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려면 아예 찢어지게 못 사는 편이 나아요. 그래야 수급자로 선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중간하게 가난하면 아무 지원도 못 받아요.”
복지정책도 선택의 자유권 있어야
지독한 가난을 환영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복지의 현실임을 깨닫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현장을 방문하고 복지 확대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반성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 복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앞서 언급한 시민의 말처럼 복지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만을 위한 제도라는 인식은 보편적 복지가 뿌리를 내리는 데 바람직하지 않은 토양이다.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해온 복지에 대한 생각을 지면을 통해 짧게나마 밝히고자 한다. 이른바 ‘뷔페론’이다. 뷔페식당의 특징은 선택의 자유권이다. 뷔페식당은 손님의 요구에 맞는 음식을 골라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복지제도에도 이러한 아이디어를 접목해보자. 각자 처한 사정에 따라 복지의 필요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교육복지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주거복지가, 무상의료나 무료급식, 혹은 일자리가 절실한 분들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복지혜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한 개인의 삶에 좀 더 구체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지불하는 저소득층 가정에게 일정기간 주거복지를 제공하면 이들은 저축할 여력이 생길 것이다. 집안의 환자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병원비와 약값으로 지출하는 가정에 의료복지가 제공된다면 뒷바라지로 인한 가계 결손을 줄이고 일손을 놓을 필요가 없게 된다. 직업교육을 제공한다든지, 보육복지를 제공해서 부부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실천해볼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는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자리가 잡히기 전에 복지혜택을 거둬간다. 이는 기초도 서지 않았는데 밑돌 빼는 격이다. 이래서는 가난 탈출이 불가능하다. 뷔페식당의 음식처럼 각자의 사정과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한 복지제도는 앞으로 대한민국 복지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찢어지는 가난이 확인된 후에나 받을 수 있는 복지는 진통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치료제는 될 수 없다. 가난을 유지하는 편이 가난을 탈출하는 것보다 이득이 되는 복지는 생산적 복지가 아니다.
단기적·장기적 복지제 함께 마련을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복지모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남의 떡이 좋아보여도 우리의 필요와 정서에 맞지 않으면 제도가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초기에 비해 많이 개선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유기적이지 못하고 현실과 괴리가 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안에 세모녀의 자살사건처럼 제도가 완비되기도 전에 삶의 한계에 부딪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이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유래 없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빈곤층이 확대 되고 있다. 단기적인 구제책을 반드시 마련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맞춤형 복지체계를 완성하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복지는 사람을 살리는 복지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못 살려면 아예 찢어지게 못사는 편이 낫다’는 생각만큼은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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