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①개·돼지만도 못한 대신
해아밀사사건으로 시끄럽던 1907년 오늘 궁중에서는 어전회의가 소집됐었다. 이 자리에서 농림대신 송병준은 감히 고종임금에게 “이등총감의 노여움이 대단하니 폐하께서 도일하여 천황폐하께 직접 사죄해야…”이라고 했다. 정말 당시의 대신들은 완전한 일제의 주구들.
②미국에 독립협조 요청
1905년 오늘,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교민대표로서 이승만(李承晩) 윤병구(尹炳求)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을 예방하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독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의 편을 들고 있을 때였다.
③한국인구 1236만 명(1910)
일본 측의 한 통계에 따르면 소위 한일합방 직전인 1910년 7월 6일 현재의 한국내에 거주하는 인구상황을 보면 한국인은 남녀 합하여 1236만 3400명 일본인은 14만 3045명이었다. 이밖에 외국인은 1만 1791명으로 판명되었다. 이 외국인중에서는 중국인이 가장 많았다.
④발성영화 최초 등장
최초의 발성영화는 1928년 오늘, 미국에서 개발했다. 발성영화(Talkie)란 화면과 동시에 말과 음악 등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말하는 것으로 처음으로 제작된 것은 미국의 워너 브라더즈사로서 작품은 ‘뉴욕의 불빛’이라는 영화였다. 영화는 1889년에 에디슨이 발명했다.
⑤광견병 접종 성공
미친개에 물린 소년 조셉 군이 불야불야 연구소를 찾았다. 프랑스의 세균학자 파스퇼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년에게 왁친(백신)을 접종했다. 바로 1885년의 오늘이다. 다행히 소년은 금시에 치료되었다. 이것이 광견병으로부터 구제한 첫 접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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