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동네와 지역 어른들을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특성상 새로운 소득원을 개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지만 가능한 일부터 해보겠습니다.”
군산시 성산면 대명리 대명마을이장 황윤택씨(62).
군산남고를 졸업한뒤 재건운동과 공직생활을 마친 황이장은 지난 2000년부터 마을이장일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논 1만여평의 농사와 농협감사 등을 맡고 있다.
젊었을 때도 재건운동과 사회활동을 하느라 바쁜 황이장은 종친회와 친구들과 만남을 하느라 종횡무진하고 있어 집밖에서 활동이 일상적인 일처럼 되어있다.
남편이 공직에 있을 땐 부인 신영희여사(58)가 마을이장과 부녀회장을 맡았고 최근에 공직에서 물러난 황씨가 다시 마을이장을 맡은 부부이장으로 오랜동안 마을에 봉사에 앞장서왔다.
황이장의 자녀들은 군산해경에 근무하는 큰아들 재영씨(35)와 서강대학원에 다닌 둘째 아들 재웅씨(33), 서울에서 직장에 다닌 셋째아들 현승씨(30) 등 아들 삼형제와 출가한 딸을 뒀다.
황이장은 “나이든 노인들을 위해 젊은 마을들이 중심이 되어 농한기때 점심을 제공하는 일을 이장일을 맡으면서 시도했다”면서 노인층중심으로 이뤄진 우리마을 특성때문에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황이장은 “마을 주민들의 일을 내일처럼 앞장서자 마을주민들간 신뢰와 화합이 이뤄졌다”면서 마을의 대부분 숙원사업은 이뤄졌지만 해마다 물사정이 안좋아 피해를 보고 있는 옥실저수지의 몽리구역밖은 양수장시설이 없는 것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군산시와 성산면 등에 현장방문요청과 함께 예산배정을 요구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마을 유래
군산시 성산면 동북쪽 끝마을인 대명마을은 17c초반에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성산과 나포면의 경계지역인 이곳은 우주 황씨의 집성촌.
이 마을의 형성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 인조·숙종조의 명신 황유후선생이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시작됐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한 기록은 있지만 명확한 기록은 없다.
이 마을의 유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오지마을이었기 때문에 선비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나올뿐이다.
이곳은 채씨 도시조의 제당이 있고 평강 채씨의 총본부가 있는 곳으로 잘알려져 있다.
고려말 군기소감 채양생선생이 고려가 패망하자 불사이군의 마음으로 이곳에 이주, 은둔 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평강채씨의 족보에 나올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대명마을은 1930년대 대명산 기슭의 옥실과 살구쟁이·도롱골·향림·배암골·작은애 고개 등의 작은 재와 구릉지대에 흩어진 민가들이 통합되면서 형성됐다.
지금은 미작위주의 생산지였지만 이곳은 산간마을의 특성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숫골 돗자리를 상납할 정도로 든든 부업을 할 정도였다한다.
해방이후 대밭이 있어 죽세공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옥실대나무가 전국적으로 유명해 1955년 해방 10주년기념 박람회에서 특등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곳은 우주 황씨의 집성촌이지만 옛 임피현의 ‘심’‘황’‘채’의 집성촌의 대표마을중 한곳이다.
탈농촌현상으로 지금은 40여호의 작은 마을이지만 70년대까지는 1백여호를 자랑하는 대촌으로 일제때 간이학교가 설립됐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임피에서 군산으로 향하는 역마의 길목에 있는 이곳은 역마가 오갈 수 있도록 도로를 개설하려고 했으나 완고한 마을의 양반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창오와 성산으로 이전, 한때 교통의 오지가 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그러나 이곳은 교통이 발달, 군산에서 20분이내에 진입할 수 있고 서해안고속도로 군산톨케이트와는 5분거리에 있는 교통중심지가 돼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 옥실저수지
우주 황씨들이 임피현의 대성씨로 발돋움한 것은 조선시대 생활의 근간산업인 논농사를 지을 공간, 즉 옥토때문이다.
마을이 번성하면서 이들 선주민들은 관개시설을 갖추는 한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저수지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식농사에 힘써 많은 인물을 길러낸 고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저수지가 옥실방죽이다.
이마을 주민들은 오랜동안 조금씩 방죽을 개축하고 늘려 인근 농토를 옥답으로 만들었으나 주변의 농사를 짓는데 불편을 느낀 주민들이 해방후 대규모 확장공사에 나서 오늘날은 수만평이 훨씬 넘을 정도로 확대된 큰 저수지로 변모하게 된 것.
대명마을주민들은 이 물을 활용, 인근 지역을 논으로 개간하면서 천수답이 옥답으로 바꿔졌다. 다만 몽리구역 밖에 있는 논들은 해마다 농사철이면 한해피해를 입고 있어 현대화된 양수장 시설이 시급한 실정이어서 주민들이 수년째 군산시에 관련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산을 끼고 있는 저수지라는 특성때문에 붕어와 잉어 등 수많은 민물고기들이 사는 보고로 변해 사시사철 강태공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나 이곳도 최근 토종민물고기보단 배스 등 외래종이 자리잡고 있어 뜻있는 주민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고향사람들
이곳출신으로 전국 또는 지역사회를 빛낸 인사들이 상당수 서울과 전주 등지에서 고향의 명예를 위해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고향일이라면 앞다퉈 일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다르고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찰에서 청렴도와 지역인물들을 널리 후원해왔던 황호항경무관(전 해양청 경무부장·전경우회사무총장)과 전국 4-H연합회장출신으로 전농어민신문사장인 황민영씨, 전북일보 편집국장이었던 황이택씨 등은 널리 알려진 이 마을 출신.
관계로는 전성산면장과 의료보험군산지사장을 역임한 황원택씨와 전군산시재정·복지 환경국장을 지낸 뒤 군산시 행정동우회장을 맡고있는 황긍택씨, 前전북일보 편집국장 황이택씨의 장형으로 건강보험관리공단 군산지사장이었던 황우택씨, 성산면장 황호종씨 등이 있다.
교육계로는 황순예 전주대교수, 황호섭 전주초등학교장, 황대택 고창초등교장 등이 있고 기업인으로는 전환경부 서기관을 지낸 황민택 우일무역회장과 황병수 인천하이네스사장, 황병욱인천하이네스회장 등이 있다.
의료계인사로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뒤 행정고시에 합격한 황수택씨가 미국 시애틀에서 병원을 개업중에 있고 군산에서 개업한 태창한의원 황경택씨와 서울에서 약국을 개업한 황병철씨 등이 있다.
법조계로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황성택변호사가 맹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황이장의 형제들은 공직가족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군산시청에서 국장을 지낸 큰형 황긍택씨(전 전북일보 군산지사장)와 셋째형 황승택씨는 해수부(옛 수산청)에서 공직생활을 마친 뒤 어항공사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또한 여동생인 황혜자씨는 최근 경기도에서 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승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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