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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농식품부 차관 "전북 농생명산업 성장 잠재력 커"

농식품부 30년 근무…작년 차관 승진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기반 마련 집중
'농도 전북' 세심한 정책 개발·실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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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농업·농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오세림 기자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 그곳에서도 맨 끝에 위치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종훈(55)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2009년 과장급에서 고위공무원(국장급)으로 승진하며 '농식품부 사상 최연소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가 자신을 소개한 첫 단어는 '시골 깡촌 출신'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시골 깡촌'에서 3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겪어왔는지 궁금해졌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 차관을 세종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주요 농업·농촌 현안, 정책 방향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고향 그리고 유년의 추억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진안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전주 전라고로 진학했습니다. 사실 저는 인문계 체질인데 당시 가정 형편을 고려해 금오공고를 가려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공고 진학을 반대하셨죠. 금오공고는 합격한 상태였는데, 학교 소집 날이 연합고사 날과 겹쳤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결국 연합고사를 보고 전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진안에서는 나름 수재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전주에 가니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더군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4시간 자며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 형편을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자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죠?

"법대에 가면 주로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데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실, 된다는 보장도 없고 누군가를 단죄하는 게 제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행정고시는 국가를 경영하는 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예산을 확보해 법을 만들고…. 제가 국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창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법학과이지만 경제학과, 행정학과에 가서 경제학, 행정학 등을 수강하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한차례 낙방했지만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했고 1992년에 행정고시 1, 2, 3차를 모두 합격했죠."

 

농식품부에서 근무하신 지도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1993년 4월 19일에 시작했으니 30년이 다 됐네요. 농식품부에 와서 참 좋았습니다. '시골 촌놈'이 차관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죠. 특히 대한민국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작은 역할이나마 숟가락 하나 얹고 살아온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차관으로 취임하신 지는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짧은 소회와 함께 앞으로 더 중점을 두고 챙길 현안이 있다면.

"돌아보면 농식품부에서 일한 지난 30년을 통틀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책 현장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가축전염병 방역 관리, 농축산물 수급 점검 등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어려움을 직접 보고 들으며 현장에서 실마리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인해 농업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잘 마무리 짓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문재인 정부 지역공약 제1호이자 전북도정 핵심 프로젝트인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밸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농식품부 정책‧사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밸리는 식품, 종자, 미생물, 첨단 농기계, 첨단농업 등 전북의 5대 농생명 클러스터를 거점으로 농생명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부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국가식품클러스터, 민간육종연구단지, 지능형 농기계 실증단지 등 농식품 산업의 혁신 성장을 위한 사업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앞으로 관련 사업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상호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북도, 농촌진흥청, 지역 대학 등과 협업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소멸에 대응한 농촌 활성화 방안, 무엇이 있을까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농촌은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활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은퇴와 저밀도 농촌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017년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귀농·귀촌 규모가 2020년에 다시 회복하는 양상입니다. 농촌 활성화와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귀농·귀촌 지원과 청년농 육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정부는 귀농·귀촌 사전 준비와 이주 실행을 지원하는데 정책을 집중하는 한편, 청년농의 영농 창업과 정착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착지원금, 농지, 교육·컨설팅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완화하고, 농촌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간적·기능적 차원에서 농촌 공간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농촌의 특성을 반영해 구획화(zoning)하는 '농촌용도지구제도'를 도입해 축사, 공장, 시설원예, 태양광 시설을 집단화·재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일자리, 주거, 사회 서비스가 주민의 요구에 맞게 공급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농도 전북'의 발전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북은 '삼락농정'을 실현하고 농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적극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락농정위원회를 통해 농업인, 전문가, 유관기관 등 다양한 분들이 전북의 농업·농촌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또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비롯해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새만금 간척지 농업연구소 등 다양한 농업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어 농생명 산업 성장의 잠재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새만금 농생명용지 등 전북이 가진 풍부한 물적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개별 농가들을 조직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업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 개발과 실천이 필요해 보입니다."

 

남은 기간 어떠한 자세로 임할 생각이신지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돌은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걸림돌이 되기도,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우리 농업·농촌은 고비들을 여러 차례 넘어오며 값진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공익직불제를 정착시키고, 농축산물 수급 안정과 재해안전망 강화로 농가 소득을 높였으며, 스마트 농업과 청년 농업인을 육성해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농업이 유망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튼튼한 디딤돌 하나는 놓겠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북도민 여러분께서도 정부 정책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김종훈 차관은

김종훈 차관은 진안 부귀면에서 태어나 부귀초, 부귀중을 졸업했다. 초·중학교를 다니는 9년 동안 20리(8㎞)를 매일 걸어서 통학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그만큼 시골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주 전라고에 진학했다.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농식품부에서 대변인, 농식품공무원교육원장, 농업정책국장, 식량정책관, 차관보,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농식품부의 핵심 보직을 거친 농정 전문가로 업무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대외협상·이해관계 조정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에는 고위공무원(국장급) 직위인 녹색성장정책관으로 승진했는데, 1993년 4월 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된 지 16년여 만의 초고속 승진이었다. 농식품부 사상 최연소 국장이기도 했다.

인생의 좌우명은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 김 차관은 이 좌우명처럼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뜻을 세우고 이를 이뤄내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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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농업·농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오세림 기자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 그곳에서도 맨 끝에 위치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종훈(55)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2009년 과장급에서 고위공무원(국장급)으로 승진하며 '농식품부 사상 최연소 국장'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등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가 자신을 소개한 첫 단어는 '시골 깡촌 출신'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시골 깡촌'에서 3남 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시간을 겪어왔는지 궁금해졌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 차관을 세종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롯해 주요 농업·농촌 현안, 정책 방향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고향 그리고 유년의 추억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진안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전주 전라고로 진학했습니다. 사실 저는 인문계 체질인데 당시 가정 형편을 고려해 금오공고를 가려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공고 진학을 반대하셨죠. 금오공고는 합격한 상태였는데, 학교 소집 날이 연합고사 날과 겹쳤습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결국 연합고사를 보고 전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진안에서는 나름 수재라는 소리도 들었는데, 전주에 가니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더군요. 고등학교 1학년 때는 4시간 자며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 형편을 '불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자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죠?

"법대에 가면 주로 사법고시 공부를 하는데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실, 된다는 보장도 없고 누군가를 단죄하는 게 제 성격에 맞지 않았습니다. 행정고시는 국가를 경영하는 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예산을 확보해 법을 만들고…. 제가 국민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창의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법학과이지만 경제학과, 행정학과에 가서 경제학, 행정학 등을 수강하며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한차례 낙방했지만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했고 1992년에 행정고시 1, 2, 3차를 모두 합격했죠."

 

농식품부에서 근무하신 지도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1993년 4월 19일에 시작했으니 30년이 다 됐네요. 농식품부에 와서 참 좋았습니다. '시골 촌놈'이 차관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죠. 특히 대한민국 농업·농촌의 발전을 위해 작은 역할이나마 숟가락 하나 얹고 살아온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차관으로 취임하신 지는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짧은 소회와 함께 앞으로 더 중점을 두고 챙길 현안이 있다면.

"돌아보면 농식품부에서 일한 지난 30년을 통틀어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책 현장을 다니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가축전염병 방역 관리, 농축산물 수급 점검 등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어려움을 직접 보고 들으며 현장에서 실마리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인해 농업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잘 마무리 짓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문재인 정부 지역공약 제1호이자 전북도정 핵심 프로젝트인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밸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농식품부 정책‧사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아시아 스마트 농생명밸리는 식품, 종자, 미생물, 첨단 농기계, 첨단농업 등 전북의 5대 농생명 클러스터를 거점으로 농생명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부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국가식품클러스터, 민간육종연구단지, 지능형 농기계 실증단지 등 농식품 산업의 혁신 성장을 위한 사업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앞으로 관련 사업들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상호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북도, 농촌진흥청, 지역 대학 등과 협업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소멸에 대응한 농촌 활성화 방안, 무엇이 있을까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농촌은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활력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은퇴와 저밀도 농촌 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017년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귀농·귀촌 규모가 2020년에 다시 회복하는 양상입니다. 농촌 활성화와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귀농·귀촌 지원과 청년농 육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정부는 귀농·귀촌 사전 준비와 이주 실행을 지원하는데 정책을 집중하는 한편, 청년농의 영농 창업과 정착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착지원금, 농지, 교육·컨설팅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완화하고, 농촌의 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공간적·기능적 차원에서 농촌 공간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농촌의 특성을 반영해 구획화(zoning)하는 '농촌용도지구제도'를 도입해 축사, 공장, 시설원예, 태양광 시설을 집단화·재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일자리, 주거, 사회 서비스가 주민의 요구에 맞게 공급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농도 전북'의 발전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북은 '삼락농정'을 실현하고 농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적극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락농정위원회를 통해 농업인, 전문가, 유관기관 등 다양한 분들이 전북의 농업·농촌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또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비롯해 그린바이오 벤처 캠퍼스, 새만금 간척지 농업연구소 등 다양한 농업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어 농생명 산업 성장의 잠재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새만금 농생명용지 등 전북이 가진 풍부한 물적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개별 농가들을 조직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농업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 개발과 실천이 필요해 보입니다."

 

남은 기간 어떠한 자세로 임할 생각이신지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돌은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걸림돌이 되기도,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우리 농업·농촌은 고비들을 여러 차례 넘어오며 값진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공익직불제를 정착시키고, 농축산물 수급 안정과 재해안전망 강화로 농가 소득을 높였으며, 스마트 농업과 청년 농업인을 육성해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농업이 유망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튼튼한 디딤돌 하나는 놓겠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북도민 여러분께서도 정부 정책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김종훈 차관은

김종훈 차관은 진안 부귀면에서 태어나 부귀초, 부귀중을 졸업했다. 초·중학교를 다니는 9년 동안 20리(8㎞)를 매일 걸어서 통학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그만큼 시골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주 전라고에 진학했다.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농식품부에서 대변인, 농식품공무원교육원장, 농업정책국장, 식량정책관, 차관보,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농식품부의 핵심 보직을 거친 농정 전문가로 업무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대외협상·이해관계 조정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에는 고위공무원(국장급) 직위인 녹색성장정책관으로 승진했는데, 1993년 4월 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된 지 16년여 만의 초고속 승진이었다. 농식품부 사상 최연소 국장이기도 했다.

인생의 좌우명은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룬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 김 차관은 이 좌우명처럼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뜻을 세우고 이를 이뤄내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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