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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제기구에서의 두 죽음 - 양형식

양형식(전라북도 의사회장)

우리 또래 나이 사람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전주에 인문계 사립 여자 고등학교가 두 곳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전여자 중·고등학교와 성심여자 중·고등학교였다. 물론 국공립 여중·고와 실업계 여자학교도 있었지만, 이 두 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중견 교육기관이면서 한 곳은 개신교 재단, 다른 한 곳은 가톨릭 재단의 학교로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교육기관으로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들이다.

 

한 여학생이 전주 성심여중을 거쳐, 전주 기전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의 유명 여자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전북을 떠나 서울의 넓은 세상을 접하여 보고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한국의 무대가 너무 좁다고 느껴지고 세계적 활동 무대로의 진출을 꿈꾸며 부모님을 졸라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미국에 유학해서는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유수한 대학을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명석한 두뇌와 뚜렷한 비전, 확실한 실력을 갖춘, 전북이 나은 세계적인 젊은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는 졸업과 동시에 국제연합(유엔) 사무국에 취직하게 된다.

 

성실하고 활동적인 그녀는 실력을 인정받아 유엔 사무국내에서도 모두 부러워하며 한번쯤 일해보고 싶어 한다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사무국에서 일하게 된다. 세계가 활동 무대가 된 그녀에게,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이라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서도 일해 보고 싶고 현장 감각도 익힐 겸 이라크 6개월 근무를 자원하게 된다. 전반기 근무를 훌륭하게 마치고 휴가를 받아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쉬던 중 자신의 아파트에서 돌연사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우리 지역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전북의 입장에서 보거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훌륭하고 능력이 있는 인재를 한명 그냥 잃고만 것이다. 전주를, 전북을, 한국을 크게 빛낼 훌륭한 인재를 한사람 잃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러한 아쉬움이 내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는데 또 다른 국제기구 내에서의 죽음이 나를 또한번 아쉽게 한다. 위의 죽음이 잘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라 한다면 또 다른 죽음은 모두 다 잘 알고 있을 세계보건기구(WHO) 이종욱 사무총장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총장은 우리나라 사람이고 의사라는 사실 외에 나와 개인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세계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이 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한국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한국이 옛날의 후진국으로 질병이 들끓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 보건을 이끌 수 있을 정도의 나라로, 보건강국 보건지도국이 됐다는, 하나의 자존심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의료 수준을 나타내는 말없는 지표의 하나로 그 가치가 충분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의사 이종욱은 세계의 한 구석에서 신음하는 힘없고 병든 자들을 위해 고생하고 봉사하는 훌륭한 의사상을 스스로 실천한 의도의 한 사표로 대접 받아았다. 한국을, 한국의 의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의사로서의 봉사의 삶을 살다가,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그냥 그렇게 훌쩍 떠나갔다하니 참 안타까울 뿐이다.

 

안타까운 이 두 죽음을 보면서 인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전북에서도 훌륭한 인재를 키우고 뒷바라지 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재는 스스로 커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키워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할 일을 잘하고 있으면 그것이 선장의 힘이요 더 크게 자라는 자양분이 되어 더 큰 인재로 커가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깎아 내리거나 일부러 못살게 괴롭히지 않는 것이, 혼자서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우리주변에 인재가 많지 않음에 뒤돌아봐야 할 대목은 없지 않을까?

 

/양형식(전라북도 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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