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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인간중독] 중독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인간

편견·아집 굳어져버린 삶에 지친 중년 남자들이여 내려 놓고 가볍게 살자

‘유피놀’(Ufinol)은 Unfinished Noon Of Life의 줄임말로 ‘절정이되 흔들림의 과정이 남았으므로 미완의 절정’이란 뜻으로 쓰인다(지식백과). 여기서 사전은 40대 한국남성들을 예로 들며 크게 두 가지 특성이 있다고 부연한다. 첫째는 ‘피곤함’이다. 벗어나려는 10대, 즐기려는 20대, 더불어 살아가려는 30대, 외로운 50대 사이에 끼어 심리적 피로가 크다는 것이다. 둘째는 ‘편견과 아집의 고착화’다. 이는 어떻게든 자신이 경험했거나 받아들였던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이를 부정하게 되면 그 시간 속에 들어있던 자신의 존재가 근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논자는 이를 위기라 말한다. 술로 해결하려는 경향까지 묶어 강한 톤으로 경고한다.

 

불혹(不惑)이란 말(四十而不惑)을 떠오르게 한다.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40세가 되어서는 미혹(迷惑)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말함이다.

 

영화 〈인간중독〉을 보면서 이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창문에 뭍은 지문 같아. 바다로 흘러 들어갈 똥 뭍은 휴지 신세지.”

 

월남전에서 커다란 전공을 세우고 귀국하여 교육부대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진평’(송승헌 분)대령은 군(軍) 내에서 전설로 통한다. 대성할 것이라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장인이 군단장이란 사실, 절세미인인 아내 ‘이숙진’(조여정 분)의 확실한 내조 등 조합 또한 완벽하다. 그런데 의기양양해야 할 당사자는 얼빠진 사람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줄담배만 피우고 있다. 어느 날 그가 군의관과 마주앉는다.

 

“이명현상에다 불면증, 그리고 가끔 베트콩 환영이 보인다고? 이건 섬망인데…. 절대로 술 마시지 마. 알았어?” 친구인 군의관은 차트에 ‘감기몸살’이라 적으며 당부한다. 진평은 산책, 테니스, 봉사활동 등으로 추슬러 보지만 몸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 관사 옆 동에 ‘경우진’(온주완 분)대위가 이사 온다. 예쁜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과 함께 둥지를 튼다. 새를 좋아한다는 종가흔. 집 주변이 새장 일색이다. 재잘거리는 새 소리가 부대 안에 향기처럼 퍼진다. 진평의 굳은 몸이 반응한다. 앙증맞은 한 마리 새를 향해 담배 연기가 길게 뿜어진다. “새가 싫어하잖아요.”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진평은 여인의 치명적 매력 앞에 넋을 잃고 만다.

 

약보다 어지럽고, 담배보다 중독 심한 사랑이 시작된다. “당신을 안 보면 숨을 쉴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진평에게 가흔은 “왜 이렇게 가슴이 뛰죠?”라는 말로 맞불을 놓는다. 진평이 가흔에게 아끼는 지프라이터를 선물한다. 꺼지지 않는 불씨의 상징 아니던가. 진평은 가흔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백옥처럼 흰 와이셔츠를 입는다. 순정을 바치겠다는 뜻일 터.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중독의 은유. 진평은 틈만 나면 시내 음악 감상실에 나간다. 둘은 음악과 함께 왈츠와 함께 하늘을 난다. 멜로(Melo), 멜로디와 로맨스가 결합된 말. 뗄 수 없는 사랑, 중독된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모습은 감상실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는다.

 

방죽에 수류탄 투척 훈련을 지휘(불을 끄는 상징적 의미로 이해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평이 준장으로 진급한다. 축하파티 장. 남편을 부관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진평의 말에 가흔이 거절한다. 전에도 가흔은 가정 가진 몸이라는 이유로 뒷걸음질을 친 적이 있다. 진평은 취할대로 취한 상태. 자신을 버리지 말라며 애원하다가 급기야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난동을 부린다. 절대로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수습하는 과정에서 장인은 잠시 월남에 가 있다 오라고 말한다. “저게 장인이냐?”

 

진평은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이렇게 자멸한다. 어쩌면 그는 미혹을 넘어 지천명을 맞고, 50대에 지독한 외로움과 맞서야 하는 삶이 두려워 이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인티머시〉란 영화가 머릿속을 휘저었다. ‘제이’에게 찾아온 여인 ‘클레어’. 둘은 서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채 수요일 마다 섹스를 한다. 어느 날 정해진 시간에 여인이 나타나지 않자 제이가 찾아 나선다. 클레어의 정체를 안 순간, 이들은 헤어져야 했다. 감독 ‘셰로’는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얼마나 끔찍스러울 수 있는지 그려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진평이 미국영화 〈사이드 웨이〉에 나오는 이혼한 중년남자 ‘마일즈’가 하는 푸념을 들었더라면…. “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창문에 뭍은 지문 같아. 바다로 흘러들어갈 똥 뭍은 휴지 신세지.” 제임스는 훗날 좋은 여자 만나서 좋아하는 와인 마시며 행복하게 산다.

 

출세가도에 지장이 있을까봐 몸이 아파도 숨기며 가슴으로 울어야 했던 한 기계적 인간의 피곤이 온몸에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영화다. 에로 운운하는데, 나는 영화 속 외설이 조금도 흥미 없었음을 고백한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 게임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 중독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인간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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