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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국민 여가생활과 문화산업 - 김재홍

김재홍(국회의원)

주 5일 근무제가 직장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지 6월말로 만 2년이 됐다. 올해 7월1일부터는 100명 이상 종사자를 둔 직장에까지 확대 적용된다. 이제 거의 모든 월급장이들이 주말 연휴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의 증가로 국민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삶의 질이 과연 얼마나 향상됐는가.

 

주 5일 근무제는 바꾸어 말하면 주 이틀 휴무제이다. 여가시간이 전보다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국민생활은 그다지 행복해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늘어난 여가시간을 잘못 써서 가족 간에 싸움만 더 한다든지, 청소년들의 탈선행위가 늘어날 수도 있다. 아버지의 폭탄주 회수가 많아져 어머니와 자녀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여가문화학회 소속 전문가들은 여가가 늘어나면 남녀 사랑이 많아질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고 사랑하는 남녀가 포근하게 안길 수 있는 여가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예상과는 거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국가가 여가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고 국민 여가생활을 지원해야 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일반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리의 여가생활은 좀 부끄러운 수준이다. 응답자들이 즐기는 여가활동을 5개씩 꼽게 했더니, TV시청과 라디오 청취가 1위로 나왔다. TV 시청은 현대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항목이다. 하지만 거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이건 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방송 시청은 가장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가활동 아닌가. 자신이 직접 계획을 짜고, 찾아 가고, 부딪치는 여가활동이 아니다. 능동성과 창의력이 죽어 버리는 휴무에 불과하다.

 

지난 4월 프랑스 방송위원회를 방문했을 때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세계 선진국 그룹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 가운데 TV 시청율과 케이블TV 가입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프랑스였다. 그러면 프랑스 국민들은 어디에 여가시간을 할애하는가. 그들은 찻집에 둘러 앉아 밤늦도록 토론을 즐긴다. 바로 그런 프랑스 시민의 취향에서 카페문화가 꽃피었다. 또 여름의 긴긴 바캉스, 여행과 관광, 음악회와 미술 전람회, 와인과 프랑스 전통요리를 함께 즐기는 식탁 정담… 이런 것들이 프랑스 사람들의 여가생활을 지배한다. 그런 그들이 서구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국민으로 콧대를 세워 왔다.

 

우리의 여가생활은 TV 다음으로 잡담과 전화통화, 게임, 목욕, 음주, 신문잡지 읽기, 영화감상, 계와 동창회, 쇼핑, 산책, 낮잠 등의 순이었다. 물론 일부 부유층은 비싼 일류호텔을 전전하든지 해외에 나가 골프도 치고 관광도 즐긴다. 여가생활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가활동의 양극화는 여가인프라의 양극화에서 비롯된다. 고급호텔과 비싼 레저타운은 많아도 중산층과 서민층이 싸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시설은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대로 가면 경제는 선진국 반열에 진입할지 모르지만 여가문화는 후진국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여가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다면 그는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사람이다. 여가는 그저 잠자고 쉬는 것이 아니다. 재충전이고 두뇌 운동이며, 그래서 창의력과 문화에너지를 키운다. 그 바탕위에 문화콘텐츠가 꽃피고 디지털 영상산업이 융성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지식기반 문화콘텐츠 산업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다. 우리의 신성장 동력은 더 이상 굴뚝산업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국의 한 가난했던 가정주부 조앤 롤링이 아이의 우유값을 벌기 위해 쓰기 시작한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여섯권이 좋은 예다. 해리 포터는 이제 어느 자동차 공장이나 조선소 못지않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영화와 캐릭터로 엄청난 연관산업 효과가 창출되는 중이다. 고 품질의 여가활동이야말로 그런 문화산업의 배양기에 해당한다.

 

고 품질 여가를 보장하기 위해서 ‘여가문화진흥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도 지방문화권 중심으로 자연자원의 특성을 살려 지역의 여가인프라를 구축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산악지방, 호수가나 해안지방, 평야지대, 역사유적 지대에 각기 적합한 스포츠 및 관광인프라를 건설해야 국민 여가생활이 향상된다. 대규모 예산투자 보다는 자연자원을 통합관리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산림은 행정자치부, 호수와 하천은 건설교통부, 평야지대는 농림부, 역사유적은 문화관광부가 각기 나누어 관장하니 이것을 국민 여가생활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를 여가인프라로 종합 운용하는 정책부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선진사회일수록 시민의 여가생활에 필수인 공원과 레크리에이션을 관장하는 정책부서를 두고 있다. 자연자원과 역사유적을 보존 관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여가생활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재홍(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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