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나 기타 축하해야할 잔치 소식을 들으면 우선 기쁘다.
그러나 축하금 걱정이 순간적으로 그 기쁨에 대롱대롱 매달려, ‘기쁨’ 마이너스 ‘돈’ 걱정 만큼 기쁨의 무게와 축하의 중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체면을 챙기자니 주머니 사정이 울고, 주머니 사정을 따르자니 체면이 고개를 숙이고…….
하지만 그곳 축하의 장소에서 만나는 반가운 친지들의 얼굴, 거기다가 특히 몇 십 년만에 만나는 그리웠던 얼굴이 안겨주는 기쁨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의를 표하러 간 장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그 뜻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애경사(哀慶事)’와 ‘경조사(慶弔事)’의 뜻을 제대로 알아보자. 한 마디로 줄여 ‘애경사’의 ‘哀’와 ‘경조사’의 ‘弔’는 그 뜻을 확연히 구분해야 마땅하다. ‘슬플 애(哀)’는 그 뜻의 범위가 넗은 일반적인 슬픔을 뜻하고, ‘조문할 조(弔)’는 흉사(凶事)중에서도 주로 초상을 당한 상가(喪家)의 상주를 조상(弔喪)하고 위문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애경사의 ‘哀’는 실연, 이별, 낙방, 좌천, 승진탈락, 입원, 부도, 폐업 기타 실패당한 일 등이 안겨주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슬픔을 뜻하는 반면 경조사의 ‘弔’는 주로 상주를 찾아가 죽음을 슬퍼해주고 위로해준다는 뜻으로 한정되어 쓰인다. ‘弔=喪事’다. 초상난 일, 사람이 죽은 사고가 상사(喪事)다. 상변(喪變) 즉 ‘죽은 변’ 인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정말로 안타깝고 가슴 저린 일은 따로 있으니 결혼식장이나 상가(喪家)에 노출된 혼주(婚主)와 상주(喪主)가 처절할이만큼 당하는 ‘인생 끗발 매김’이다. 행세깨나 하고 사느냐, 그렇지 못하고 변변찮게 사느냐의 ‘정도’가 축하객과 조문객에 의해 한 눈에 목측(目測)당해 버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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