔레비전 배우를 하면서 영화에 출연한 나도 영화배우협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은 없었고, 단지 회비만 내는 회원일 뿐이었다.
74년 무렵, 한국 영화의 자존심 대종상 심사를 앞두고 영화계는 전년도에 빚어진 시상 물의 때문에 심사위원들을 재구성하는 등 심사 투명화에 힘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출연한 영화 4편 중에서 무려 2편이 대종상 본선에 올라갔다. '국회프락치 사건'과, '이중섭'이었다. 나는 국회프락치사건에서 막강한 반공검사 오제도 역을, 또 아주 맑고 순진한 예술가의 일생을 담은 작품인 '이중섭'에서는 이중섭 역을 맡았는데, 두 인물이 크게 대비되어 심사위원들의 깊은 관심을 모았다. 심사위원들은 두 편을 다 본 뒤 내가 직접 녹음을 한 '이중섭'을 남우주연상 작품으로 결정했다. (국회프락치사건은 내가 녹음을 못하고 성우 김영배씨가 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분위기로 흐르자 배우협회에서 들고 일어나 '탤런트에게 영화상을 주면 안된다'고 심사위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이같은 압력 때문에 수상자가 번복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시상식 당일 12시 라디오 정오뉴스에 대종상 수상자가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당초 대종상 시상식은 저녁 7시였지만, 심사위원들이 배우협회 등의 외부 시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수상자를 훨씬 앞당겨 발표해 버린 것이다. 텔레비전 배우가 대종상 영화상을 탄 것도 초유의 일이고, 또 대종상 수상자를 미리 앞당겨 뉴스를 통해 발표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 뒤로도 텔레비전 출신의 여러 배우들이 대종상 영화상을 수상해 왔지만, 내가 그 최초의 길을 열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영화인의 한사람으로서 근래 영화계 최대 관심사인 스크린쿼터제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로서 영화 스크린 쿼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경제를 이끌어가는 분들 사이에서 '우리 전체 산업을 위해서 열어야 한다'며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지만, 이는 절대 안된다. 스크린 쿼터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갖고 가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산업이 관객 1천만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하고, 한류 열풍이 일 정도로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쿼터가 지켜졌기 때문이다.
스크린 쿼터를 축소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많이 젖어있는 미국 문화라는게 피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도 문제인데 마지막 문마저 활짝 열어버린다면, 나중에는 우리 민족성마저 피폐해질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지금 우리 언어가 얼마나 말살돼가고 있는가. 세계공통어라는 영어에 밀려 우리 국어가 얼마나 죽어가고 있는가 말이다. 세계에서 우리처럼 자국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열손가락에 꼽힌다.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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