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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이승수의 '힐링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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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영화 '수상한 그녀'로 본 행복 판타지] 행복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처녀시절로 되돌아간 할머니 자신으 몫을 포기하는데...

“접근성, 오락성, 핍진성 면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인 영화. 영화가 심리치료의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20여 년 전인 1990년부터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도입되었다. 우리지역에서는 올년 3월부터 ‘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가 개설되어 가동을 시작 하였는데, 영화가 정말 심리적 기제로 작용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이 많다. 나는 영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다르게 보기를 권한다.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치유의 숲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보는 영화 심리상담사 겸 수필가인 이승수 씨와 함께 영화를 통해 일상의 삶을 돌아보며 치유적 메시지를 전한다. ‘힐링 시네마’칼럼은 격주로 연재한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모든 인간이 평생 쓰고 죽어야 할 지랄의 총량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경북대학교 ‘김두식’ 교수가 말하여 유명해졌는데, 화자는 지랄의 의미를 욕망이자 에너지라고 풀이하면서 사용하는데 때가 있다고 주장한다. 20대에 상당량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늙은 후에야 쓴다는 것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 를 보는데 이 법칙이 떠올랐다. 지랄을 행복으로 치환해서 말이다. 이름 하여 ‘행복 총량의 법칙.’ 모든 인간이 평생 쓰고 죽어야 할 행복의 총량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  

 

하나뿐인 아들을 국립대학교 교수로 만들어낸 ‘오말순’(나문희 분)할머니는 잔소리, 간섭, 욕지거리, 아들자랑 등을 행복이라 여기며 산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다 보니 주변에서는 이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며느리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이 도지고, 급기야 가족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기로 한다. 할머니는 안절부절못하며 거리를 방황하는데…….

 

문제는 이 할머니가 아직 사용하지 못한 행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영화는 기발하게 ‘타임리프’ 방법을 쓴다. 할머니를 꿈 많았던 20세 처녀 시절로 데리고 간다. 덮어두었던 행복을 마음껏 사용하시라고.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마음만은 지금 그대로여야 한다는 것. 몸에서 피가 빠지면 세포가 늙는다는 것. 

   

△그 시절 그 노래에는 동어반복의 체념이     

 

할머니가 ‘오드리 햅번’ 을 빼닮은 가수 ‘오두리’(심은경 분)로 재탄생한다. 빼어난 미모, 뛰어난 가창력, 구성진 춤 솜씨…….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가수가 저잣거리를 벌컥 뒤집어 놓는다. 복고풍 노래 부르는 신선한 가수를 물색 중이던 방송국 PD는 탄성을 지르고 만다. 순식간에 스타가 된 오두리. 공연장은 팬들로 북적대고, 구애의 손길도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두리는 이런 호사를 반기지 않는다. 마음이 항상 아들 집에 가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집 근처를 배회한다. 어느 날 손자(자신의 보컬그룹 리더)를 따라 집에 들어가는 행운을 잡는데, 밥을 먹다가 그만 며느리가 끓인 생선찌개에 타박을 놓고야 만다. 벌집처럼 도사리고 있는 내면의 고갱이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오두리 할머니…….

 

기다리던 특별공연 날, 손자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RH-형 혈액이 급히 필요하다. 오두리가 헌혈을 위해 병원으로 간다. 아들(성동일 분)과 마주 선다. 상황을 모두 알아버린 아들이 눈물로 호소한다.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니는 명 짧은 신랑도 만나지 말고 나 같은 자식도 낳지 말고…. 제발 그냥 가세요. 행복을 찾으세요.”

 

이 대목에서 관객은 울음을 빵 터트리고야 만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우는 이도 있다.

 

피를 빼자 오두리의 마법은 풀리고 만다. 아들을 위해 찬란한 청춘을 두 번이나 포기한 욕쟁이 할머니가 제자리로 돌아와 거리를 걷는다. 모습이 초췌하다. 방송국 PD가 끼워준 머리핀을 그대로 끼고 있어 더 그렇다.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음을 오두리에게 빼앗겨 버린 탓일까. 추억을 자극하는 포크송 감흥에서 깨어나지 못한 때문일까. 어쩌면 그들도 지난 날 덮어두었던 행복을 추억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모른다.

 

“아니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란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에게서 동어반복의 체념을 본다. 행복 총량의 법칙은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다. 이 할머니처럼 자신의 몫을 기꺼이 포기하는 경우 때문에 측정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용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수필가 겸 영화치료 전문강사인 이승수 씨(57)는 전주국제영화제 힐링시네마 강사,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회원, 한국유머웃음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시골우체국장의 영화에세이> 을 냈다. 현재 완주우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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