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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덕성여자대학교 이사장 이종훈 - 꿈에 그린 일본유학

모질게...힘들게 박사학위

동경대학 지도교수이신 일본 오우찌선생님 내외. (desk@jjan.kr)

초등학교졸업 무렵에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정부가 탄생하여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면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장관과 국회의원과 대학총장 등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린나이에도 지도자들 모두가 미국과 일본의 유학생이며 그것도 대부분 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꼭 외국유학을 가야하고 특히 박사가 되어야 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찍이 머릿속에 박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국내 대학보다는 미국대학 유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집념과 계획도 없이 막연한 유학의 꿈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마칠 때까지도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유학을 간다는 것은 나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였다. 더욱이 가정을 가진 가장이 유학을 간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욕심도 없이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온 보통사람이었으며 따라서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 대신 가까운 일본으로 정하고 나서 일본어학원에 등록하고 1년간 어학공부를 시작하였다.

 

일찍이 유학하면 미국을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본을 택하다보니 크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한·일국교정상화 직후이고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일본유학이라면 이왕이면 소위 일류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동경대학으로만 마음을 정하였다.

 

어렵게 동경대학 대학원 입학허가서와 재정보증서 그리고 여권을 만들어(6개월 걸렸다) 처자식을 남겨둔 채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유학길을 떠났다. 집에 남겨둔 아이들의 생활과 시골 부모님의 생활은 안중에도 없고, 그렇다고 넉넉한 유학비용을 가지고 떠나는 것도 아닌 나를 스스로 돌아볼 때 한심하기 짝이 없으나 집념과 오기와 배짱으로 일본에 도착하여 회사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원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언어의 불통 그리고 문화적인 충격 등은 지금까지의 나 자신을 개조시키는데 충분한 자극제가 되었으며, 이로서 한마디로 순진한 촌놈이 점점 모질어지는 오뚝이 인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도덕적으로는 타락한 것이어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으나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짠돌이로 변한 것이다.

 

당시의 일본에서는 박사학위를 딴다는 것이 불투명하여 정신적인 방황이 심하였고, 좌우파 경제학을 모두 수용하는 동경대학 경제학부의 학풍 때문에 학문적인 고민과 사상적인 갈등 또한 심하였다. 이러한 정신적 갈등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었고, 다행히 교포 安秉根 회장님(골프주식회사)의 경제적인 지원과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오우찌(大內力, 89세)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6년 만에, 대부분이 포기하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는 아내를 비롯해 유학중 태어난 막내딸(周娟, 전남대전임강사)까지 가족들의 희생과 운이 작용하여 이루어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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