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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죽을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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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국회의원

경북 문경 희양산 제법 높은 중턱에 터를 잡고 있는 봉암사에는 1년 중 부처님오신날 하루를 빼고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수행하는 스님들의 참선을 위한 특별수도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절에는 사찰 최고 지도자인 ‘조실’이 없다. 두 해 남짓 전에 입적하신 적명 스님이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십 수 년 동안 공석으로 남겨두셨기 때문이다.

온 나라에 뜨거운 촛불이 타오르던 2016년 말, 한 언론사에서 적명 스님을 인터뷰했다. 아무래도 당시 탄핵정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스님은 시국에 황망해하면서도 ‘대사각활(大死却活)’이란 고사를 읊으셨다. ‘크게 죽어야 도리어 산다.’ 나라의 큰 불행을 철저한 각성과 변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됐다. 두 달 전 새해 첫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신년회 자리에서다. 안양시의 민병덕 국회의원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형님, 정치인은 찌질하게 죽으면 기억에서 사라지는데, 크고 안타깝게 죽으면 기억에 남고 나중에 재기의 발판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선대위 조직상황실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그의 말이 결코 의미 없이 나온 것은 아닐 테다.

현실정치는 생존게임이다. 사람이든 정당이든, 모두 늘 죽지 않고 살아남을 길만 생각한다. 크게 죽어야 도리어 살 수 있다는 말은 고리타분한 불경 말씀으로만 여길 뿐, 살갗에 닿는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르다. 잘못한 것을 솔직히 사죄하고 틀린 것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정치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다. 정치는 어리석었지만 우리 국민은 그렇게 성숙했다.

국정농단과 탄핵이라는 큰 죽음을 겪은 뒤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활(活)’을 모색했다.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국민이 명령한 적폐청산의 과제를 실행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검찰개혁 발목을 잡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복병이 나타났고, 코로나19라는 상상치도 못한 전 세계적 재앙이 닥쳤다. 박근혜 정부로 인해 크게 죽은 우리 사회를 다 되살려내기도 전에 우리 일상은 다시 더 크게 죽었다.

국민은 죽을 만큼 죽었다. 이제 정치가 ‘각활(却活)’을 실현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가 그 막중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 스스로 ‘대사(大死)’해야 한다. 서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찌질하게 발버둥치는 대신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고, 크게 죽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정치가 대한민국을 되살려낼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민주당이 많이 부족했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국민에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혁과제를 다 완수하지 못해 국민을 답답하게 했다. 부동산시장을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해 국민을 힘들게 했다. 민주당 출신 광역단체장들의 성 비위 문제로 국민들을 아프게 했다. 민주당이 많이 오만했다. 머리 조아려 사과했지만, 국민들 보시기엔 많이 모자랐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이틀 간 사전투표, 일주일 뒤면 대통령선거 본투표 날이다. 후보마다 각자의 강점도 있겠지만, 감히 국민 앞에서 완벽히 당당할 수 있는 후보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신의 강점뿐 아니라 과오까지 온전히 인정하는 후보와 정당이라면,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책임질 자격이 있을 것이다. 당선되면 ‘크게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자, 국민이 살려낼 것이다.

/김철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안산시상록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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