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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내림효과 (Anchoring) 이야기

조승규 싱가포르대 교수

 

친구의 경험담이다. 검소하지만 특이한 옷을 즐겨입는 멋장이인 그는 얼마 전 뉴욕 출장길에 맨하탄의 한 옷가게에 들른다. 독특한 디자인의 옷들을 파는 것으로 유명한 이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점원이 '당신을 위해 태어난 옷'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점퍼 하나를 권한다. 입고서 거울에 비춰보니 그의 취향에 딱이다 싶게 마음에 든다. 사고 싶다. 가격표를 들춰보니 우리 돈으로 백만원을 호가한다. '역시…' 하고 그가 돌아서는데 점원이 그의 소매를 잡는다. '이 옷은 현재 반값에 할인판매 중입니다'. 반값도 비싼 가격이지만 친구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처음 보았던 할인 전의 가격이 이미 머릿속 셈의 과정에서 기준점으로 고정되어 오십만원이 싼 가격이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가치에 대한 어떤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우연히 형성된 기준에 의한 고정관념의 포로가 된다. 인간의 판단체계가 이성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비합리성이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우리의 의사결정을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행태경제학에서 닻내림효과(Anchoring) 또는 기준점효과라고 부르는 바로 그 현상이다.

 

아름다운 초원의 나라 몽골의 인구가 600만보다 많을까 적을까.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좀 더 직접적으로 질문을 바꿔보자. 여러분은 몽골의 인구가 몇 명쯤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위 질문에 답하기 전에, MIT대학의 저명한 행태경제학자 애리얼리(Ariely)의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한다.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각자 자기 주민등록번호의 마지막 두자리 숫자를 쓰게 한다. 그리고는 유럽산 와인 한 병을 보여주며 각자가 예측하는 그 와인의 가격을 써보게 하였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주민등록번호의 뒷자리가 높은 사람들이 번호가 낮은 사람들보다 평균 3.5배나 높은 가격을 써낸 것이다. 와인의 가격과 아무 상관도 없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숫자를 먼저 쓰게 됨으로써 실험대상자들의 뇌리에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의 기준점이 생겨나 고정관념으로 형성되었고, 그들의 판단은 이 기준점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몽골의 실제 인구는 300만이 채 안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웃과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보다 큰 숫자를 상상했을 것이다. 첫 질문에서 제시되었던 600만이란 숫자가 여러분에게 기준점 즉 하나의 닻(anchor)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기준점이 단지 우연히 형성되기만 하는게 아니라 저 위의 뉴욕 옷가게에서처럼 철저히 계획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처음 아이폰이 출시되었을 때의 가격은 599달러였지만 애플사는 몇 달 만에 곧바로 399달러로 가격을 인하하여 획기적 판매증가를 기록한 바 있다. 물론 비싼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던 열성소비자들의 구매가 대충 끝난 후, 아직 구매를 미루고 있던 일반소비자들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가격차별의 한 전형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600달러 수준에서 기준점이 매겨져있는 소비자들에게 200달러의 할인은 횡재라는 심리를 이용한 '닻내림효과'의 기술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행태경제학의 발견이다.

 

닻내림효과는 필자의 여름 또한 흐뭇하게 해줄 것 같다. 올 여름의 가족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대충 잡아보니 최소한 이 정도는 들겠다'면서 일찌감치 큰 숫자를 제시했고 알뜰한 아내는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며칠 후 나는 '이리저리 절약하면 그 60% 정도의 예산에 가능하겠더라'고 아내에게 얘기하고 쉽게 동의를 얻어내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오랫동안 별러오던 오디오도 그렇게 해서 개비해볼 요량이다. 그전에 그녀가 이 글을 읽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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