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규(시인·전북도 교육위원)
교육 현장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이 ‘교권 추락’ ‘인권 훼손’의 문제이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교권이고 또 그 선생님께 교육받는 학생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모두 다 교육 현장의 주체인 당신들의 몫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바로 내일 이 땅의 주인이 된다면 마땅히 주인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며, 그 주인을 교육하는 선생님의 교권은 또 존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의 내용 이전에 관계의 문제이다. 주인이 주인에게 주인 교육을 하는데 따른 관계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주인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주인을 가르치는 선생님 또한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짚고 가야할 것이 있다. 요즘 문제를 야기시키는 체벌에 관한 것이고, 또 교원 평가에 관한 시비가 그 것이다.
체벌도 교육이라면 교육이고, 교권 추락이라고 말하는 교원 평가제도도 예우라면 예우다. 다만 이것들이 주인으로서의 대접이며 그 격에 맞느냐 하는 문제이다. 시대에 따라 환경도 변하고 문제도 다르게 형성되기 마련인데 시대에 맞게 그 교육 여건도 교육 내용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불협화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께서 나더러 회초리를 꺾어오라 하신 적이 있었다. 뒷동산에 가서 회초리를 다듬는 시간이 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의 가치는 매 맞고 크는 자식이 잘 된다는 믿음이 있었을 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종손인 큰 손자를 그것도 홀로 된 며느님 앞에서 어찌 회초리를 드실 생각을 하셨겠는가. 70년대 80년대만 해도 그렇다. 쓰든 달든 학교에 가면 “우리 아이 많이 때려 주십시오”가 인사였다. ‘매=사랑’으로 등식화 되어 있었던 시대였다.
세월은 참 빠르고 빠르게 변한다. 학생들이 선생님께 대든다. 선생님에 대한 불신이다. 한마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안 그러는데 그러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하다. 어머니 아버지 하고 다르게 느껴지는 그 자체가 문제다. 벌써 빠르게 변하는 가치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부모와 똑같이 하면 된다. 그것이 사랑이고 체벌이고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협화음은 결코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교원 평가라는 어휘 자체가 비교육적이다. 교육 현장의 언어로 부적절하다. 주인을 교육하는 선생님에 걸 맞는 방법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선생님들께서 스스로 연구하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노력하실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전공분야가 됐든 비전공 분야가 됐든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싶으면 그 일에 푹 빠져 드는 선생님이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땅의 역사이든, 마을의 풍속이든, 그 땅의 주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싶으면 하나쯤 천착해 들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 들꽃이어도 좋고 누가 바라보지도 않는 잡초라 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런 선생님을 찾아서 격려해주고 위로해 준다면 그 선생님 더 연구에 깊어 지실 것이 아닌가. 교원평가제라는 이름의 변형은 거기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선생님들 연구에 몰두하시면서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시지 않겠는가.
학교는 남녀노소 또는 지역 간, 국가 간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지역의 문화나 역사 모든 문제를 거기 가서 찾는 날 꿈꾸어 본다.
/진동규(시인·전북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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