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외길 웰빙시대 부농 꿈 실현…누에가루·오디농축액 등 각광
실크 생산용 국내 양잠산업은 중국의 양잠에 밀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던 도내 김제· 부안을 비롯한 양잠이 활발했던 지역의 뽕밭은 이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했고 소수의 농가들만 누에가루와 누에환·동충하초 재배 등을 위해 뽕밭의 명맥을 유지해왔다.
이러다 웰빙붐이 시작된 2000년대 들어 뽕잎과 열매인 오디가 최고의 건강 기능성 식품으로 각광을 받아 고소득 작물로 부상하면서 오디뽕 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뽕으로 전국 유명세를 타고 있는 부안지역은 현재 700여 농가에서 340㏊ 면적에 뽕을 재배하고 있는 가운데 누에 특구단지 지정·뽕잎절임 고등어및 배추 등 가공품 생산 활발·전국 최초 오디뽕 시설하우스설치를 통한 소득증대 등 뽕 관련 산업이 신활력 사업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34년 동안 고향에서 고집스럽게 뽕 영농을 계속 해와 웰빙시대 안정적 고소득을 올리는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삼현 마을 김진호씨(53)의 삶이 농촌 희망의 워낭소리가 되고 있다.
넉넉치 못한 농촌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부모님 곁에서 벼농사 및 고구마 농사일을 함께 거들어야 했던 김씨는 주변에서 양잠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걸 보고 1970년대 후반부터 뽕을 심고 양잠에 뛰어들었다.
당시 20살 남짓이었던 김씨는 도시 지향적이었던 또래들과 달리 도시로 나가고 싶은 충동보단 여러 농삿일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고 27살때 중매 결혼한 아내도 따라줘 농촌을 지킬수 있었다고 한다.
양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많은 농가들이 뽕밭을 파내고 전업할 때 김씨는 누에가루 및 누에환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마을 바로 옆 드넓은 청호저수지에서 빙어·새우 등을 잡아 내다파는 내수면 어업으로 소득을 보전하며 뽕 영농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뽕이 웰빙 및 FTA시대 건강식품과 경쟁력 있는 작목으로 다시 빛을 보면서 김씨는 부러움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됐다.
현재 30000㎡ 면적에 뽕을 재배하고 있는 김씨는 누에가루 및 누에환 이외에도 오디 생과·농축액 판매 등으로 연간 7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마을을 오디 메카로 육성, 부농의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만학으로 방통고와 방통대학까지 마치는 학구열도 가진 김씨는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오디뽕 시설하우스를 부안군 지원을 받아 시설, 조기수확· 노동력분산· 생산량증가· 친환경인증· 판매가 상승 등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를 거둬 이 분야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김씨는 농촌을 지키오며 한우·사슴·오소리·희귀조·개사육, 매사냥 ·어업 등 별의별 일을 벌여오는등 유별난 인생을 살아왔다.
뽕에 주력하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30여마리의 진도개를 사육, 전남 군수배 진도개순종선발대회에 출품한 2마리가 1등을 차지하고 진도캐를 키우는 사람들 중 김씨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김씨가 살고 있는 삼현마을은 농림부지정 녹색농촌체험마을, 부안군 누에특구단지로 지정되고 뽕홍보관이 설치돼 도시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김씨는 앞으로 전국 뽕재배가 늘어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이 우려됨에 따라, 오디가공시설을 확충하여 오디 식초·음료·잼·와인 등의 상품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부안군 농업기술센터 김양녕 하서면상담소장은 "김씨는 농군의 기질 및 집념이 강한데다 실험정신까지 남달라 성공한 농업인으로 우뚝 설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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