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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레바논 감정 -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

성숙한 사람은 자기 성격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요

   
 
 

<이퀄리 브리엄> 이란 영화는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 도시 ‘리브리아’를 무대로 설정한다. 지배자는 전 국민에게 ‘프로지움’이란 약을 먹게 하여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하고, 감정을 느끼는 자들을 찾아 살멸한다. 상상도 못 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정작 지배자는 약을 먹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도 감정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들을 보면 압력밥솥에서 수증기가 분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정 유발 죄로 체포된 한 여성이 심문을 당한다. “당신은 왜 살지?” “느끼기 위해서요.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요. 사랑이 없다면, 분노나 슬픔이 없다면, 숨 쉬는 것은 시곗바늘이 내는 소리와 같을 뿐이에요.”

 

이런 감정의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내 감정 사용법> 이란 책은 감정에 대하여 ‘(신체의) 생리학적, (정신의) 인지적, (행위의) 행동적 요소가 동반된 우리 몸 모든 기관의 갑작스러운 반응’이라고 정의한다. ‘찰스 다윈’은 기본 감정으로 기쁨, 놀라움, 슬픔, 두려움, 혐오, 분노를 꼽는다. 그렇다면 각각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은 있을까? 책은 지금도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시인 최정례가 감정의 한 부분을 터치했다. ‘레바논 감정’이란 시를 통해서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레바논 감정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수박은 가게에 쌓여도 익지요./ 익다 못해 늙지요/ 검은 줄무늬에 갇혀 수박은 /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 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 하지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 후략 -

 

이 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레바논 감정> 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는 어떤 상황을 레바논 감정이라 부르는지 살펴보자.

 

‘헌우’(최상우 분)라는 젊은이가 어머니 기일을 맞아 봉안 당을 찾는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한참을 흐느끼다 돌아선다. 얼마 후 그는 아는 형이 잠시 묵으라며 내준 아파트에서 목을 맨다. 잘 못 묶어 실패하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어느 날 눈밭에서 어머니의 환영을 만난다. 어머니는 마주 잡은 손을 놓으며 손사래를 친다. 이제 네 갈 길 가라는 듯. 그러나 그는 자꾸만 어머니에게 다가가려 몸부림친다. 이때 다른 자기(자아로 해석됨)가 뒤에서 몸통을 끈으로 묶고 잡아당긴다. 하릴없는 육신이 눈밭에서 나뒹군다. 스스로 내 박친 인생이다.

 

눈 쌓인 들녘에 한 여인(김진욱 분)이 널브러져 있다. 막 출옥하였는데 갈 곳이 없는 가엾은 아가씨다. 지나가는 차를 무작정 얻어 타고 여기까지 왔다. 이곳에서 사내 둘이 경합한다. 운전해 준 남자와 여인을 찾아온 전(여자가 투옥되기 전) 남자. 여인은 운전해준 남자가 용변을 보는 사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들고 산속으로 도망친다. 그 사이 전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여인은 낯선 산속을 헤매다 노루 덫에 걸리고 비명을 들은 헌우가 달려가 구해준다.

 

이방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침침하고 퀴퀴하던 아파트 창에 빛이 들고 향내가 나기 시작한다. 지리멸렬한 두 청춘이 한 침대에 든다. 시든 화초에서 꽃이 핀다. 여인이 헌우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겨울에 피는 흰 장미여 아직도 나를 기다리나…’.‘겨울장미’ 노래를 마친 여인이 헌우의 손을 감싸 쥔다. 잡아당기는 손이다. 위안의 손. 같이 가자는 손. 헌우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남녀가 사막처럼 건조하고 개흙처럼 질퍽거리는 질곡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사람은 둘, 동기는 하나다.

 

살면서 말로 표현 못할 상황이 얼마나 많았던가. 침보다 더 뜨거운 덩어리를 목구멍으로 넘긴 게 몇 회였는지 모른다. 시는, 영화는 이를 ‘레바논 감정이라 합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말하며 마무리 한다.

 

어느 날 ‘레바논 감정’ 같은, 꼭 그와 같은 감정이 엄습하면 어떻게 할까. 이퀄리 브리엄은 말한다. ‘억제하는 힘이 없다면 감정은 단지 혼란에 불과하다’라고. 내 감정 사용법의 해석은 조금 강력하다. ‘감정은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타난다.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감정의 조종을 받을 것인가. 감정을 조종할 것인가. 두 가지 길뿐이다. 감정은 말 잘 듣는 하인이자 못돼먹은 주인이며, 사용법을 알아야 하는 생물학적 힘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성격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요.” 에니어그램 하면서 들은 말이다. 얼마나 성숙해야 할까. 얼마나 모질어야 할까. 오늘도 멘붕이 지나갔다. 저잣거리에 날아다니는 모래알 같은 놈이겠지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감정을 더듬고 있는 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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