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엽 충신과 효자로 명성을 얻은 임실군 운암출신 이흥발(1600∼1673)선생에 대한 조삼대(釣蔘臺)와 효자정문(孝子旌門)업적비가 멸실돼 후학양성의 차원에서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임실군 운암면 향토회 최종춘 회장에 따르면 이흥발 선생은 조선시대 충신으로 인조(1624)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4년후에는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 벼슬이 집의에까지 올랐다는 것.
한산 이씨로 자는 유연(悠然),호는 현재 이 지역 지명인 운암(雲巖)이며 고려시대 충신인 목은 이색의 후손과 함께 이극함의 아들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조 14년(1636) 청나라가 화친(병자호란)을 청하자‘오랑캐와는 함께 지낼수 없다’는 상소를 올린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임실군 운암면 둔기(현 지명 둔터니)로 내려와 명나라와의 절개를 지켰다.
이후 효종과 현종조에 걸쳐 수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번번히 사양하고 늙은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학문에 열중, 73세로 생애를 마쳤고 저서로는 운암일고(雲巖逸稿)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선생이 죽은 후 조정에서는 이조참의를 추증하고 인조대왕은 영의정 김수항에게 명해 조삼대와 효자정문을 세우게 했다.
조삼대는 선생이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병환이 위중하자 잉어를 잡기위해 강가로 나섰으나 엉뚱한 산삼을 낚았다는 유래에서 이를 기록에 남기기 위한 비문.
운암면 향토회는 이같은 역사적 고증이 국조방목 1백88항과 왕조실록 34권에서 43권까지 10권에 걸쳐 실려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전북향교원우대관에도 내용이 기록돼 있다고 증언했다.
김용환 의원(운암면)도“운암면의 지명은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옜사람들에 의해 전해 내려왔다”며“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복원토록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운암면 향토회는 4백년이 지난 현재 조상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람들의 훼손으로 인해 사장되었다며 충효의 고장으로 알려진 임실군의 역사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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