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도 문처럼 밀어내는 사람'
선수시절에도 대한주택공사의 직원이었지만 나는 은퇴한 몸이었다. 월급을 떳떳하게 받기 위해서는 일을 제대로 해야 했다. 술기운을 빌어 '내가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을 하며 사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과 직장을 오가는 시간이 빠듯해 아예 자취방도 얻었다. 아내는 '뒷바라지가 있어야 공부도 제대로 될 것인데' 라며 눈물을 보였지만 내친걸음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펜글씨를 꼭 한 시간씩 쓰고 나서야 출근을 했다.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을지로 학원으로 향해 새파란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산, 부기, 펜글씨를 배웠다. 주산, 부기도 익숙지 않았지만 펜글씨는 더했다. 펜촉으로 잉크를 찍어서 써야 했는데 그나마 질이 좋지 않은 연습지에 걸려, 튀거나 번지기 일쑤였다. 펜글씨는 레슬링과는 또 다른 근육이었다. 1시간만 지나면 어깨부터 뻐근해왔다.
학원에 다니고 부터는 회사 회식도 일체 사절이었다. 저녁도 학원가에서 대충 때워야 하는 판이었다. 속으로는 무던히도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자취방에 가서도 새벽 2시까지 꼼짝없이 앉아 공부를 했다. 컨디션과 상관이 없었다. 오죽하면 '차라리 레슬링 훈련할 때가 나았다' 는 탄식이 절로 나왔으랴!
그러기를 6개월. 이제 나도 밥값을 하고 남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기안도 서류를 보지 않고 줄줄 외워 보고할 정도가 됐다. 그렇게 일에 익숙해갈 즈음, 회사에 계장 승진 시험 공고가 났다.
이번에는 자취방 대신 주택공사 선수 합숙소를 택했다. 가뜩이나 눈물 많은 아내는 '함께 산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별거 아닌 별거를 해야하냐' 며 속상함에 펑펑 울어댔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모질게 다잡았다. 나는 공부만 해온 엘리트들과는 달랐다. 그들보다 2배, 3배 열심히 해야 미래가 있는 것이었다.
승진 시험 과목은 행정학, 경영학 등이었다. 당시 대성학원에는 3급 행정고시반이 있었다. 주말에는 토, 일 12시간에 걸쳐 총정리 해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인인 나에게는 꼭 필요한 강좌였다. 공무원 4급 수업도 신청했다. 주중에 매일 강좌가 있었고 주말에는 120분 특강이 있었다.
또 다시 새벽 별 보기, 저녁 별 보기 운동이 시작됐다. 운동선수들이 5시에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 공부를 했고 밤에는 학원에서 막차로 돌아오는 나날이 계속됐다. 주말이라고 편할 리 없었다. 하루 17~18시간을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행정학의 바이블, '이조 관료시대…'로 시작하는 박동서 교수의 책을 끝까지 줄줄 외울 정도였다. 레슬링을 하면서 익힌 집중력과 끈기, 체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험을 치러 나는 30명 중 단 2명을 뽑는 승진 시험에서 2등을 했다. 계장이 된 것이다. 승진 시험에 매달린 날을 꼽아보니 1년이 넘어 있었다. "김영준 씨는 운동했던 사람 같지 않아" 라고 사람들이 칭찬하면 나는 "운동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겁니다" 라고 말했다. 이후 사람들은 나를 '벽두문'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벽도 문처럼 밀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국가대표만큼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그렇게, 나의 제2의 시작은 고됐지만,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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