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산책길에서 만난 숲속의 노란 마타리꽃이 그리움을 간직한 이처럼 긴 목을 하늘거립니다. 가녀린 꽃 대궁으로 비바람을 용캐도 견뎌낸 모습이 짠하고 대견합니다.
이 산중에도 성난 파도처럼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 휘몰아쳐갔습니다. 한창 곱게 익어가야 할 곡식과 열매들은 무참히 꺾이고 쓰러졌습니다. 무며 배추 등 텃밭에서 이제 막 예쁜 떡잎을 달고 나온 가을 채소들도 앙상하게 여린 뿌리를 드러낸 채 떨고 있습니다. 식구들은 벌써부터 올 겨울 김장을 담글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점점 기상이변이 심각해지고 있는 이 심상찮은 조짐은 지금 천지가 몹시 앓고 있다는 증거일 터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지구별의 기상이변과 생태계의 변화는 인간의 멈출 줄 모르는 오만과 욕망이 불러온 재앙의 시작이라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개발논리로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정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가속도를 내며 더욱 빠르게 질주하고 있습니다.
인류문명은 선과 악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이룬 문명의 쾌거는 오늘날 물질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오히려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독이 되고 있음입니다.
산업화 이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의 삶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잠을 줄이고 앞만 보며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행복은 늘 저 만치 달아나고 기계로 전락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문명의 속도는 우리의 희망과 행복을 약속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속도의 공격성과 파괴력 앞에서 자연은 물론 인간의 자아가 해체되고 삶의 여유와 즐거움은 실종되어버립니다.
어쩌다 차를 몰고 나가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 생겨나는 길들을 헤매며 주춤거리는 뒤로 무섭게 경적을 울려대는 이 사회의 조급함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어느 순간 앞서 주춤거리는 차를 향해 단 일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경적을 울려대는 내 모습입니다.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슬로푸드"니 "슬로디자인" "슬로시티" 등 이 시대의 의식주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오래 전에 폐기처분 되었던 '느림의 미학' 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도 '고용안정이나 승진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되며, 근면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와는 달리 여유와 휴식을 통해 창조적인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삶의 질주보다는 '느림'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일 터입니다.
이 산골엔 종종 속도의 경쟁에 지쳐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모두 삶의 기어를 저속으로 줄이고 물질의 풍요보다 마음의 여유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느린 이곳에서 그들은 휴식과 내면의 고요를 체험하며 진정한 삶의 대안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고속열차에서 내리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은 듯합니다.
"조급해 하지 마세요. 당신이 갈 수 있는 거기까지가 길이지요. 천천히 당신의 길을 가세요" 판화가 이철수님의 '당신의 길'이 오늘 우리의 길이 되길 기도합니다.
/강숙원(원불교 변산 원광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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