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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우아한 거짓말'] 청소년기 친구는 세상의 절반이라는데

자신은 타격을 입지 않으면서 상대를 가격하는 게 우아한 거짓말 / 사진은 위장된 평화의 전형적 증거

“엄마, 나 Mp3 플레이어 사줘.”

 

“이달에 집세 올려줘야 하니까 나중에 사자.”

 

건조하기 짝이 없는 모녀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는 그날 하늘나라로 갔다. 자기가 뜨개질한 주황색 목도리로 목을 걸었다.

 

알고 보니 ‘은따’였다. 은근한 따돌림. 반 친구들은 단톡(단체 카카오톡의 줄임말) 하면서 ‘천지’(김향기 분)를 그룹에 넣어주지 않았다. 또 무슨 말을 하다가 천지가 지나가면 말을 바꿔 언니 어쩌고 하며 딴전을 부렸다. 그들에게 천지는 언니였다. 지시대명사 언니.

 

전에 엄마(김희애 분)는 배 아프다며 기대려 드는 ‘천지’(김향기 분)를 향해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 양호실도 있잖아.”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그때 이미 천지는 말라가고 있었다. 먹다 만 자장면처럼, 달걀프라이처럼.

 

사실 Mp3플레이어는 누구 하나 괴롭혀야만 사는 친구 ‘화연’(김유정 분)이가 생일선물로 달라던 물건이었다. 화연이는 천지 따돌리는 주역이었다. 알고 보니 2만 원짜리도 있다던데…….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냉가슴 앓다 떠난 천지의 유서를 찾는데 카메라 앵글이 맞춰진다. “왜 그랬대?” 주위의 뒷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는 쓰레그물 치듯 아이의 동선을 훑는다. 유난히 프레시백과 시점 쇼트가 많은 것은 생생하게 상황을 재현하고 천지의 시선으로 다른 인물과 배경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카메라가 들춰낸 천지의 아픔으로 들어가 보자. 자장면을 죽도록 싫어하는 것은 화연이가 중국집 딸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극복하기〉라는 책을 끼고 다니는 것은 공부도 못하고, 가난하고, 얼굴도 못생겼다며 한탄하는 ‘미라’(유연미 분)에게 도움 줄 내용을 찾기 위함이다. 방탕한 미라 아빠(성동일 분)가 천지 엄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라는 역겨움을 천지에게 쏟아낸다. 그리고 야멸차게 돌아서 버린다. 매사에 냉정한 언니 만지(고아성 분)는 천지에게 조차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풀어진 주변을 홀치기라도 하려는 듯 천지는 틈만 나면 뜨개질을 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사진을 들 수 있다. 엄마, 만지, 천지 이렇게 셋이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엄마는 냇물에 천지 유골을 뿌리면서 독사진과 이 사진을 함께 띄운다. 행복했던 순간을 가져가라는 뜻 일 터. 그러나 영화는 사진이 얼마나 진실했느냐고 묻는 측면이 있다. 사진은 ‘위장된 평화’일 수 있기에. 한 김기덕 감독 영화 연구자는 〈빈집〉에 나오는 사진을 두고 말했다. 주인공 ‘태석’이 빈집에 들어갈 때마다 그 집에 비치된 사진에다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어 셀프카메라를 찍는 것은 평화의 실상을 확인 하자는 것 이라고.

 

엄마와 만지는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가족의 연대가 부족했던데 대한 때늦은 후회다. 둘은 유서를 보며 서로 자기 잘못이라고 말한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자신 중심의 최선이었다면……? 엄마와 두 딸이 만든 허 스토리(Her Story)는 그래서 시리고 쓰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엄마와 만지의 노력이 페이소스를 남기는 것은 더한 아픔이다.

 

비슷한 내용의 우리영화 〈파수꾼〉은 편부가정의 한 고등학생이 감당해야 하는 세상을 그린다.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거북한 욕망, 충동, 생각 등을 무의식에 파묻고 발버둥치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폭력뿐이다. 급기야 주인공 ‘기태’는 생을 포기하고야 마는데, 충동이 지나치다 싶은 그에게 단짝친구 ‘동윤’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없어. 너만 없었으면 돼.”

 

청소년기에 친구는 세상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다. 천지에게 닥친 현실은 빈 세상 절반, 친구 없는 세상 절반이었다. 그 아이가 설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랴. 그런데 천지는 몰랐던 게 있다. 화연이가 우아한 거짓말로 선입견을 조장하고, 미라가 지나치게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 결국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었음을…….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용납하는 방향으로 자기를 바꾸며 산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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